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95) 시작하는 노조, 머무는 노조

By | 2018-07-02T22:17:08+00:00 2018.01.31.|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이 공식적으로 설립절차를 밟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미 지난 ‘위클리펀치 584호 –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학생에게 학습권을’에서 나는 대학원생들이 학생이라는 신분에 가려진 학교 내 노동자이며,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과중한 업무 대비 착취적 수준의 낮은 보상 등이 만연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학원 노조의 설립은 바로 개별에게 닥친 듯 보이지만 대학원의 구조와 구태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기에 반갑고 설레는 소식인 것이다.

대학원생들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배경은 웹툰인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 중 특히 제2화 ‘시간은 어디에’편과 제11화 ‘금고관리자’편을 보면 더욱 공감이 된다.

 

“비싼 학비를 내기 위해서는 조교근무도 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읽어야하는 자료도 산더미 같은데…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중략)… 아, 내 시간은 어디에… ” (제2화 시간은 어디에)

 

“여건으로만 말하자면 우리 랩실은 석사생 최대 180만원, 박사생 250만원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다. 그만큼 수주 받은 일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산더미다. 그러나 열정 가득한 우리들의 손바닥에 쥐어진 돈은 그 뜨거운 열정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수준(50만 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인건비도 받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나는, 나의 근무 시간과 초과되는 근무량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제11화 금고관리자 중)

 

웹툰으로 재연 된 사례와 같이 대학원생들은 등록금 문제를 비롯하여 조교활동과 교수와의 학업 및 프로젝트와 관련된 관계 속에서 인권침해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긴 시간 감내하였다. 그 이유들은 자신들이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로부터 학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혹은 진로 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등이 이유였다. 그 결과 ‘모두가 참으니까’ 내지는 ‘나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시켰고, 오랜 기간 대학원생들에게 체화되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 총학생회들이 앞서 예로 들은 대학원생들의 부당사례를 수집하고 해결하고자 움직이면서 조직되었다. 먼저 부당사례를 웹툰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공유하여 이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결이 절실하다는 것의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자신들이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조교 및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학업의 연장이 아닌 ‘노동’이라는 시각의 전환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의 대학원생노조 설립 축하 영상 중 ‘당사자의 문제를 당사자가 느끼고 해결하기 전에는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대학원생 노조의 설립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차분히 이만큼 걸어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노동자성을 찾아갈 동안 노동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버팀목이 충분히 튼튼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았다. 국내 노동조합들의 운동의 전반에 대해 본 칼럼에서 상세히 다루기는 어려우나, 단면적으로 조직률을 살펴보자면 10여 년 간 제자리걸음이다.

고용노동부에서 2017년 12월에 발표한 「2016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016년 말의 전체 노동조합원수는 1,966천명으로 10.3%의 조직률을 보였다. 이는 2015년에 비해 0.1%p 증가한 수치이지만, 1989년 19.8%의 노조 조직률을 고점으로 하락 한 것에서 2006년 이후 10년 간 증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2015년 OECD 국가의 평균 노조 조직률은 29.1%인 것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조직률은 1/3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10.3%라는 조직률은 30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의 경우 0.2%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 비율은 더욱 미미하다.

단순히 노조 조직률만 가지고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 여부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원노조의 결성과정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노조는 개별 노동자들이 처할 수 있는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노동자들이 비교적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집단적인 요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노조 조직률이 하락한 채로 지속되는 것은 노동자들, 특히 규모가 작거나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취약한 노동자들의 비빌 언덕이 더욱 작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 시장이 회복세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일자리의 질이나 환경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고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저임금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가중화되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참고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60% 이상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를 잘 고려해 봐야한다.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고, 해결책 또한 노동자들이 찾아내고 움직여야 실현 될 수 있다는 것을 대학원노조의 설립을 통해 환기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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