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프레시안 조합원들께 경제뉴스 읽어드리는 정태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별다른 세계 경제 소식이 없군요. 이럴 때는 분명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양적 완화 정책 유지, 그리고 공화당의 몽니 – 미국의 빚은 유지될 수 있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월 85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는 현행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초저금리 기조도 이어가기로 한 거죠. 이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 등 공화당 의원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더 제공하지 않으면 옐런 연준 의장 지명자 및 제이 존슨 국토안전부 장관 지명자의 인준을 보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당파 싸움이 미국 경제를 얼마나 위험하게 하는지에 관한 생각은 물론 꿈에도 못 하겠죠.
새 기사가 없어 약간의 여유가 있으니, 세계의 흐름을 읽을 만한 칼럼 두 개를 선물로 드립니다. 하나는 10월 31일에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올라온 누리엘 루비니의 칼럼이고, 또 하나는 10월 21일의 스티픈 로치의 글입니다.(☞ Bubbles in the Broth) (☞ China’s Wake-Up Call from Washington)두 글을 이어서 읽으면, 현재 세계경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루비니는 우선 현재 각국 중앙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비전통적 정책”을 소개합니다. ZIRP(zero Interest rate policy, 말 그대로 ‘제로 이자율 정책’), QE(양적완화, 이미 단기 이자율이 0인 상태에서 장기 이자율도 낮추려고 정부의 장기채를 사들이는 정책), CE(credit easing, 민간부문의 자본비용을 줄이려고 민간 자산을 사들이는 정책), FG(Foward Guidance, 사전 예고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실업률이 일정 퍼센트가 될 때까지는 QE나 ZIRP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하는 것, 지금 연준이 하고 있죠), 그리고 NIPR(negative interest rate policy,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크루그만이 주장하고 있죠) 등입니다. 이런 정책들로 인해 금융시장은 이미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죠. 주가는 2009년 최저점에서 100% 이상 올랐고, 고수익 “정크 본드”의 발행 역시 2007년 수준으로 돌아갔으며, 저이자율로 인해 집값도 오르고 있습니다. 루비니는 이런 현상이 통화의 팽창이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자산시장을 배회하기 때문이며 이제 다시 거품을 걱정할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도입된 거시 건전성 규제가 별로 효과가 없다면, 이제 중앙은행이 할 일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상황이라고 루비니는 말합니다. 즉 경제회복을 위해 비전통적 정책을 계속 쓰자니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걱정되고, 이 정책을 거둬들이자니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는 거죠. 진퇴양난(進退兩難)인 셈입니다. 경제학자들은 그저 왈가왈부만 하고 있는 중이죠.
한편, 로치는 이제 미국과 중국의 밀월관계는 끝났다고 잘라 말합니다. 즉 과거에 엄청난 무역흑자를 낸 중국이 미국의 국채들 사들이고 미국은 그 돈으로 다시 소비를 늘리는, 이른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는 더는 지속될 수 없다는 거죠. 중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외환보유액의 60% 정도를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습니다. 중국은 위앤화 가치의 가파른 절상을 막을 수 있고 미국은 이자율(약 1%)을 떨어뜨릴 수 있었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수출주도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국내 소비를 늘리려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꿨죠(2011년 3월의 12차 5개년 계획). 로치는 채무상한 확대를 둘러싼 미국 양당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중국에 명확한 신호를 보낸 셈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수입 수요가 늘어나긴 당분간 그른 것 같고 양당의 중국 때리기는 경쟁적으로 강해질 것이며, 달러 표시 채권은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제 중국은 통화 쪽에서도 위안화 국제화 등 홀로서기를 시도할 것이고 미국도 국채를 팔아 연명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즉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정책이 더 이상의 침체를 막을 수는 있지만, 실물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경제학자들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진정한 문제가 있는 거죠.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예컨대 다극 질서에 맞게 복수의 국제통화를 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해서 거버넌스를 바꾸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누리던 특권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죠. 자국의 디폴트 상황에서도 벼랑 끝까지 맞서는 미국의 정치가 이런 어마어마한 희생을 택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다시 위기는 찾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전환기 한복판에, 지리적으로도 양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겁니다.
정부의 빚 – 정부는 한은에서 무제한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저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얘기 중 정부가 한은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정부가 올 상반기 한은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통합계정 60조 원, 공공자금관리기금 7조 8000억 원’ 등 67조 8000억 원에 이른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가 5년간 한은에 대출받은 액수가 39조 5244억 원이고 이명박 정부는 131조 5560억 원이니 박근혜 정부는 6개월 만에 엄청난 돈을 한은에서 빌린 거죠. 5년으로 환산하면 330조 원이 넘습니다. 대출금에 따른 이자 지급액만 197억 원이나 됩니다. 기획재정부는 “2012년도 예산편성 당시 금년도 세입 확보의 어려움 등을 예상해 국회에서 일시차입 한도액을 증액을 결정한 데 기인했다”며 “금년도 세수 징수가 부진한데 경기회복 지원을 위한 재정조기 집행 확대로 인한 불가피한 일시 차입 증가”라고 설명했습니다. (☞ 정부 6개월만에 한은서 67조8천억 빌려, 재정운용 논란)이런 규모의 국채를 수시로 발행한다면 분명 국회에서 제동을 걸었겠죠. 아무런 제약 없이 이뤄지는 이런 정부 대출은 어떤 기준으로 규제를 해야 할까요? 이것도 경제학이 뭔가 얘기를 해야 할 일입니다. 재벌들의 빚 – 기업발 위기의 가능성? 4일 경제개혁연구소가 2007년 이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연속 지정된 40개 그룹의 연결 재무제표를 근거로 이들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진단한 결과, 무려 20개 그룹이 연결부채비율 200%를 초과하고, 이중에서 연결부채비율이 300% 초과하는 그룹만 9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그룹도 10개나 됐습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그룹·한진그룹·두산그룹·동부그룹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고 이외에도 효성·한국GM·한라·한진중공업·동국제강·대성 등도 부실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정도면 외환위기 직전 상황과 유사해 보이는데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워낙 좋아서 평균 지표는 괜찮지만, 위에서 거론된 재벌 중 한두 개만 도산해도 당장 우리는 금융마비 상황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얘기를 들어 보시죠.(☞ [김상조의 경제시평]경제활성화? 부실기업 구조조정부터)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해서 금융위원회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대상 계열’ 제도를 신설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에 첨부한 ‘김상조 칼럼’은 정부의 이런 미봉책에 문제가 있으니 법제도적으로 확실히 부실기업처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기업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겁니다. 과연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지는 더 자료를 봐야겠지만, 대기업들도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 빠져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업부채가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가계부채보다 더 높다고 봐야겠죠.아래로, 아래로 전가되는 가계부채의 위험가계부채도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신용등급 중간계층(신용등급 10개 등급 중 5~6등급)의 대부업체 이용 비율은 2010년 13.4%에서 지난해 16.0%로 높아졌습니다. 신용등급 중간계층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 대부업체에서 빚을 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은행은 2011년 가계부채 억제대책이 마련된 이후 금융기관들이 리스크(위험) 관리를 위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위험한 가계대출을 거둬들이면 은행은 조금 더 안전해지겠지만, 이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중산층은 더 깊은 위험에 빠져들게 되겠죠.(☞ 가계부채 불안 중산층도 덮쳐)은행이 자신의 위험을 가계로 전가했다면 가계 내부에서도 빚의 전가가 일어납니다. 역시 한은의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담보대출을 보유한 전체 집주인들 가운데에서 대출을 조기상환한 비중이 2009년 4.3%에서 2013년 상반기 26.8%로 급등했는데요, 전세를 재계약하면서 전세금을 올려 자신의 빚을 갚았을 거라고 한국은행은 추정했습니다.즉, 집주인들은 전세를 올려서 자신의 주택 담보 대출을 갚고, 그러면 세입자들은 전세대 출을 늘려야겠죠. 결국 집 주인의 빚이 세입자의 빚으로 전가된 겁니다.쓰다 보니 이번 주엔 빚 얘기로 도배를 하고 말았군요. 이렇게 얘기를 마무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도 희망적인 기사를 하나 덧붙입니다.서울시 은평구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 도입했습니다. 우선 각 동마다 편성된 지역회의를 통해 주민제안사업을 취합합니다. 이렇게 모인 사업 중에서 어떤 사업을 우선 추진할지 2만여 명이 참여하는 현장·모바일·인터넷 투표를 통해 정합니다. 그러면 참여예산시민위원회가 구청이 작성한 예산안과 주민제안사업을 비교해서 예산을 편성합니다. 그렇게 2011~2012년 구청의 예산요구액 가운데 132억 원이 감액됐고, 주민제안 사업에 20억 원이 배정됐다는군요. 예컨대 상습주정차 위반구역 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 불광천변 화장실 설치 등 생활밀착형 사업들이 추진됐다는 겁니다.이렇게 시민들의 삶에 직결된 사업은 늘어나는 한편, 정치권·관료조직·건설업자·학자·언론 등 ‘5각 동맹’이 담합한 결과 생기는 불필요한 건설 예산은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민과 지자체가 정책을 공동으로 수립(co-construction)하는 거죠. 만일 시민밀착형 사업에 배정된 사업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집행하면 그건 정책의 공동 집행(co-production)이 됩니다. 가장 큰 사회혁신은 이렇게 시민이 정책에 직접 참여하고 집행까지 하는 거겠죠.(☞ “주민참여예산위 띄웠더니 꼭 필요한 사업만 쏙쏙”)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