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 의사당의 복도에는 의원들이 유권자들을 접견하기 위한 로비 (lobby) 가 있었다고 한다 . 이곳에는 수시로 의원들에게 하소연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그 하소연이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또는 불리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로비라는 단어에 ‘ 청탁 ‘ 이라는 의미가 붙게 된 유래이다 . 미국은 로비스트들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진다 . 모든 과정을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로비활동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 실질적인 로비스트가 10 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 사회가 점점 다원화됨에 따라 무수한 이익집단이 생기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로비스트들의 할 일 또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로비를 제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고 있지 못하다 . 로비 , 특히 의회나 정부를 대상으로 한 청탁은 부정부패 , 정경유착 등과 같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정치적 로비를 이익집단 , 관료사회 , 정치인이 결탁해 시장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정부실패의 한 요인으로 해석하고 철의 삼각동맹 (iron triangle) 이라 하였다 . ‘ 특정 이익집단이 관료들을 부추겨 규제를 만들고 공공지출을 계속해서 늘려나간다 ‘ 는 것이다 . 그가 일생동안 주장한 ‘ 작은 정부 , 큰 시장 ‘ 의 논거 중 하나이다 . 이는 MB 정부 출범 이후 정국을 강타한 공기업선진화 규제선진화의 논리로도 이용되고 있다 . 공공부문의 적자는 늘어 가는데 이기적인 이익집단인 공기업노조가 선진화를 방해하고 있다거나 규제로 먹고사는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규제를 자꾸 늘려가고 있다는 투다 . 이런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리드먼과 그의 추종자들이 추구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방편은 아니다 . ‘ 공공성 ‘ 이 아니라 ‘ 이익 ‘ 이 추구되는 한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하는 이익집단 , 관료 , 정치인만 바뀔 뿐이다 . 프리드먼은 정부의 비효율성이라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엉뚱한 답을 낸 것이다 .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격이다 . 문제의 본질은 정부실패 ( 정부의 비효율성 ) 가 아니다 . 오히려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성을 지워버리는 시장실패가 삼각동맹의 요인이다 . 정부 역할 ( 규제 ) 의 본질은 이런 삼각동맹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
10 년 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 소방시설 공사법 개정안 ‘ 을 살펴보자 . 국회와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2013 년 소방시설 공사 발주금액은 약 3 조 6 천억 원이라고 한다 . 그런데 실질적으로 공사에 쓰인 금액은 1 조 9 천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 공사를 딴 업체 ‘ 갑 ‘ 이 업체 ‘ 을 ‘ 에 하도급을 주고 다시 업체 ‘ 을 ‘ 이 업체 ‘ 병 ‘ 에게 하도급을 주는 식으로 도급에 도급을 거듭하다 보니 중간마진으로 새는 비용만 35~40% 에 달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 이를 막기 위해 소방시설 공사를 종합건설사에 일괄발주하는 대신 소방시설 전문업체에 직접 분리발주토록 하는 법안이 ‘ 소방시설 공사법 개정안 ‘ 이다 . 19 대 국회 들어서 이런 취지의 안건이 3 건이나 발의되었다 . 하지만 이 법안들은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 건설업계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형건설사 입장에서는 앉아서 중간마진을 날릴 판이니 당연할 것이다 . 건설업계의 강력한 로비가 전개되었다는 소문이 있고 실제로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였다 . 어디 이 사례만 있겠는가 . 철의 삼각동맹의 한 꼭짓점에 ‘ 재벌 ‘ 을 써놓고 싶은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
이런 부조리를 바로 잡는 방법은 행정과 입법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 당장 감사원의 독립적인 활동만 보장하더라도 많은 진전이 있을 것이며 , 국민권익위원회 , 인권위원회 등을 정상화시키는 것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 언론의 자유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 입법과정 정책집행과정 하나하나를 국민이 직접 감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결국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철의 삼각동맹을 깨기 위한 정답이다 .
다수의 약자를 보호해야할 정부의 역할과 규제를
규제철폐라는 핑계로 서민 보호장치들을 제거해 버리면
국민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잘 읽었습니다.
* 오베베 회원님께서 새사연 메일로 보내주신 의견입니다.
새사연의 연구에 항상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우려 때문에 국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양한 감시와 견제 활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글쎄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그렇게 폄하하시다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요, 시카고 학파라는 거대 주류 담론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될겁니다. 또한 신자유주의를 너무 비난하다 보니 정부의 실패는 하나도 없다고 간주하거나 70~80년대 처럼 정부주도형, 관치금융이 좋은 것이다라는 식의 사고로 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에볼라 백신 개발이 미흡한 것도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하는데, 그럼 신자유주의 이전 1950~1960년대에는 기업들이 이윤을 하나도 신경 안썼답니까?
글쎄요, 아무리 유명한 학자라도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 했다면 비판받아야죠. 그래야 학문이 진전하지 않겠습니까? ^^ 프리드먼이 뭐 큰 잘 못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익단체 못지 않게 대기업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고 지적한 겁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
오히려 정부실패가 원인이라는 프리드먼의 지적은 정확합니다. 규제는 정부가 만들거든요. 정부가 쓸데없는 규제를 만들고, 시대가 바뀌는데 따라가지 못하니 오히려 규제가 기업과 국민경제에 족쇄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민들의 낮은 지력 또한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죠.
가령 대형마트 휴무제를 정부규제로 하다보니 맞벌이 부부는 장도 못보죠. 재래시장 가라고 하지만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은데도 ‘연대’운운하면 잘도 연대하겠어요. 재래시장도 품질규격화나 서비스 개선, 신용카드 사용장려 등을 통해 경쟁시켜야 하는데, 그런건 ‘다 서민죽이기’로 전제하고 규제하니 정부실패죠.
민주주의가 해법이라는건 동의하지만 민주주의가 중우정치화 되어가고 낮은 지력으로 떼쓰기가 횡행하는 가운데, 정부는 대중의 변덕스러움에 춤을 추며 규제를 하니 이건 정말 잘못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