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년 전 쯤 여기저기서 정치 정세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는 보수층 내부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등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청중들은 매우 흥분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전만 해도 보수 절대 우위의 정치 지형이 유지되고 있는 조건에서 정권교체를 둘러싸고 상당히 회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이 7개월 이상 앞당겨 치러지기에 이르렀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양강 구도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야당 후보끼리 승부를 다투는 기상천회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극히 난망한 과제처럼 여겼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현상처럼 다가왔지만 1년 전에는 상상초자 쉽지 않았다.
옛 어른들은 혁명에 대한 열망을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으로 표현했다. 지금 바로 세상이 뒤집어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요지부동이었던 보수 절대 우위의 정치 지형이 진보 절대 우위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촛불시민혁명이라는 용어는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촛불시민혁명이라는 표현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화투쟁의 기폭제가 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한국 사회 민주화 정착의 출발점이 된 1987년 6월민주항쟁 어느 곳에도 혁명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지 않다. 그런데 감히 촛불시민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 제기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촛불시민혁명은 액면 그대로 혁명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촛불시민혁명은 기존 틀 안에서 더 이상 답을 찾기 어려운 시점에 발생했다. 국민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은 1997년 3.6%에서 2014년 10.4%로 상당히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불평등 문제는 나날이 악화되었다. 한국의 국민총생산 대비 연구개발투자는 4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으나 생산성은 세계 35위로 바닥을 기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폭넓게 진행되었으나 그 수가 나날이 증가해 왔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전체 노동자의 70퍼센트 정도가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나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기존 틀 안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입증해 준다. 혁명은 한 사회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둘째 촛불시민혁명은 기득권 세력을 제압할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만약 기득권 세력이 완고하게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기존 사회 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동안 재벌을 정점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 안정적으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세력 전체가 그들을 철통같이 감싸주었기 때문이었다. 기득권 세력은 보수라는 난공불락의 성채 안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촛불시민혁명이 바로 그 보수의 성채를 가차 없이 붕괴시켰다. 보수 세력은 산산조각 났고 정치적 구심이었던 자유한국당은 귀퉁이로 내몰렸다. 이 모든 것의 집약적 결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의 최강자이자 실질적 지배자이며 실세 중의 실세인 재벌 총수 1인자가 국민의 손에 체포된 것이다.
셋째 촛불시민혁명은 혁명의 역사를 이어갈 새로운 주체 세력을 무대 전면에 등장시켰다. 한동안 서울 도심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라는 이질적인 두 집회가 차벽을 사이에 두고 분단을 재현하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두 집회는 무엇보다도 어느 세대가 주도했는가에서 확연히 갈렸다. 누가 봐도 촛불집회를 주도한 것은 청년 세대였다. 청년 세대는 촛불시민혁명의 승리를 경험하면서 온전히 자신감을 회복했다.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것은 강력한 수평 지향성이다. 청년 세대는 수평 지향성을 구현하는 방향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일환으로 집회 문화를 바꾸었으며 촛불집회는 그 결과물이었다. 청년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허물고 세상을 수평하게 바꾸어갈 것이다. 권력과 소득을 수평하게 재분배함으로써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해소시켜 갈 것이다. 청년 세대가 운명적으로 가야할 길이다.
촛불시민혁명은 혁명이다. 문제는 지금의 대선 정국이 혁명의 흐름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가이다. 혹시 너도 나도 대선이라는 게임에 매몰되어 불과 얼마 전에 역사적인 혁명이 일어났고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냉정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야권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촛불시민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면서도 촛불시민혁명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무대에 오른 선수들이기에 뚜렷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한계를 직시하는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인 시민들이 그 한계를 망각하고 정치권에 모든 것을 위임한 채 뒷짐만 진다면 혁명은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정권교체는 답안지가 아니라 수많은 질문들로 가득 차 있는 문제지로 다가올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진정한 축복은 문제지에 시민 자신이 원하는 답을 채울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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