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벤처업계에 만연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데 대한민국이 주력해보자.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서 중소벤처기업에서의 노동권 신장과 노동조합 설립, 지역별·산업별 단체협상의 법적 의무화, 근로기준법 준수 감독에 집중하고, IT 개발회사를 포함한 모든 중소벤처기업들에서 직원들의 임금이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오르게 하며, 하루 10시간 이상, 주 50시간 이상 근무를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는 일에 온 국력을 집중해보자는 제안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제조업에서와 달리 내수산업 특히 내수서비스업 업체들의 경우, 원청 대기업의 수익률은 현저하게 높은 데 반해 1차 하청협력업체의 수익률은 기이할 정도로 낮다. 또한 이들 내수업종의 1차 하청협력업체들의 다수가 별다른 기술력이나 품질능력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납품하고 공급한다는 특징도 가진다. 저임금이 하청·외주 계약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은 건설과 유통, 통신, 시스템통합과 같은 내수산업이다. 이들 업체에서 경쟁력이 큰 요인은 기술능력 및 품질능력이 아니라 종업원의 인건비를 낮추는 능력이다. 물론 전자와 자동차, 기계, 조선 등 수출제조업 업종에서도 2차 또는 3차 이하 하청납품의 경우 기술력과 품질능력은 비슷비슷하게 낮으므로 누가 더 저임금의 노동력을 잘 갈취하여 저가로 납품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경쟁 요인이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 업종과 하청에서 나타나는 납품 또는 외주(outsourcing) 계약은 형식상으로는 ‘법률상 독립적인 업체들’ 사이에서 ‘상거래 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위장된 근로계약’으로, 즉 노예계약이다.

기업 간 상거래 계약으로 위장된 저임금 노동계약

대표적인 사례가 건설업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저임금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도급이 기술력 및 품질능력 향상과 거의 무관하며 악질적인 간접고용 즉 ‘상거래 계약의 가면을 쓴 저임금 착취 근로계약’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통상 한국의 건설 사업에서는 발주처가 발주를 하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종합건설회사들이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하여 그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낸 회사가 시행사를 맡는다. 이것을 최저가 입찰 제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종합건설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종업원들을 데리고 직접 그 건설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토목, 방수, 설비, 전기, 인테리어 등 각 분야별 전문 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들에게 하청을 준다. 여기까지는 합법이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가 직접 자기가 고용한 정규직 종업원들을 데리고 공사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1차 하청업체들은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팀장급 인력들을 보유하는데, 팀장급은 자신과 함께 일할 10~30여 명을 데리고 다닌다. 이들 팀장급 인력이 바로 2차 하청업체 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 팀에 목수와 철근공, 비계공 등 30명 정도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팀장은 하도급 계약의 중간에서 수익금을 챙긴다. 이들 팀장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인력으로도 부족하면 또 다른 사람들도 채용한다. ‘오야지’라고 하는 더 작은 팀장을 부르거나, 여의치 않으면 인력회사에 날품팔이 인력을 요청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저임금 착취가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최저가 낙찰 방식이기 때문에 시행사인 종합건설회사에서 인건비를 넉넉히 책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둘째로, 다단계 하청을 거치면서 각 단계의 하청회사 업주가 자기 나름의 수익을 제하고 (물론 이 역시 갈수록 적은 수익성으로) 재하청을 주기 때문에 각 단계 하청회사 종업원의 임금이 매번 10~20%씩 깎인다. 1차 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가 자기 회사 노동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노동자 임금과 안전설비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2차, 3차 재하청을 주게 되고,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 중간 단계 업체사장들이 매번 5~10% 수익을 남긴다. 그 결과 건설업계 전반에서 임금과 안전 수준이 낮아진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OECD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삼성SDS는 어떻게 삼성 동물원을 운영하나

산업 현장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력이 다단계 하청을 통해 갈취당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업종이 IT서비스업으로서, 소프트웨어 개발이 전형적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과 같은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은 정부기관 등 발주처로부터 대형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다. 그리고는 그 개발 사업의 각 요소들을 여러 개로 쪼개어 다수의 외주업체에 아웃소싱한다. 그 과정에서 2차, 3차 하도급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 때문에 본래의 개발 프로젝트 비용의 상당액이 중간 수수료 즉 중간착취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실제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의 손에 들어가는 임금과 보상은 크게 줄어든다.

IT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은 이 같은 하도급 관행이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 만연한 저임금과 고용불안, 과중한 업무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비판해왔다. 벤처기업가 안철수가 갑자기 2012년에 대선 후보급 정치인으로 뜨게 된 것도 2010년 당시 그가 청춘콘서트마다 ‘삼성 동물원’을 비판하면서 삼성SDS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 발주 업체의 불공정한 하청 관행을 비판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건설업과 자주 비교된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에서 그 말단에 있는 ‘정’은 ‘주말도 없고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개발자’이다. 슈퍼갑은 삼성SDS와 LG CNS, SK C&C 같은 대기업들이다. 그들이 하도급을 주면 그 도급(하청) 업체가 또다시 재하청을 준다. 갑은 직접 개발하는 건 없고 하청업체가 수행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만 한다. 슈퍼갑 대기업의 과장들이 자기보다 열 살 많은 하도급 업체 사장한테 막말과 욕설을 할 정도이다. 그만큼 갑을(甲乙) 관계가 심각하다.

하도급 계약은 치열한 경쟁 입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완전경쟁 시장이다. 수요자(갑)의 숫자는 적은데 을과 병, 정은 우글우글 거릴 정도로 숫자가 많으니 공급자(납품업체)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납품업체들은 서로 눈치껏 가격을 내리고 개발기간을 짧게 하겠다고 제시한다. 인건비 원가도 못 건지는 저가의 개발 프로젝트인데도 하청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경쟁 입찰에 참여한다. 최저 가격에 최단의 개발기간을 제시한 외주업체가 그 상거래(하도급) 계약을 따낸다.

완전경쟁 시장에 가까운 외주납품 입찰에서 저가에 낙찰한 하청업체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개발기간을 단축한다. 5명이 5개월에 마쳐야 마땅할 개발 프로젝트에 5개월간 3명만 투입되거나 5명이 3개월 만에 끝내라고 독촉한다. 두 경우 모두 근무자들이 야근과 철야를 하지 않고서는 개발을 끝낼 수가 없다. 하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실제 말단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에게 돌아오는 보수는 적어지고 개발자는 저임금과 중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계속)

* 그동안  정승일의 <헬조선에서 살아남기1,2>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는 근간『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2017, 책담)로 다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표와 그림을 포함한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pdf 파일을 다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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