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공유공간 물질에서 독립연구자를 위한 무크지 <궁리>에서 시도했던 연구크라우드 펀딩 결과물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발표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했고,  1부에서는 각 연구 결과물 발표를 2부에서는 연구 토크 시간으로 이야기 손님을 초대해서 <궁리> 프로젝트 이야기와 각 연구 뒷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발표회 자리에는 연구 펀딩에 참여하신 분들 외에도 독립연구자 프로젝트와 연구방법이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요. 연구분야가 낯설었던 분들에게도 연구를 소개하고,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삼인삼색 발표회

1. 송창은, “한국어가 영어처럼?: 영어가 일상화된 현대 한국어에 대한 소수집단의 태도, 인식, 그리고 정체성 연구”
 

 

송창은 연구자는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의 관점에서 현대 한국어의 언어 변이 현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중국 동포와 북한이탈주민이 현대 한국어 중 영어화 변이 현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일상화된 영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연구했습니다.

 

“연구참여자와 카페에서 메뉴를 주문하려면 저한테 부탁을 하고 슬쩍 자리로 가는 거예요. 처음에 이상했는데, 연구가 끝날 때쯤엔 왜 그랬는지 알겠더군요” (송창은)

사람들이 새로운 집단이나 공동체, 일터에 들어갈 때 낯선 언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도 처음 카페에 가거나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어색한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송창은 연구자의 연구는 다양한 소수집단이 한국어를 학습하거나 한국에서 생활을 할 때, 한국사회가 의사소통이나 언어 교육, 언어 권리, 언어 정책 등을 어떻게 파악하고 해결해야 할지 실마리는 제공하는 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영어가 일상화된 현대 한국어에 대한 소수집단의 태도, 인식, 그리고 정체성 연구”  결과물 다운 받기(클릭) 

 

2. 박희정&갱, “코믹스 페미니즘: 웹툰시대 여성만화 연구”

박희정&갱 연구자는 여성들이 향유했던 만화를 ‘순정만화’라고 부르던 시대와 1990년대 후반 등장했던 여성만화 비평의 계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최근 페미니즘 웹툰이라는 말로 등장하는 여성주의 만화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절마다 여성만화를 접근하는 관점과 언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 생산되는 여성만화는 일하는 여성의 존재,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환경/사회, 성폭력 담론 등 유형화해볼 수 있었는데요. 주체적인 여성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탐구하고 사회적인 요구나 억압으로부터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디어에서 페미니즘 웹툰이란 말을 쓰긴 했는데 저희들은 이게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요. 페미니즘 자체를 규정하기도 힘들 뿐더러,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 만화라는 말이 있어왔거든요” (갱&박희정)

특히 ‘여성만화’의 계보와 언어를 성찰하면서 만화 비평가로서 역할을 질문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 여기봉, “당진에코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탈석탄 운동의 전개과정과 의미”

여기봉 연구자는 당진에 내려가서 탈석탄운동 과정을 기록하고, 그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나로 인해 피해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발표는, 탈석탄운동뿐만 아니라 대형 발전소 건설 문제가 결코 건설지역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당진 발전소 부근에서 암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요. 호흡기와 피부 질환은 기본이구요. 수차례 갈등을 겪으면서 이 지역의 탈석탄운동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여기봉)

이번 발표회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환경정의’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여기봉 연구자는 환경정의를 실질적 정의, 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의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탈석탄운동이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어떻게 환경정의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태양광, 풍력 등 천연에너지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성찰과 함께 일어난다는 발표로 마무리했습니다.

여기봉 연구자의 연구 결과물은 추후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궁리v.1 끝, 그리고…?

 

처음에 무크지를 기획하고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까. 무모한 시도는 아닐까.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발표회가 끝나고, 이 프로젝트가 기획단과 참여 연구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시작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록 적은 금액이었지만, 펀딩에서 모인 돈으로 송창은 연구자는 연구 과정에서 힘들고 지칠 때 동력을 얻기도 하였고, 여기봉 연구자는 누군가 이 연구에 관심을 보이고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연구를 잘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희정&갱 연구자에게 이 프로젝트는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고 앞으로 다른 연구도 진행 할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조건없이 하고싶은 일을 하도록 기회와 자리를 마련해주는 경험, 그리고 그 호혜를 통해 연구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발표회가 끝나고, 페이스북 궁리 페이지에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첫 시도라서 부족한 점도 많지만, 관심과 지지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하는 독립연구자네트워크의 활동도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