북한이 ICBM을 쏘아 올리면서 온 세상이 난리가 난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서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갖가지 안들이 빗발치고 있다. 워싱턴 분위기도 전쟁 불사론과 협상론이 서로 엇걸리는 등 어수선하다. 국내에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절대무기인 핵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는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며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 여당은 제재를 병행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지만 아직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북핵 문제의 양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며 두 나라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는 두 나라가 합의하면 북핵 문제는 빠르게 해결 국면으로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전제로 했을 때 상충된 해법이 뒤엉킨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지만 경우의 수가 갖는 현실성을 고려하면 북핵 해법은 매우 좁은 영역으로 모아진다.
미국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북한 ICBM 발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ICBM 개발에 대해 설마 그럴 리가? 하는 태도로 일관했었다. 하지만 사정거리가 뉴욕에 이르는 ICBM 발사 능력이 현실화되자 이야기가 완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독립 이후 한 번도 본토에서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본토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유난히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을 공언하는 나라가 나타난 것이다. 과거 소련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북한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만약 방치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모든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다.
미국이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제제와 압박이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대북 제제를 해 오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쓴 셈이다. 손에 남은 카드가 거의 없다. 미국을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그동안의 고강도 제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끄떡 없이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이 3.7% 성장하면서 17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실질적인 타깃은 중국이다. 북한과 교역하는 중국 기관이나 기업을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이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원유 공급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면서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기세이다.
과연 중국이 미국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지난 1일 건군 90주년 행사 연설에서 시진핑은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미국과 싸워 승리했음을 강조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해석된다. 휴 화이트 호주 국립대 교수 등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은 북한의 ICBM이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약화를 초래하면서 자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중국 카드가 무의미해질 때 미국에게 남은 또 하나의 카드는 북한에 대해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한반도 군사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러한 시나리오들에 대해 한 결 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쩍 뛴다.
한미 군사 관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의 무기 체계는 휴전선 일대에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는 방사포이다.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300㎜ 방사포는 사정거리가 200킬로미터이며, 영상유도장치가 장착되어 정확도가 미사일급이다. 이들 방사포가 일시에 발사되면 평택 미군기지 등을 짧은 시간 안에 초토화시킬 수 있다. 한미 양군은 현재 북한 방사포에 대한 대응수단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벽은 다름 아닌 민주화된 한국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북한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대북 군사 공격에 동의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제 미국에 남은 카드는 딱 한 장이다. 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협상을 상사시키자면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북한은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핵무장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북한의 요구는 매우 분명하다. 체제 보장, 평화협정 체결, 경제보상, 관계 개선이다.
과연 미국이 이러한 요구를 들어 줄 수 있을까? 평화협정 체결은 현재의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휴전협정을 근거로 존립해 왔던 유엔사 해체는 물론이고 종국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한미동맹에 결정적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할까?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한마디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LA 핵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을 지키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ICBM 발사 성공으로 판의 변화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 미국을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지점으로 몰고 가고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신의 국익에 비추어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다. 보수층으로서는 소름끼치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지만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선에서 협상을 매듭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놔야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북핵 해법은 한층 단순 명료해졌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북한의 핵 프로그램 완성이 불투명했을 당시 미국 정부 앞에 놓인 선택지는 여러 개였다. 하지만 북한 핵 프로그램이 사실상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의 선택지는 거의 하나로 좁혀져가고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오락가락하다가는 중대 국면에서 철저히 배제당하는 코리아 패싱을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과거 김대중 정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북핵 위기를 한반도 냉전 체제를 완전 해체시키는 적극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주도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 지금야말로 위기를 기회를 전환시키는 역발상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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