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닿는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한 두 후보는 당선됐다. 출구조사부터 널찍한 폭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에 여느 선거처럼 바작바작 애가 타지도 않았다. 더구나 교육감 후보는 4%에서 40% 지지로 기적을 빚어내며 승리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기초선거 결과가 보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발단은 이랬다. 마포구 오진아(정의당), 구미시 김수민(녹색당), 관악구 나경채(노동당) 의원은 모두 한 뿌리 진보정당 출신 현역 의원들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이들은 빼어난 성과를 거뒀고 주민들과 한 호흡이었지만 모두 낙선했다. 여기에 더해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과천의 서형원 후보(녹색당)도 낙선했다. 이들이 떨어진 이유는 도대체 뭘까? 흔히 듣는 답은 새정치연합과의 ‘후보 단일화 부재’이다. 진보정당은 교과서적 정당정치를 하는 곳이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가치와 비전, 정책에 관해 (간혹 과도할 정도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지역에 뿌리박으려 노력하는 정당들이다. 이들 정당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스러운 정당은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도대체 정당이 뭐길래? 이 의문은 꼬리를 물고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4년 만에 평균 9.3%포인트 올랐다. 흔히 세월호 참사의 여파라든가 후보 단일화, 그리고 혁신교육의 성과를 이유로 든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은 모두 합쳐 10%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당선 교육감들의 성향은 새정치연합이라기보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에 더 가깝다. 교육감 당선자들도 지지하는 당을 표기했다면 낙선했을지도 모른다.그렇다고 새정치연합 소속이거나 후보 단일화가 당선의 충분조건인 것도 아니다. 같은 새정치연합 소속이라 해도 박원순, 최문순 당선자와 송영길, 김진표 낙선자를 비교해 보면 누가 뭐래도 후자가 더 ‘진성 민주당’ 사람들이다.
즉 거의 같은 조건에서 시민들은 ‘비민주당’ 인사를 더 선호한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 사진 속에서 치른 선거임에도, 침몰하지 않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하고 일부 후보의 경우 네거티브에 목을 맨 것은 정상적인 정당의 행위가 아니다. 스스로 정당임을 포기한 덕에 파국을 모면했다.이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 갖가지 “정치 혐오”와 “정당 불신”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치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공익, 또는 공공성의 내용과 실현 방식은 정치(숙의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정당하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가 암시하는 사회적 재난, 극심한 불평등이 불러올 경제적 위기(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당면한 위험, 나아가서 한 나라를 넘어서는 생태위기를 자동적으로 시장이 해결해 줄 리 없다. 오직 정치가 희망이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근대적 제도가 정당이다.선거에서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이번 선거도 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서민적 엘리트라 해도 거대한 방향 착오를 일으킬 수 있고, 합당한 정책을 수행하려 해도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치 엘리트의 견제, 정책 형성과 실현, 둘 다 정당이 해야 마땅한 역할이다.그런데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지금 우리 정당들은 정치를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독립지역정당의 합법화, 비례대표제의 대폭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 등 부분 해법은 수없이 제시되어 있다. 직접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거대한 위기와 맞서기 위해서도 현재의 정당정치는 총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또 어떻게?” 이 의문이 한낱 시민을 가위처럼 짓누르고 있다.*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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