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의 시작 : 계약과 재산의 ‘체계적인’ 관리

아주 오래 전 에리두(지금의 이라크 디 카르 지역) 동남쪽 마을에 살던 에아는 수십 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 심한 홍수로 기르던 소를 모두 잃은 이웃마을 친구 아다드가 암소 세 마리와 수소 한 마리를 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암소가 새끼를 낳아 총 열 마리의 소가 생기면 그 중 건강한 암소 네 마리를 받는 조건으로 에아는 아다드에게 소를 내어 주었다. 지병이 있던 에아는 얼마 후 숨을 거두면서 아들 엔키에게 때가 되면 아다드에게 빌려준 소를 받아오라고 일러둔다.

몇 년이 지난 후 엔키는 약속된 소를 받으러 아다드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얼마 전 아다드는 숨을 거두고 아들인 벨이 소를 키우고 있었다. 엔키는 벨에게 에아에게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소를 돌려달라 하였으나 벨은 아다드에게 전해 들은 바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였다. 황당한 마음에 엔키는 촌장인 아누에게 중재를 청하였다. 사정을 들은 아누는 엔키에게 “약조를 증명할 방법이나 증표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엔키가 “아버지 에아의 유언 말고는 증표가 없다.”하니, 아누는 “엔키의 말만으로 약조를 증명할 수 없으니, 벨에게 소를 내어주라 할 수가 없다.”라고 결정하였다. 아다드가 소를 끌고 가는 걸 직접 보지도 못한 엔키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발걸음을 돌렸지만,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는데…. 서로 약조를 할 때는 확실히 기록하고 인장을 꾹꾹 눌러 찍었어야지….’라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유적지, 즉 수메르를 비롯한 옛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유적지에서는 쐐기문자가 빽빽이 적힌 점토판이 많이 발굴된다. 점토판의 내용을 해석해보면 반인반수의 영웅 길가메시의 서사시처럼 신화나 역사와 같은 기록뿐만 아니라 가축의 수효 등 재산을 기록한 내용도 많으며, 상호간의 인장을 찍은 계약의 내용도 종종 발견된다. 위의 소를 둘러싼 이야기는 숫자로 빽빽한 점토판 기록이 왜 필요했을지 상상하며 만든 내용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회계장부일 이 점토판들처럼 초기의 회계는 자신의 재산목록이나 계약을 잊지 않기 위한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또한 회계의 시작은 고대 로마를 살펴보면 교육을 받은 노예가 주인을 대신하여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산관리를 노예에게 위임한 후, 자신의 재산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 결과 기장 방법이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발달하였으며, 재산정보의 전달 수단으로서 회계의 기능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중세부터는 재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집사라는 직군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그들에 의한 대리회계가 발달한다.

회계의 발달 : 중개무역의 발달과 복식부기 원리의 등장

중세유럽의 경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도시국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중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과거에는 거대한 제국에서는 다뤘을 법한 규모의 거래가 상인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상업의 관계자가 소수의 특권계층에서 다양한 상인계층으로 전환됨에 따라 채무와 거래 관계가 고도로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상업과 관련된 분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상인이 자신의 채무를 깜빡한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과 같은 잔혹한 채권자에게 살을 깎일 위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세 상인들의 회계장부는 거래 상대자를 별도의 계정으로 분류하여 채권⋅채무 및 거래 사항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책임을 분명히 하는 회계기법은 후일의 분쟁을 최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시대 신용경제의 초석이 되었다.

중세를 거쳐 체계화되기 시작한 “자산은 부채와 자본의 합과 같다.”는 복식부기의 원리는 괴테로부터 ‘인간의 지혜로 창조된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는 찬사를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이후 시민혁명을 거쳐 변화된 사회 위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서구사회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한 자신감에 도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번영의 상당 부분이 빈곤층과 식민지라는 약자로부터 수탈한 것임을 제대로 인지했다면 조금 다른 평가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회계발달의 그림자 : 정경유착과 공인회계사의 등장

“나는 천체의 움직임까지도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가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뉴턴이 주식투자에 실패하여 약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20억 원)를 날리고 난 뒤의 푸념이다. 사실 뉴턴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투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공인을 받아 설립된 공기업이 정부와 의회의 요인들과 결탁하여 사기행각을 벌였는데 속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전 재산을 잃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영국 전체에 넘쳐났다.

사건의 발단은 영국 정부가 떠안은 천문학적인 부채로부터였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 경영을 위해 동인도회사 등 공기업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설립하고 이들의 식민지 진출을 위해 수많은 전쟁을 일삼았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부채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식민지 경영을 통해 얻어진 이익의 대부분이 정부에 돈을 빌려준 자본가 집단에게 돌아갔으나, 정경유착으로 인해 정부재정으로 환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대한 정부의 부채를 털어내기 위해 1711년 남미지역 무역 독점권을 지니는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가 설립되었다. 남해회사의 독점권은 국채 900만 파운드(현재가치로 약 9천억 원)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부여되었다. 이 회사의 설립이 기획사기라는 점은 이미 ‘남미지역 무역 독점권’에서 드러난다. 당시 남미는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영국은 오랜 기간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어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다. 당연히 스페인이 무역을 허가할 이유가 없었고, 영국정부와 의회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즉, 남해회사의 경영실적이 있을 리 없었다.

1720년에 이르자 남해회사의 경영손실은 손을 쓰기 어려울 지경에 된다. 관계자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한탕 크게 사기를 칠 계획을 세운다. 남해회사는 정부부채 3,200만 파운드(현재가치로 약 3조2천억 원)를 저리로 인수하는 조건으로 주식을 제한 없이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다. 그리고 남미 전 항구에 대한 기착권을 땄다거나 은광산으로 유명한 ‘포토시’의 채굴권을 얻었다는 등의 헛소문을 의도적으로 퍼뜨려 주가를 조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보증한 유망한 공기업’에 투자한 결과, 1720년 1월에 주당 128파운드에 불과했던 주가가 6월에는 주당 1,050파운드로 치솟았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한다고 해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는 기업이 이익을 낼 수는 없다. 6월 이후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하였고 12월에는 원래 수준인 주당 120파운드가 되었다. 분노한 시민들을 달래고자 몇몇 핵심관계자를 강하게 처벌하였으나 영국 정부와 의회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되었는지는 사실상 은폐되었다. 그나마 이 사건을 계기로 제3자에 의한 회계감사가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인회계사라는 개념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회계의 오늘 : 여전히 불투명한 회계장부

현대 회계기법은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 결과 회계는 투자를 결정하기 위한 시점에 기업이 지니고 있는 자본과 부채,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산이나 손익과 같은 경제적인 가치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를 위해 기업경영은 철저하게 금전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는 것을 위주로 치환된다. 주류학자들은 이런 회계기법이 완벽한 객관과 자기완결성을 구현하였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전적 환산이 어려운 경제활동의 윤리성, 사회적 책임, 노동가치를 자연스럽게 객관적이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가치인 것으로 분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20세기 후반을 휩쓸었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세력이 2007년에 집권한 이후 9년 동안, 우리나라의 정부정책은 경제성장을 중시하고 공공성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하였다. 인과적으로 공공⋅행정 분야도 성과 위주의 평가체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국가부채를 짊어짐과 동시에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경제적 효율성은 허구가 아닌지 질문하도록 이끈다.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사회에서 주류세력이 조직적으로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기업과 국가를 막론하고, 첨단 회계기법만으로 정의롭고 투명하며 효과적인 경영이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회계기법을 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회계이론의 발전과정에서 계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거된 여러 가치들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환경영향평가로 대표되는 각종 영향평가제도, 최근 이슈가 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경제활동의 사회적 기여를 측정하기 위한 SROI(Social Return of Investment), 각 부문활동의 사회⋅경제적 영향관계를 통합하여 살펴보기 위한 사회계정(Social Accounting) 등이 이러한 노력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위기의 경제를 구원할 노력들을 ‘대못’, ‘전봇대’, ‘가시’ 따위로 취급하여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