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 황금기였던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은 분야는 노동운동이었다. 당시 관심이 집중되었던 곳은 대규모 사업장이었다. 대규모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었던 탓으로 지축을 흔들 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란 바로 이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 철도와 기아자동차 노동자들과 비교적 손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사업장 모두 역사적 뿌리가 깊은 대표적인 어용 노조가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 이들 노조를 민주화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활동가들이 상당한 희생을 겪으면서도 연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 교실’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역사교실은 한국현대사를 5, 6차례에 걸쳐 풀어내는 강좌였다. 철도 사업장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었기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의 호응은 상당히 좋았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노동자들 대부분 열성적인 활동가로 변신했다. 이들은 이후 철도와 기아자동차 노조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다. 두 곳 민주노조 초대 위원장 모두 역사교실 출신이었다.

철도와 기아자동차 노조는 발전을 거듭했고 민주노총의 양 대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활동가들은 변함없이 나를 선생님(?)으로 대우했다. 나름대로 노동계에서 큰 손 행세를 할 수도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는 심각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야 했다. 끝내는 나를 포함해 노동운동가 대부분이 치명적 오류를 범했음을 깨달아야 했다. 물론 그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첫째 전체 고용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 조직화에 완전 실패했다. 문제의 출발은 중소기업 실정에 맞지 않는 좌편향 노동운동이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사용주를 ‘적’으로 규정하는 노동운동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중소 사업장 비타협적 극한투쟁이 미친 악영향은 매우 심각했다. 이들 분규 사업장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소속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배회해야 했다. 그로부터 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노총이 개입하면 망한다는 여론이 널리 퍼졌다.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었지만 노동운동가들로서는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결과는 민주노총 중심의 산별노조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거의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중소기업 노동자 노조 조직률은 2%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둘째 민주노총이 노동계 대표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여러 한계에서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획득하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었다면 사정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왔다. 1998년 초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가능하게 한 노동시장 유연화 관련법 도입에 찬성했다. 이는 명백한 백기투항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 내부 계층 분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 주력인 대기업 정규직은 소득 수준이 우리 사회 중상류층에 이르렀다. 반면 1998년 노사정위원회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청년실업 형태로 온갖 차별과 배제를 겪어야 했다.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은 영화를 누리고 그와 무관했던 사람들이 모든 덤터기를 뒤집어쓰는 극단적 부정의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겠는가?

셋째 노동자 정치세력화 추진이 참혹하게 실패했다.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출구 전략이었다.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면 그간의 약점과 한계를 상당 부분 만회하거나 보충할 수 있었다. 출발은 고무적이었다. 민주노총을 주된 기반으로 하는 민주노동당이 당 지지율 20%를 상회하면서 수권 정당으로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하지만 고질적인 정파 갈등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끝내는 분열을 거듭하면서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그나마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현장 활동가들 찢어놓았다.

근대 민주주의 정착과 함께 인간이기 때문에 본원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인권’이 꾸준히 신장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이기 때문에 본원적으로 누릴 수 있는 ‘노동권’이 중요한 의제로 떠올라 왔다. 노동권이 온전히 실현되자면 노동자들 스스로 ‘계급 무장’을 해야 한다. 노동자의 계급 무장은 사상 문제를 별개로 한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노동자의 다수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폭넓게 연대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적 개입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럴 때 그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노동권을 온전히 행사하고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노동자들은 계급 무장에 실패했다. 심히 안타깝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엄연한 진실이다. 이는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실현하는데 근본적인 한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매우 원칙적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노동자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30년 전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스스로를 조직하든가 아니면 시대를 초극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둘 모두 난감하기 그지없는 길이지만 선택을 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