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85) 우리 같이 살 수 있을까?

By | 2018-07-02T14:36:57+00:00 2017.11.22.|Tags: , , |

얼마 전 청년연대은행 토닥에서 주거포럼을 열었다. 토닥은 청년들이 만든 자조금융 협동조합으로, 주로 경제와 공동체를 고민하던 곳이다. 나는 토닥 조합원으로 포럼에 참여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시민자산화 운동으로 공유지를 확보해가는 방식의 주거 사례와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직접 집을 지은 ‘함께주택’ 사례가 소개되었다.

최근 정부나 지자체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주택이 늘고 있다. 주변에 입주한 사람도 있고, 새사연에서도 사회주택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사회주택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개인이 소유하는 방식에서 공동이 소유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거기에서 사회주택은 시작한다. 물론 함께 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적 자원을 분담하는 것 이외에 신뢰를 쌓고, 지속적인 관계형성을 위해 서로 조율하고 합의해 나갈 것이 많다.

포럼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이미 공동주거를 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협동조합형 주택, 셰어하우스 등 이름은 다르지만 공동주거 방식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요즘은 셰어하우스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소개되고 익숙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안 주거 형태였다. 1인 가구들이 증가하고 도시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개인이 홀로 주거비용을 마련 어렵게 되자 새로운 거주 방식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주거정책으로 이어졌다. 청년층이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부상하면서, 대학생을 위한, 사회초년생을 위한,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이 늘었다. 주거 안정성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사회주택은 이로움이 많다. 동시에 한계도 많다. 똑같은 정부 지원 사회주택이라고 할지라도 청년 대상과 노인 대상으로 하는 주거 형태는 다르게 설계한다. 또한 청년이 지원할 수 있는 주택의 규모는 고시원보다 조금 큰 원룸이거나, 임시적으로 머물다 떠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은 결혼을 하면 이사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다시 주거 고민에 빠진다.

청소년기에는 기숙사, 청년기에는 기숙사, 고시원, 원룸 등 ‘집’이 아닌 ‘방’만을 전전하고, 그마저도 합숙 형태로 살아온 이들이다. 제대로 된 개인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또한 청년들이 유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들의 특징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떠돌도록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부동산, 복지정책 등을 연관 지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민관 협력 사회주택에 거주한다는 참여자는 한 집에 5명이 거주하고, 방을 2명이 나눠 사용했다. 1인당 월세는 32만 원이라고 했다. 개인이 월세 32만원을 내고 민간 주택에서 사는 것에 비해 사회주택은 같은 비용으로 주방, 거실, 욕실 등 공유공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공간은 급격히 줄어든다. 집은 공적인 공간과 단절되거나 안식을 취할 수 있어야하는 곳인데, 집마저 타인과 살기 위해 애써야하는 공간이 된다.

이 포럼은 “‘내집’ 말고 ‘우리집’, 우리도 사회주택 해볼까?”라는 제안에서 출발했다. 포럼이 끝나고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주택을 상상했다. 어떤 이는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어떤 이는 텃밭이 있는 집을, 1인 가구로 살 수 있는 집을 말한 이도 있었다. 서른이 넘으면서 결혼, 육아, 지역,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없더라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실현하기에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포럼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정책 지원의 대상으로 청년이 사회주택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자발적으로 청년들이 모여 사회주택을 만들고 실행하는 데 장벽을 느꼈다. 가장 큰 장벽은 자본금이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각자 살면서 감당해야 할 몫을 함께 살면서 나눠 갖으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정적인 직장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소득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청년에게 대출은 큰 부담이다. 아직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혼자 살면서 월세 30-40만 원을 낼 것인가, 함께 살면서 대출금 60만 원을 낼 것인가. 주거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함께 산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장기적으로 삶을 설계한다고 했을 때, 사회주택은 이득이 많다. 단순히 경제적 비용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가 만들어진다.

“우리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주거가 안정되면 당장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삶 자체가 덜 흔들린다. 이러한 안정성은 장기적인 전망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에 대한 사회적 상상을 다시 하는 일이다.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것을 마치 본연의 속성인 듯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상상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터무니없는 꿈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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