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원 수업에서 교재로 앨빈 로스(Alvin E. Roth, 2012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매칭, Who Gets What – and Why』(2015)을 읽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시장에서 작동될 수 없거나 작동되어서는 안 되는 신장 이식 시스템, 고등학교 배정 방식, 구인구직 시장 등의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을 효과적으로 매칭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 갖고 있던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 선정 방식에 대한 의문점이 떠올랐다.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 선정 방식 역시 가격이라는 일반적인 시장의 방식으로 작동될 수 없고, 정책 대상에 알맞은 입주자를 선발하려는 공급자(공공주택사업자)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싶은 수요자(주거약자)의 매칭이라는 점에서 책의 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품고 있던 의문점은 첫째, 청년주거문제의 심각성은 주로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의 사례로 드러나면서도 정작 행복주택의 공급량은 신혼부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상황이고 둘째, 신혼부부 우선공급 물량은 혼인과 출산 촉진의 맥락에서 공급되는데 입주기준은 정책의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청년’이란 용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와 신혼부부가 한 데 묶여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국내에서 청년이란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청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주체마다 다르다. 예컨대 대표적인 청년대상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의 경우 청년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젊은 층’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구체적으로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로 구분된다. 즉, 행복주택과 관련해서 누군가에게 청년은 대학생을 의미할 수도 있고, 사회초년생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신혼부부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가 같은 집단으로 묶일 수 있고, 청년주거 현상으로 주로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의 주거문제가 대두되면서 결과적으로 신혼부부 공급 물량의 확대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13일부터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급에 나선 행복주택 8개 사업지 중 절반 정도가 사회초년생과 대학생을 위한 물량을 배정하지 않았다. 행복주택이 청년층에게 80%, 고령층 및 주거급여수급자에게 20% 배정하는데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을 모두 청년층으로 묶다보니 상대적으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배정 물량이 빠지게 된 셈이다. – 아시아경제, 2017년 4월 14일.
앨빈 로스는 책에서 학교 배정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학교 선택제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단순하고 안전하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우수한 학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없다.”고 근본적인 한계를 전제하며, “결함 있는 시장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물리적이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기존 시장을 빠져나가 암시장에 의존하는 현상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을 행복주택에 적용한다면, 입주자 선정방식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입주자 선정방식에 결함이 있다면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은 행복주택을 기대하기보다는 다른 시장에 의존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청년대상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라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용 공공임대주택, 신혼부부용 공공임대주택으로 구분하여 공급계획을 명확히 밝혀 정책대상에게 공급될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한다.
또한 신혼부부 우선공급 물량 배정기준은 혼인과 출산을 촉진하기보다 혼인과 출산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컨대 현재 국민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주택 등의 신혼부부 우선공급 물량의 배정기준은
한편, 전체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행복주택과 기존주택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예비신혼부부’에게도 입주자격을 부여하는 사례가 있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 이외에 예비신혼부부 자격을 별도로 두는데 구체적으로 [혼인을 계획 중이며 입주지정기간 만료일까지 혼인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두었고, 기존주택전세임대주택의 경우도 [해당년도 혼인예정인 예비신혼부부]에게 후순위 자격을 부여한다. 오히려 이 방식은 예비신혼부부를 참여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혼인과 출신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 기준을 다른 공공임대주택까지 확대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 기사 출처: 권재희 기자, 대학·사회초년생은 청년층 아닌가요, 아시아경제, 2017년 4월 14일.
주택정책의 목적은 주거안정이다. 즉 공동체 구성원들 각각의 실존적 주거불안을 보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택정책의 하위 범주인 공공주택 정책은 목적은 약자에 대한 국가의 후견적 지원이다.
따라서 공공주택 정책을 입주 자격의 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약함의 정도”을 기준으로 삼아야 애초의 목적과 부합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령 소득분위를 일관된 기준으로 유지하는 방식)
하지만 실무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 이유는 다른 정책들과 원칙 없이 혼합되거나 심지어 종속되기 때문이다.
흔한 경우가 주택정책이 경기부양정책에 종속되는 경우이다. 이는 선진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주택의 종주국인 네덜란드의 경우도 주기적으로 경기부양정책에 종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중앙정부가 사회주택 건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자, 주택협회를 제치고 “대형 건설사”들이 세차게 항의했다는 미담(?)도 전해진다.
또한 도시주택기금의 운영실태를 살펴보면, 정책 목적의 무원칙한 혼합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기금이 주거복지를 목적으로 하는지, 내집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위 칼럼에서 지적한 공공주택 정책이 혼인과 출산 촉진정책에 종속되는 경우도 “목적의 잠탈” 사례에 포섭될 수 있다. 청년 1인 가구의 상당수가 혼인의 대열에 참여할 여력조차 없음이 분명함에도, 선정 순서를 간단하게 전도시킨 사례로 보인다.
주거안정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길이 안전하게 확보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택정책의 독립이 요청된다. 다른 정책들과의 협력 역시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 협력은 독립을 전제로 한 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주거기본법 제8조에서 국토교통부 산하에 설치되도록 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정책 이외에도 여러 정책들을, 때로는 상충되기도 하는 여러 정책들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무원칙한 정책의 혼합과 종속”이 매우 높은 확률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내각에서 독립된, 별도의 사무국을 가지는, 그 구성원의 임기가 보장된, 기술적인 안건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안건까지 다루는, 즉 공동체의 합의를 지향하는, 가령 ‘국가주택위원회’같은 독립기관이 요청된다.
안녕하세요. 위 글을 쓴 황서연입니다:D 좋은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 때 모 후보의 공공임대주택 입주기준 일원화 공약이라든지 ‘주택청’ 신설과 같은 공약에 관심이 있었는데, 다시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