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토건국(封土建國)

주나라는 봉건제도로 유명하다. 천하의 주인인 천자가 충성을 대가로 제후에게 땅을 나누어주고(分封) 그 땅(封土)에 각자의 나라를 세워(建國) 스스로 다스리도록 하였다. 충성의 의무와 봉토는 세습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토지는 천자의 소유였을까? 불충한 제후의 봉토를 회수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고, 각 제후들끼리 전쟁을 치루면서 땅따먹기를 하였으니 그러하다고 보기 어렵다. 즉 봉건제도는 관념일 뿐 실상은 아니다.

<맹자>에 따르면 주나라의 토지제도는 드라마 <정도전>으로 유명해진 정전제(井田制)라 되어있다. 정전이라 칭하는 이유는 토지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나누어 배분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1정(井), 즉 900무(畝. 1무는 약 200평)를 9등분하여 100무씩 8가구에 배분하여 각자 스스로 경작하게 하여 이를 사전(私田)이라 하고, 중앙의 100무는 8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모두 세금으로 바치도록 하여 이를 공전(公田)이라 한다.

하지만 맹자의 주장과 달리 정전제가 실제로 적용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정전제 역시 관념일 뿐 실상은 아니다. 오히려 빚을 갚지 못하여 농토를 잃은 유민, 대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소작농에 대한 기록이 넘쳐난다. 어떤 농민에게 특정 토지의 권리가 있다는 사회통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자기 땅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노나라 선공(宣公)때 농사짓는 농지의 크기에 따라 호별로 세금을 달리 부과하는 초세무(初稅畝)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기록처럼 각 농민들에게 농토를 경작할 권리가 있으며 그 양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 그러한 권리가 대지주 따위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것은 현재의 ‘소유권’과 유사한 권리가 농민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의 사람 중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시경>)”는 왕토사상을 빌어 개인에게 토지의 소유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이라는 것은 은 실상을 합리화하기 위한 사회이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예기(禮記)》, <단궁편(檀弓記)>에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인데, 호환(虎患)으로 가족을 잃은 여인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위험한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공자가 한 말씀이다. 이처럼 고서에는 세금과 얽힌 많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제후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 들이는 정당성은 어떻게 생겨날까? 이에 대한 논리가 바로 왕토사상과 봉건이었을 것이다. 본디 만물은 하늘의 것이므로 그 대리자인 천자에게 권한이 있고, 그 중 땅에 대한 권리를 제후에게 내리니 땅을 일구거나 그 위에서 살아가는 대가로 세금을 제후에게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는 언뜻 왕의 토지소유권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었으니 조세권과 관계가 깊다고 봐야 한다.

 

선점(先占)

동양에서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지 왕토사상으로 얼버무릴 뿐 명백히 존재하는 토지에 대한 사적권리의 근원을 고민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구의 경우 권력체계 및 사회구조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싹트면서 소유권의 근원에 대한 사유가 정교해진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소유의 근원을 칸트는 ‘집단의지의 동의’라고 간주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특정 토지의 소유자로 특정인을 인정해줄 때에만 사적소유가 가능하다. 그러한 동의가 가능하게 되는 조건은 각자의 소유가 서로 정당하게 양립될 수 있을 때이다.

반면에 로크는 좀 더 집요하게 소유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나의 것은 무엇일까라는 사유의 끝에는 나의 몸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몸을 써서 발현되는 노동이라는 행위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되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들이 나의 소유이다. 농지는 그 것을 부지런히 일구어 자연 상태에서 농경지로 바꾼 나의 소유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칸트의 입장에서 소유권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권리이지만 로크의 관점에서 소유권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절대로 침해될 수 없는 천부인권이 된다. 이렇게 보면 두 관점이 소유권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서로 소유의 다른 차원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토지를 예로 들면 칸트의 경우는 결국 토지의 사용과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에 대해 따지고 있고, 로크의 경우는 결국 합당한 소유의 성립과 그것의 보호를 다루고 있다. 칸트의 견해는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이론적 토대이며, 로크의 견해는 애덤 스미스에 의해 자본주의로, 마르크스에 의해 공산주의로 발전한다.

그런데 토지는 노동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물론 노력을 들여 가치를 높일 수는 있다. 로크의 견해에 따르자면 토지의 사적소유가 아니라 토지가치의 사적소유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토지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으므로 토지소유자들의 기득권이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선점’이다. 무한한 자원의 경우 부지런히 선점하는 것도 노동의 결과라는 논리이다.

선점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원시상태의 개인들이 먼저 차지한 토지를 고유의 권리에 따라 이용⋅처분한 결과가 현 상태의 소유권 분포이므로 혁명, 제도개선 따위의 사회적 변혁으로부터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 프랑스 혁명기에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킨 논리였고, 현대 민법체계에도 점유라는 비슷한 개념이 삽입되어 있다.

 

분해(分解)

로크의 소유권 사상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공산주의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 로크의 사상으로는 노동 또한 소유물이므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임노동에 철학적 정당성이 부여된다. 문제는 임노동을 통해 얻어진 재화는 그 노동을 사들인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생산의 토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므로 자본주의 체제가 저렴한 노동력을 거의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역사가 증언한다.

마르크스는 대다수 노동자를 참혹하게 만들고 자본의 끊임없는 경쟁에 따라 결국 거대자본만 살아남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막강한 생산력을 보존하면서 사회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은 모든 노동자가 생산의 토대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결과도 자본주의 못지않게 참혹했다.

인류사회의 모순은 단순하게 ‘사적 소유가 옳은가, 공적 소유가 옳은가’라는 지엽적이고 자극적이고 부수적인 논의로 규명될 수는 없다. 이런 이분법적이고 환원주의적인 논쟁은 신자유주의와 같은 근본주의에서나 환영받을 만하다.

스웨덴 사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칼레비는 “소유권은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로 이전될 수 있다. 상호간 권리의 이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권리들을 무엇이라고 일컫는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의 권리를 이전하는가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칼레비가 말한 소유권의 내용은 처분권, 점유권, 수익권 등을 말한다.

칼레비는 인류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자본에게 맡길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내용의 권리를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이전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권리의 점진적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민주주의, 연대, 호혜이다.

 

상상(想像)

요즘 마을현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큰 이슈이다. 열심히 일군 공동체의 자산이 소유권 행사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서로 연대하여 건물의 매매권을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건물주의 매매권과 세입자의 점용권을 분명하게 나누어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게 보호하여 지역사회의 이익을 보존하는 방법 등 다양한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상상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쓰이는 위와 같은 방법을 두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소유권 침해이며 경제의 활력을 망가뜨리는 반자본주의적 주장이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인류역사를 통틀어 처분권, 점유권, 수익권 등이 일괄적으로 적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서로 상이한 권리들을 하나로 묶어 등기부등본의 명의자에게 쥐어주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드문 사례이다.

언제 빼앗길지도 모를 집을 공을 들여 가꿀 사람은 없다. 소중한 일터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는 환경에서 골목상권의 활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동일한 자본을 지분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였듯이, 소유의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권리로 분해하여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저성장시대에 경제의 활력을 도모하고 사회를 한 단계 더 진보시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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