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58) 19대 대선, 정치참여 불평등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By |2017/05/09|Categories: 새사연 연구, 새사연 칼럼|0 Comments

정치참여 기회는 만인에게 평등한가? 드라마 역적에서 천민 아모개의 자식인 홍길동과 임금 연산군은 둘 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조선의 기본 교리인 성리학 그 중에서도 삼강오상(三綱五常)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단지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길동은 하늘 아래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 높낮이가 있을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하는 반면, 연산군은 자기 아래 사람들은 다 종으로 인식한다. 연산군은 종들에게 있어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등 절대적 복종의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강상죄 및 사람의 신분 차이가 당연한 조선시대에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길동과 그 의견에 동조하며 익숙한 것에 저항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드라마지만 사실 작금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낯설지만은 않다. 기다리던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졌다. 2016년 11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부터 촛불 그리고 어제 치뤄진 대선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 일련의 [...]

위클리 펀치(557) 노동 밖의 노동을 상상하며

By |2017/05/03|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 |0 Comments

세상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두 가지 노동형태만 있는 줄 알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안정적이고, 임금도 많고, 적어도 50대까지는 이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갈수록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진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우월하고, 정상적인 노동이라는 인식.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 비율보다 훨씬 많은데도 사회는 늘 정규직이 모든 노동의 목표인 것처럼 다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은 ‘정규직’이 아닌 다른 부류의 노동을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범주로 묶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청소년, 청년, 장애인, 여성,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터에 있지만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늘 주변인 취급을 받아왔다. 주변인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기꺼이 감수해야하고, 본인의 의지나 체력과 상관없이 휘청거리는 노동판과 함께 출렁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출현하게 된 계기는 IMF 이후이다. 노동 유연화와 서비스업의 확대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기치 아래 이루어졌다. ‘철밥통’, ‘정년보장’이라는 노동환경은 [...]

위클리 펀치(556) 대선 정국, 촛불시민혁명의 연장선에 있는가?

By |2017/04/20|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0 Comments

대략 1년 전 쯤 여기저기서 정치 정세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는 보수층 내부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등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청중들은 매우 흥분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전만 해도 보수 절대 우위의 정치 지형이 유지되고 있는 조건에서 정권교체를 둘러싸고 상당히 회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이 7개월 이상 앞당겨 치러지기에 이르렀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양강 구도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야당 후보끼리 승부를 다투는 기상천회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극히 난망한 과제처럼 여겼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현상처럼 다가왔지만 1년 전에는 상상초자 쉽지 않았다. 옛 어른들은 혁명에 대한 열망을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으로 표현했다. 지금 바로 세상이 뒤집어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요지부동이었던 보수 절대 우위의 정치 [...]

위클리 펀치(555) 세월호의 기억

By |2017/04/12|Categories: 새사연 칼럼|0 Comments

2014년 4월 16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아침 진료를 하고 있었다. 대기실 쪽이 소란해서 나가보니 간호사, 환자 구분 없이 모두들 TV 화면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머나, 어째. 빨리 나와야지.” “어어, 배가 아까보다 더 기울었어. 사람들은 다 나온 거야?” 2014년 4월 16일, 그 때는 막 9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TV에서는 속보가 이어졌고, 세월호가 약간 기울기 시작한 때부터 조금씩 넘어가는 것까지 생중계되었다. 해경선을 비롯해서 헬기까지 세월호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 나는 ‘별 문제 없겠지’하고 진료실로 돌아와 일을 계속 했다. 아니나 다를까. 궁금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 TV를 보니 대통령이 특수부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구조를 하라고 지시했다는 속보가 나오고, 얼마 지나서 “전원 구조”라는 타이틀까지 떴다. ‘그럼 그렇지.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바로 앞바다에서, 그것도 천천히 좌초하는 배에서 인명 구조 하나 제대로 못할라고...’ 다시 편안한 [...]

위클리 펀치(554)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는 왜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하지 않다고 했을까? ③

By |2017/04/05|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0 Comments

앞선 글에서 필자는 현재 가계부채 가구의 상태가 1300조를 훌쩍 넘어선 것에 비해 금융 자산 대비 금융 부채가 45%정도여서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무디스의 진단을 소개하며, 그렇다할지라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빚을 갚아 주지 않기에 경제 위기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더 나아가 보자. 일반적으로 어느 한 대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할 때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해법이 있을 수 있다. 가령 가계부채의 경우 채무자를 인권 감수성으로 인식하고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 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부채 탕감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복지나 인권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견해이다. 약간 시각을 달리해서 신용 시스템의 관점에서 가계부채를 보자. 역사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죄였다. “너와 너의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했을 때 죄는 계율을 어기는 것뿐 아니라 빚을 의미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

위클리 펀치(553) 가계부채 총량 증가 관리 대책, 문제 원인은?

By |2017/03/29|Categories: 새사연 칼럼|0 Comments

세계경제를 뒤흔든 위기의 원인은 취약계층에서 시작되었다 런던정경대학 교수 코스타스 라퍄비챠스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를 이상하고 낯선 위기라고 했다. 라파비챠스에 따르면, 금융 역사에서 서민들의 빚 때문에 한 나라가 위기에 휩싸이고 그것이 글로벌 경제까지 뒤 흔든 사례는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 미국의 위기는 서브프라임 즉 가난하고 직업 없는 히스패닉들과 백인 노동자 계급이 상환능력 없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집을 사고 몇 년 후에 곧바로 변동이자 때문에 감당 할 수 없이 불어난 이자와 원리금으로 인해 채무불이행을 비켜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대출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급기야 미국 경제 전체를 위기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금융자산과 실물경제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는 저소득층의 채무불이행이다. 규모로 봐도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