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지는 걸 보면 계절이 바뀌는 모양입니다.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가면 “이제 좀 살겠다”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법이지만, 이번엔 시름만 깊어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되라”던 오랜 덕담도 추석을 길 위에서 맞아야 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선 꺼내선 안 되는 말이 됐습니다.”눈 딱 감고 다 풀어라”긴 탄식이 나올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다소 주춤했던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군사작전이 일제히 재개됐습니다. “눈 딱 감고 풀어라”. 9월 3일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이 지시는 모든 걸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부작용 걱정하지 말고 기업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라는 얘깁니다. 이런 걸 말 그대로 ‘맹목’이라고 하는 거죠. ▲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점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 정부는 △도시 및 건축규제 혁신(국토부) △인터넷경제활성화(미래부) △농업 미래성장 산업화(농식품부) 등 3대 핵심 분야의 ‘개혁방안’을 발표했는데요. 1차 회의의 상징이 “학교 옆 관광호텔”이라면 이번엔 “상수원 옆 공장”입니다. 이날 상수원 보호구역에 당장 한과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한 귀농인의 발언에 대해, 조사 후에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내년 중 허용되도록 하겠다고 환경부 장관이 화답했습니다. 대통령이 다그칩니다. “내년요? 오염시키는 것이 경미하면 허용시킬 수 있는 규정도 있다면서요?” 바로 “눈 딱 감고 풀어라”의 모범을 보인 거죠. 국민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상수원의 오염에도 눈 감으란 얘깁니다. 도시 및 건축규제 혁신 분야에는 아버지 박 대통령의 업적인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규제를 푸는 방안도 담겼습니다. 개발제한구역 내에 국가나 지자체에만 허용했던 캠핑장 등 실외체육시설을 민간에도 허용하겠다는 겁니다. 인터넷경제 활성화 분야에는 외국인의 이용을 제약해온 국내 온라인쇼핑몰이나 디지털콘텐츠 사이트에서의 인증 방식 간소화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최근 방영된 우리나라 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 중국 소비자들이 주인공이 입고 나온 의상 등을 사기 위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매에 실패했다고 한다.” 3월 20일 점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이른바 ‘천송이 코트’ 문제가 해결된 거죠.이날 나온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년까지 10개 부처에서 22개 법률 개정과 23개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래 표로 요약해 놓았습니다.[관련 기사](☞ 정부, 3대분야 핵심 개혁방안 중 입법사항은 무려 22건)이들 법안이 또다시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을 경우 박 대통령은 “야당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을 계속할 겁니다.”서울시도 잡아라”9월 1일 국토교통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한발 앞서 실행했습니다. 부동산 관련 규제야 더 풀 게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 ‘주택시장 활성화 방안’에선 아예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관련 글] (☞ 9.1 부동산 대책 내용 들여다보기)
지난 7월 24일에는 이명박 정부도 끝까지 결행하지 못했던 LTV·DTI 규제 완화를 발표했죠. 이번엔 서울 도심의 투기를 일으킬 재건축 규제 완화가 핵심입니다. 이 중에는 30년 이상 한국 주택 건설의 근거 법 역할을 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공공주도의 대규모 공급은 없을 거란 얘기죠. 대신 경기 자극의 효과가 큰 도심의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는 겁니다. 재건축의 연한 규제와 안전진단 기준을 크게 완화하고 재개발·재건축의 임대주택·소형주택 의무 건설 비율도 대폭 완화하여 재건축 대상 주택 밀집 지역에 투기 수요를 집중시키겠다는 거죠. 가히 화룡점정이라 ‘투기의 불쏘시개’를 내놓은 겁니다. 이 외에도 무주택자를 우대하는 주택청약제도를 개편하여 다주택자의 분양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한 것도 ‘무주택자 우선 공급’이라는 사회 정의 차원의 규제를 풀어 버린 거죠. 제가 청와대 비서관일 때 부동산 관련 부처 1급 회의를 연 적이 있습니다. 실무 과장에게 이들의 주소를 조사해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모두 강남에 살고 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이들 고급 공무원의 집값도 물론 오르겠죠. 대책 발표 이틀 만에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 호가가 수천만 원 오르고 집 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정책은 성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금년 상반기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겨우 0.7퍼센트(%) 성장했습니다. 5%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더 떨어지겠죠. 수출과 강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리 만무합니다.
한편,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소비가 늘어날 수도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은 오래가지 않아 꺼질 수밖에 없겠죠.”어쩌겠는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아무리 집값이 들썩거린다 해도 절대로 빚내서 투기 대열에 동참하지 마시라.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그 거품은 앞으로 1~2년 내에 꺼질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금도 잔뜩 끼어 있는 거품까지 한꺼번에 걷힐 가능성이 높다.”9월 1일 자 <경향신문> 칼럼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관련 글] (☞ [정동칼럼] “대공황 그 이상”)국토교통부의 이번 정책에 대해 대구가톨릭대의 전강수 교수가 흥미로운 관점을 내놨습니다.”사실 9·1대책 중 재건축 규제 완화 부분은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한 성격이 짙다. 서울시가 40년으로 정해 놓은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줄이고, 다수의 뉴타운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는 공공관리제를 공공지원제로 후퇴시키는 등의 내용을 포함시킨 걸 보면 말이다.”[관련 글] (☞ ‘너무나 정치적인’ 9·1 부동산 대책, 누가 웃을까)서울시가 추진하는 새로운 방향의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수도권 집값을 올려 주는 정권으로 인식되도록 하겠다는 거죠. 과연 이 전략이 성공할지는 의문입니다만, 다시 한번 부동산 광풍에 휩쓸려 서울의 중산층이 빚을 내 집을 산다면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에 목을 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번에 또다시 거품이 낀다면 과거와 달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터질 겁니다. 나만 횡재해서 잘 사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해질 방법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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