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 견문록 / 이야기 세번째
호텔에서 아침 식사는 7시부터 시작된다. 말이 호텔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여인숙 수준이다. 화장실은 좁고, 세면대는 내 얼굴 크기보다 작아서 세수를 하려면 물이 죄 바닥에 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고양이 세수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 얼굴이 세면대보다 더 크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겠는가. 저렴한 비용으로 견학을 온 주제에 감지덕지 하고 있어야 했다.아침마다 창밖으로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출근하는 행렬은 아니고, 여행객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이 짝지어 지나가는 모습들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지역은 런던 시내가 가까워서 여행객들이 많이 묵고 가는 곳이라 주변에 호텔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도 아침이면 멀리서 온 영국인뿐만 아니라 독일 사람들, 인도 사람들,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체크아웃 하며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서양에 가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식사일 것이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지만 우유나 커피, 구운 식빵, 콩과 [...]
나는 지식인이다
나는 TV광(狂)이다. 한 때 나와 채널 경쟁을 했던 큰 아이가 “아빠가 아줌마야?” 할 정도로 드라마광이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두 개 쯤 꽂히는 드라마에는 ‘본방사수’를 할 정도인데 요즘은 네 식구가 대충 의견 일치를 보기 때문에 채널 싸움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성균관 스캔들>, <시크릿 가든>, <최고의 사랑>이 그랬고 요즘 유력한 후보는 <무사 백동수>다). 9시 뉴스 시간에 집에 있을 땐 예외 없이 EBS의 <세계 테마 기행>을 보며, 늦은 밤 각 방송사의 다큐도 벅찬 가슴으로, 가끔 눈물까지 흘리며 본다. 요즘 웬만큼 바쁜 일 없으면 집이건, 식당이건 보는 프로그램은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다. 나는 술 취하면 거의 매번 연구원들을 노래방으로 끌고 가지만 실력은 가끔 빵점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 하지만 ‘나가수’에서 누가 일등할지, 그리고 누가 꼴등해서 탈락할지를 맞출 정도의 눈치는 있다(어쩌면 우리 청중평가단은 다 나만큼 [...]
법 위에 군림하는 대기업, 누가 견제할 것인가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유수한 대기업들이 언론에 자주 비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대기업들의 엄청난 실적이나 그로 인한 주가상승 등이 주를 이뤘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가 4위의 이익을 달성했다거나, 삼성전자의 분기실적이 4조원을 넘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노조에 대한 탄압이나 불법파견 사례, 그리고 중소기업 시장 잠식 등 각종 불공정 거래행위 보도 등이 부쩍 늘었다. 7월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삼성에버랜드를 포함해 삼성 계열사들에서 속속 노조가 결성되자 삼성은 관련 노동자 해고로 대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대차 사내하청의 경우 도급(하청)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대법원 판결이 1년 전인 지난해 7월22일 나왔건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보도도 있다. 부동의 재계 1·2위 기업집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업집단 가운데 자산규모 24위인 신세계그룹 계열의 이마트가 중소상인들의 소매시장을 싹쓸이한 [...]
시장 만능·복지 함께 된다는 거짓말
거짓말 탐지기는 과연 정확할까?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진실을 말했더라도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면 가슴이 두근두근 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거짓말로 판정되면 그 억울함을 어찌 할까? 반대로 아예 후안무치하거나 또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자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통과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지금 한국 정치는 혁명 중이다. 민주당이 보편복지를 내세워 중도좌파의 드넓은 땅에 들어선 데 이어 한나라당 역시 중도우파, 합리적 보수 정당이라고 부를만 하게 되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산하 비전위원회가 내놓은 정책노선만 놓고 본다면 과연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복지수준, 고용률 60%, 대학등록금 부담 30% 축소, 공천 30% 여성 배정, 대북 지원 등이 포함됐으니 어찌 수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과 3년 전,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약속한 듯 똑같이 ‘뉴타운’ ‘특목고’ [...]
영국 NHS 견문록 / 이야기 두번째
오늘 아침에는 GP(일반의)들이 근무하는 진료소를 몇 군데 찾아가려고 한다. 진료소..... 우리는 잘 쓰지 않는 말이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진료소라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의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잠깐 영국의 의료기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진료소의 의사들이 일하는 모습과 주민들의 모습은 나중에 최종적으로 정리하면서 글을 이어갈 것이고, 여기서는 체계에 관한 것만 실으려고 한다. 영국의 동네의원 영국에서 사람들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으면 제일 먼저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야 한다. 주치의, 즉 일차의료 담당 의사들을 말하는데, 이들이 일하는 곳이 일반의 진료소(동네의원)이다. 나는 주치의 진료소를 찾아서 구경하면서 운 좋으면 의사와 면담이라도 하려고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동네를 기웃기웃 돌아다니며 있던 중, 지나가는 동네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Excuse me. Would you direct me the near medical clinic?”“.....”“Medical clinic! GP’s office!”“.....” 이럴 때 [...]
진보는 대안이 없다는 그대에게
진보는 대안이 없다. 흔히 하는 말이다. 기실 그 말이 떠도는 데는 나의 책임도 있다. 2005년 진보적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며 뜻을 모을 때 무람없이 내세운 명분이 바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은 진보세력의 대안이 완비되었다고 감히 선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다만 지금도 진보는 대안이 없다고 꾸짖는 윤똑똑이들에게는 명토박아두고 싶다. 대안이 없다는 말, 이제 그 말은 게으름의 고백이다. 대안이 없다며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진보’적 교수나 ‘진보’적 언론인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대안이 없다고 진보세력을 나무라는 사회과학자는 정말이지 겸손하게 자기 발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안을 만들어야 할 당사자가 대안을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꼴 아닌가. 언론인은 조금 다르다. 정책 대안을 직접 제시할 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책임도 그만큼 줄어들까?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축적되어 가는 진보적 정책 대안들이 국민 사이에 소통되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