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겨운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식구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 똑같은 밥에 똑같은 나물 반찬으로 지겨운 식사를 반복해야 했다. 영양가마저도 형편없이 모두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다. 진절머리가 난 식구들은 주방장을 갈아 치웠다. 새 주방장은 식구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새 요리 준비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맛 좋고 영향 많은 요리가 밥상 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소득 주도성장론’이라는 새 요리는 함량 미달의 요리로 판명 났다. 구멍이 숭숭 뚫린 영양가 없는 재료로 만든 게 화근이었다. 새 주방장은 몇 차례 실험을 하다 상에 올리는 것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새 주방장은 함께 준비 했던 혁신 성장론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동안 소득 주도 성장론에 밀려나 있던 혁신 성장론 담당 요리사들에게 파팍 힘을 실어 주었다.

지난 11월 30일 혁신성장론 담당 요리사들은 요리 계획서를 발표했다. 일명 ‘큰 그림 1.0’으로도 불린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21개 관련 부처가 달라붙어 만든 야심찬 계획서였다. 그런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주 요리사 중 한 명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도 말이 되면 계승 발전시키는 게 맞다”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새로 발표한 계획이 표현은 좀 다르지만 과거 박근혜 정부 때 내놓은 창조경제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식구들이 지겨워한 그 밥에 그 나물을 다시 밥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김광두 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역시도 모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 성장론’이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차이가 있지만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론과 거의 동일한 개념이라고 인정했다.‘

보수 언론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과거 정부 때 계획과 비교해서 기사를 내보냈다. 그에 따르면 ‘큰 그림 1.0’은 지난해 12월 미래창조과학부(과기정통부의 전신)가 내놓은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과 올해 3월 민관 합동 중장기전략위원회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중장기 정책 과제’의 종합판이었다.

‘큰 그림 1.0’ 내용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규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요리사들도 새로운 계획 발표를 준비하면서 그 밥에 그 나물만 나오니 몹시 답답했나 보다. 무언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서로 다그친 것 같았다. 다행히도 산뜻한 아이디어가 하나 나왔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상응하는 자율주행 선박! 처음에는 개그인 줄 알았다. 송구스럽게도 공식 발표문에 버젓이 실려 있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재료가 되었던 것은 홍장표 교수(현 청와대 경제 수석) 등이 제시한 연구 결과였다. 논지는 단순명료했다.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을 증가시키면 소비 지출 확대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 명료하면서도 불평등 해소라는 대의에도 부합했다. 많은 사람들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꺼져 있는 성장 동력을 어떻게 살릴 지에 대한 방안도 없었다. 정부가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을 늘리고자 시도할 때 기업이 기술 실업과 해외 이전 확대로 맞서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방안도 없었다. 필수 항목을 비워둔 채 제출한 답안지였다. 소득 주도 성장론을 구현하기 위한 정부 시도마저 곳곳에서 꼬이고 말았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된 정부 지원은 내년까지 국한하는 것으로 못 박힌 상태이다. 그 다음 해부터는 답이 없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야당 반대로 예산확보에서 차질을 빚었다.

혁신 성장론의 핵심으로 간주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에서 그 밥에 그 나물만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은 엄밀하게 말해 3차 산업혁명 연장이다. 문제는 진보 세력이 2차 산업혁명 담론 구조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3차 산업혁명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할 기회를 거의 갖지 않았다는데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자기 논리를 구사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칫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이 방향을 잃고 배회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정부 관계자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정부 아니던가. 모두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