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538) 막걸리와 삽질: 노동조건은 왜 개선되어야만 하는가?
봄 농활에 가서 농사일의 고단함을 느끼며 열댓 명이 함께 하루 종일 모내기를 했는데 절반의 일밖에 끝내지 못했다고 했다. 청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막걸리 두어 잔을 들이키던 농부 아저씨는 해질녘이 되자 지친 청년들에게 나오라고 하고 이앙기를 몰아 나머지 절반의 일을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적고 그나마 그들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농업 종사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는 고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농사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한 정치와 시장의 외면에 있다. 농부 아저씨는 농업을 외면하지 않는 어여쁜 청년들에게 시원한 막걸리 맛을 알려주려고 오히려 일거리와 시간을 내준 셈이다. 군대에 가면 삽질을 한다고 한다. 삽질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청년들에게 삽을 하나씩 주고 파내려 가면 몇 시간이 걸려야 사람 키만한 구덩이를 만들 수 있을까? 같은 크기의 구덩이를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파내면 [...]
위클리펀치(537) 회계의 역사
회계의 시작 : 계약과 재산의 ‘체계적인’ 관리 아주 오래 전 에리두(지금의 이라크 디 카르 지역) 동남쪽 마을에 살던 에아는 수십 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 심한 홍수로 기르던 소를 모두 잃은 이웃마을 친구 아다드가 암소 세 마리와 수소 한 마리를 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암소가 새끼를 낳아 총 열 마리의 소가 생기면 그 중 건강한 암소 네 마리를 받는 조건으로 에아는 아다드에게 소를 내어 주었다. 지병이 있던 에아는 얼마 후 숨을 거두면서 아들 엔키에게 때가 되면 아다드에게 빌려준 소를 받아오라고 일러둔다. 몇 년이 지난 후 엔키는 약속된 소를 받으러 아다드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얼마 전 아다드는 숨을 거두고 아들인 벨이 소를 키우고 있었다. 엔키는 벨에게 에아에게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소를 돌려달라 하였으나 벨은 아다드에게 전해 들은 바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였다. [...]
위클리펀치(536) 혁명의 내일에도 밝혀야할 밤은 온다
다시금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떠올려 보자. 독일군은 상상 초월의 시가전을 거듭한 끝에 시가지의 80퍼센트를 점령함으로써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의 포위 전략에 말려 일순간에 참혹한 패배를 겪었고, 이는 독일을 2차 세계대전의 패망국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고 자신했지만 앗! 하는 순간 참혹한 실패로 전락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한국현대사는 고비마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결정적 돌파구를 열어 온 역사였다.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린 1960년 ‘4월혁명’,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1979년 ‘부마항쟁’, 군사정권에 최후의 철퇴를 내린 1987년 ‘6월민주항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항쟁으로 일구어낸 승리 역사가 순탄하게 지속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도리어 뒤를 이은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닌 탄식과 절망의 한숨소리였다. 이 모두가 바로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정치권의 탐욕이 빚어낸 음습한 아래와 어두운 뒤 켠 이었다. 4월혁명과 [...]
위클리펀치(535) 촛불이 밝힌 역사
대통령의 극단적 일탈로 국가적 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이 더 없이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촛불시위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과연 촛불시위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간의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그 해답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리 역사에서 촛불시위(혹은 촛불집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2년이었다. 그해 6월 1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심미선, 신효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이 잃는 참변이 발생했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고의적 살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럼에도 미군 당국은 범인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분노의 물결이 일시에 전국을 강타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커뮤니티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었다. 그러던 중 ‘앙마’라는 네티즌이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행사를 가질 것을 제안하였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
위클리펀치(533) 저녁이 있는 삶
525,600 minutes. 525,600 moments so dear. 525,600 minutes. 525,600분의 시간들. 525,600개의 소중한 순간들. 525,600분의 시간들 How do you measure, measure a year? 당신은 어떻게 헤아릴 건가요, 1년의 시간을? In daylights, in sunsets, in midnight, in cups of coffee. 햇살로, 노을로, 자정으로, 커피 한잔으로. In inches, in miles, in laughter, in strife. In 525,600 minutes. 인치로, 마일로, 웃음으로, 갈등으로. 525,600분의 시간들. How do you measure a year in the life? 인생의 일 년을 당신은 어떻게 헤아릴 건가요? 「 뮤지컬 ‘렌트(rent)’ – Seasons of Love 중 」 앞서 인용한 가사는 뮤지컬 ‘렌트(rent)’에 나오는 노래인 Seasons of love의 일부분이다. 본 칼럼에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노래가사를 인용한 이유는 시간이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영화 ‘렌트’에서는 이 [...]
위클리펀치(532) <가치살기③> 지구라는 행성에서 낯선 이에게 인사하기 “Hello, stranger?”
<가치살기>는 ‘같이 사는 가치 있는 삶’이라는 의미로, 필자가 신정동 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에 살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다룬 일기 같은 칼럼입니다. 칼럼 <가치살기>는 새사연 홈페이지에 월 1회 게재될 예정입니다. (필자 주) 지난 번 살던 집을 떠나게 된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뀐 집주인이었다. 전 집주인의 경우, 같은 건물에 살면서 나름 세입자도 가려가면서 받아 크게 불편함을 못 느꼈으나, 새로운 집주인은 관리인에게 맡겼는지 공기부터 낯선 세입자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지난 집은 다른 원룸과 다르게 3중 보안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건물현관, 계단입구, 방 현관 3단계의 보안체계를 거쳐야지 방 안에 들어 올 수 있었으며, 특히 건물현관의 경우 오직 카드키만으로 출입이 가능했다. 이러한 특징은 택배나 배달음식을 받음에 있어서는 불편함이 존재했지만, 그만큼 안전성이 보장되어 여자가 살기에는 아주 적합하였다. 하지만 집 주인이 바뀌면서 안전한 나의 성은 무너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