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떠올려 보자. 독일군은 상상 초월의 시가전을 거듭한 끝에 시가지의 80퍼센트를 점령함으로써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의 포위 전략에 말려 일순간에 참혹한 패배를 겪었고, 이는 독일을 2차 세계대전의 패망국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고 자신했지만 앗! 하는 순간 참혹한 실패로 전락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한국현대사는 고비마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결정적 돌파구를 열어 온 역사였다.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린 1960년 ‘4월혁명’,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1979년 ‘부마항쟁’, 군사정권에 최후의 철퇴를 내린 1987년 ‘6월민주항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항쟁으로 일구어낸 승리 역사가 순탄하게 지속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도리어 뒤를 이은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닌 탄식과 절망의 한숨소리였다. 이 모두가 바로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정치권의 탐욕이 빚어낸 음습한 아래와 어두운 뒤 켠 이었다.
4월혁명과 함께 이전 시기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일시에 집권 여당이 되었다. 하지만 신파와 구파로 갈리면서 혼란스런 정쟁을 반복했다. 결국 1년 뒤 5.16군사쿠데타가 단행되면서 피로 얻은 민주주의는 침몰하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 몰락 이후에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씨’는 저마다 권력에 손에 쥔 듯이 의기양양하며 제 갈 길을 갔다. 그 결과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권력 찬탈이었다. 절망의 어둠을 헤치고 민주화투쟁의 불꽃을 당긴 것은 광주 시민들의 피의 항쟁이었다.
1987년의 경험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당시 국민 절대다수의 염원이었던 민주화의 고리는 바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었다. 직선제로 김대중과 김영삼, 이른바 ‘양김씨’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세우면 민주화는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렇게 민주화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직선제 개헌 이후 양김씨가 5년을 참지 못해 서로 먼저 대통령이 되겠다고 갈라서면서 어렵게 얻은 승리를 군부 출신에게 헌납하고 말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제3당 위치에 있던 김영삼은 그 상태에서는 집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 보수 성향의 정당과 손잡고 ‘3당합당’을 전격 추진했다. 그 결과로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보수정당 우위의 뒤틀린 정치지형이 지속되었다.
만약 1987년 이후 양김씨가 분열되지 않고 함께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정당의 절대 우위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한국 사회와 남북 관계 모든 점에서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반세기에 이르는 기나긴 굴절의 시기를 거친 뒤 어렵사리 3당합당의 후과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새누리당의 기반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4.13총선을 거치며 새누리당을 떠받친 양대 동맹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TKPK지역동맹에서 PK가 이탈하기 시작했고, 5060세대동맹에서 50대가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정세에 따라 입장을 바꾸어 왔던 수도권 전략 선택 층도 등을 돌렸다. 그러던 차에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면서 새누리당을 일거에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비박 세력의 동요와 이탈로 당이 언제 쪼개질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참패와 자신들의 승리는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촛불시민혁명의 쓰나미는 낡은 정치 질서를 강타하면서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 양상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비웃으며 의외의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조만간 정치권은 연대와 통합을 통한 새판 짜기에 골몰할 가능성이 높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에 다룰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의 포로가 되어 기존 틀 안에 갇혀 있다가는 졸지에 주변부로 내몰릴 공산이 대단히 크다. 그 점에서 문재인과 민주당은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 11월 23일 김무성이 대선 불출마와 박근혜 탄핵 추진 등의 입장을 표명했다. 다음 날 이를 다룬 <한겨레>, <중앙일보>, <조선일보>의 기사 기조가 사뭇 달랐다. 대척점에 선 것은 <한겨레>와 <조선일보>였다. <한겨레>는 김무성이 친박 청산을 통한 당의 혁신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탄핵 추진이 새누리당을 친박당과 신보수당으로 쪼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중앙일보>는 중간 입장에서 김무성이 당 안팎을 넘나들며 정개개편을 이끌 것이라 예측하였다.
각 신문의 기조는 은연중에 주관적 희망 사항을 반영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촛불집회에서 가장 자주 외쳐졌던 구호는 박근혜 퇴진과 함께 새누리당 해체였다. 새누리당 해체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당이 두 개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지는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의 해체에 가장 적극적인 기사를 내보낸 것은 <한겨례>가 아니라 <조선일보>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그 배경에는 각 매체가 그리고 있는 향후 정치 지도의 차이가 도사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일관되게 친박과의 결별을 전제로 제3지대를 무대로 한 보수의 재구성(신보수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그럴 때만이 보수 중심의 권력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어떤가? <한겨레>의 논조는 문재인 진영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문재인과 민주당 지도부는 촛불민심이 폭발한 이후 상당 기간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기존 3자 구도가 유지될 때 집권 가능성이 가장 크며, 새누리당이 붕괴되어 양자 구도로 가면 불리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촛불시민항쟁은 문재인과 민주당 지도부가 선호하는 구도를 뒤흔들어 놓을 요소였다. 실제 비박과 국민의당이 연대 가능성을 내비치자 민주당 지도부는 이성을 잃은 채 극도의 신경과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추미애 대표의 반복되는 실언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시기에 문재인과 민주당은 여전히 기존 틀에 갇힌 채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기득권에서 벗어나 정치권 새판 짜기에 주도적으로 나설 안목도 의지도 모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민심의 흐름에서 유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칫 친박과 친문세력이 동반 몰락하는 운명에 처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해온 두 세력은 차제에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일반 논리의 귀결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촛불시민항쟁을 실질적인 정치적 승리로 이어가기에는 전반적인 상황이 너무나도 불안하다. 각자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역사의 잔혹함에서는 눈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 ’라는 탄식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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