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 흐름을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지난 7월 24일 최경환 부총리가 새 경제정책팀의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거시 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말로 요약되는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부채 주도 성장 정책’우선 주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대출을 일으켜 8.5조 원을 공급하고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을 10조 원 늘리는 등 총 41조 원에 이르는 돈을 동원하겠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채로 돈을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이 1분기에 비해 0.6%(2013년 2/4분기 대비 3.6% 증가)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2014년 2/4분기 실질국내총생산(속보) ⓒ한국은행 프레시안 독자들은 분기마다 위 표를 보셔서 이제 익숙하실 겁니다. 1/4분기의 0.9%에 비해 성장률이 둔화된 것은 주로 민간 소비가 0.3%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말씀 드린 대로 정부가 성장률을 전망할 때 소비증가율을 3%로 상정한 건 몇 년간 반복해서 저지른 잘못입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민간 소비 항목을 보면 매 분기 1%를 넘은 적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은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5로 전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는데, 특히 현재와 비교한 6개월 후의 경기 전망인 향후경기판단 CSI는 92로 지난달의 98과 비교해서 6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소비는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라는 거죠. 즉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건데 가계 부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기업의 지출인 설비 투자가 증가로 돌아서긴 했지만 1.3%로 미약하고 지식재산생산물 투자는 4.2% 감소했습니다. 기업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지금 확장 정책을 써야 한다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돈을 모아 어디에 쓰느냐는 거겠죠.
이번 발표는 기금과 정책금융에서 대출로 돈을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정책을 ‘부채 주도 성장 정책’이라고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대출로 돈을 공급하는 일명 ‘부채 주도 성장 정책’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연합뉴스
지난 30년 동안 세계는 한편에서는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을,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부채 주도 성장 정책을 써 왔습니다. 예컨대 동아시아가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을 쓰고 미국이 빚으로 그 물건을 사서 성장을 유지한 거죠. 유럽의 경우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이 수출 주도형이고 지난 2011년 이래 위기 상태에 빠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부채 주도형입니다. 물론 한국은 대표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지지부진하고 원화 절상 압력 때문에 앞으로 수출이 과거처럼 두 자릿수로 증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위 표를 보면 분기별 수출 증가율이 2% 안팎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따라서 내수, 즉 소비와 투자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건 올바른 방향입니다. 문제는 가계 소득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인데, 이번 발표는 부채를 통한 내수 진작, 그것도 건설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부총리 인사 청문회 때도 말씀드렸듯이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토건족이거든요. 기업소득의 가계 환류?한국의 가계는 빚투성이지만 기업은(사실은 일부 재벌은) 부자입니다.
최경환의 경제학에서 눈길을 끈 것은 ‘가처분소득의 증대’를 위해 기업의 이익을 가계로 흘려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개의 ‘패키지 정책’이 발표됐는데, 첫째는 근로소득 증대 세제입니다.
최근 3년 평균 임금상승률을 초과해서 임금을 올린 기업에게 초과분의 10%(대기업은 5%)를 세액공제해 주겠다는 겁니다. 기업의 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겠다는 얘기죠. 대체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의 노동자가 대상이 될 텐데 그 액수도 기껏 1000억 원에 머무를 것이랍니다. 어쩌면 기업들이 이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앞으로 1,2년 동안은 임금 인상률을 낮추거나 심지어 인하할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이익을 일정 수준 이상 인건비나 투자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 기업소득 환류세를 물리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이 반발하죠. 그러자 최 부총리는 새로 부과되는 세금의 총액이 그동안 내려준 법인세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기업이 토지를 구입하는 경우도 투자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부동산 규제 완화와 더불어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가 확대될 게 뻔합니다.세 번째는 기업의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배당소득 증대 세제입니다. 이 돈은 물론 금융 자산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이죠. 특히 배당소득을 금융종합과세에서 분리하겠다니 대자산가들은 많게는 수십억, 수백억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진정한 가계소득 증대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지원 등 비정규직 관련 대책은 10월로 미뤘습니다. 현재의 침체에서 벗어날 길은 하층의 소득이 늘어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최 부총리가 발표한 ‘기업소득의 가계 환류’는 기업의 현금 유보를 부자들에게 이전해서 소비를 늘리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특히 땅이나 주택을 구입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결론은 부동산 투기저처럼 오래 정책을 들여다본 사람은 어떤 정책이 곧바로 시행될 정책이고 어떤 게 그저 구색을 갖춘 것인지 직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그리고 주택공급 규칙의 전면 재검토, 재건축·재개발 규제 개선 등입니다. 한마디로 가계 대출을 늘려서 주택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규제 완화로 공급도 늘리겠다는 겁니다. 주택 투기 수요에 의해 건설 붐을 일으키겠다는 거죠. 이 면에서 그의 정책은 수미일관합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이 곧 규제 완화라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그런 규제 완화의 시범을 주택 부문에서 먼저 보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5조 7000억 원에 이르는 평택-부여고속도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도 덧붙었습니다.즉, 그의 내수 확대란 주택과 공공에서 대규모 건설 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이고 가계소득의 증대는 주로 상층의 호주머니로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기업이건 가계건 빚이 늘어날 겁니다. 지금도 가계 부채에 허덕이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이 이런 투기 붐에 동승할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소득이 늘어난 상층의 주택 구입이 증가할 것은 거의 분명합니다. 중하층은 대출 규제 완화에 힘입어 전세금 인상분을 충당할 텐데, 이 돈 또한 부자들에게 들어가는 거죠. 최경환 부총리가 인사 청문회 때 정책 기조의 변화라고 말한 건, 실은 과거의 수출 주도 성장 정책에 부채 주도를 덧붙인 것뿐입니다. 금리 인하에 의해 돈을 풀고 각종 규제 완화에 의해 투기를 부추기면 단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 한계에 이르러 소비를 줄이고 있는 중하층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미국처럼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소득 증가분은 거의 모두 상위 1%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의 부채가 증가하면 갑작스러운 쇼크로 수출이 감소할 때(예컨대 미국의 현재 거품이 꺼지거나 중국의 성장률이 더 낮아지면) 대기업들도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침체가 위기로 바뀌게 되겠죠.
이미 무능함을 증명한 박근혜 정부는 말기에 대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건, 경제 정책에서 새누리당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과 무기력입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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