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역에 개발 붐이 일어나 평당 1천만 원하던 땅값이 2배로 뛰었다고 해보자. 이 지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땅주인이 졸지에 자산가치가 갑절로 오르는 불로소득을 누리게 되었다면, 이것이 정당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땅 주인은 도로를 만들고 지역 환경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개발이익을 공짜로 취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따라서 국가는 이 땅주인에게 세금을 물려 개발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개발부담금’ 부과제도가 그것이다. 개발사업 시행 등 사회경제적인 요인으로 땅값이 정상가격보다 올랐는데, 당신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니 이익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겠다는 것이다. 법 제정 취지 그대로, 땅 투기를 방지하고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 법률이 기대고 있는 가치철학이 바로 토지 공(公)개념이다. 서울시 도시계획 용어사전에 따르면, 토지는 국민 전체의 복리증진을 위한 공동기반으로서 공적 재화임을 고려하여 그 소유와 처분에 대한 적절한 유도와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토지 공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개인이 소유한 땅이라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 제제를 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개발 사업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 법률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가나 허가 또는 면허를 받아 진행되는 택지개발사업, 산업단지 개발사업, 관광단지 조성사업, 도시개발사업, 지역개발사업, 도시환경 조성사업, 교통 및 물류시설 조성사업, 체육시설 부지조성사업 등이 그에 해당되는 사업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조항이 하나 있다. 지역개발사업(제5조 4항)이 그것이다. 지역개발 사업이란 무엇인가? 지역이 보유한 자원과 잠재력을 발굴, 개발(development)하여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도로망을 넓히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을 포함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 역시 중요한 지역개발사업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나 지역공동체 복원도 지역개발 사업에 포함되는 일임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이 사업들이야말로 전통적인 토건사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업영역일지 모른다. 지역개발이란 그 지역이 갖는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이며 이는 물리적 환경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따라주어야 하는 휴먼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여러 곳에서 마을 만들기나 공동체 복원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지가 상승으로 인한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그동안 일했던 터전에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낙후된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았더니 땅 주인들이 집세를 올리는 바람에 지역재생의 주역들이 지역 밖으로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자치구에는 낙후지역 재생 사업을 위해 ‘투신’을 결심한 아름다운 청년들이 이 문제 때문에 사업을 접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마을 활동가로 열심히 활동해 이 지역을 예전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시킨 결과가 지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싼 월세 방에 살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겠다는 우려를 한 것이다.

이 주제는 결코 가볍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잘못하면 공동체의 중심이며 주민들의 소통공간이기도 한 마을카페, 식당, 공방, 창작소 등 지역재생의 핵심 아지트들이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커피 유통체인, 기업 형 슈퍼들이 대신 들어선다고 생각해보라.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 도시공동체는 이내 삭막한 사막과 다름없는 장소로 변하고 말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확실한 해법이 한 가지 있다. 지역재생을 통해 지가상승 요인이 뚜렷하게 발생한 지구 또는 지역에 앞서 말한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된다. 토지의 공개념을 도입해, 본인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땅 주인과 건물주들에게 세금을 매겨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와 공동체 복원 사업은 건축이나 토목사업 같은 유형적 개발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무형적’ 개발행위이며 따라서 개발이익 환수법이 정한 지역개발사업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징수된 개발 부담금의 50%는 해당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도록 되어 있으니 지방정부는 이 돈을 공동체 재건에 꼭 필요한 세입자들을 지원하는데 쓰면 된다.

이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땅 주인과 건물주들이 자기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임대차 계약을 사적 영역으로 바라보는 우리 현실에서 볼 때 매우 파격적인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이 방법을 쓰고 있는 도시가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뉴욕시다. 뉴욕시는 임대료 통제(Rent-control) 프로그램을 통해 임대료의 최대 인상률을 정하고 이 기준을 지키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통제를 받는 임대주택의 경우, 집주인은 임대료를 연 7.5% 이상 올릴 수 없으며 주택 유형별로 임대료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서 그 이상 임대료를 받을 수 없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다보니 주택 문제를 시장질서에 그냥 맡길 경우,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주 정부와 시가 개입해 임대료 안정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대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임차인을 내쫒을 수 없으며 임차인을 강제 퇴거시키려면 반드시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임대인이 가진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임대료 상승에 따른 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뉴욕시 당국은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재산의 사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익을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행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윤추구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반할 경우 일정한 규제가 수반되어야 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도 땅은 사유재이기 이전에 공공자산이라는 철학에 기초해 토지 사용을 사회적 통제 아래 두고 있는 것을 보라.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원래 공유지로 남아있어야 할 땅의 상당 부분이 사유화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을 비롯해 유럽의 주요 도시들의 경우, 토지의 상당 부분을 시 정부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토지 및 주택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우리처럼 임대료 인상을 버티지 못해 세입자가 쫓겨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시유지∙공유지가 넉넉할 경우, 공동체 토지신탁(CLT) 같은 방법을 통해 시 정부가 소유한 토지를 지역 공동체에 제공, 사회 취약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남는 땅을 임대해 벌어들인 소득을 공동체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선순환 과정을 통해 보조금 지원과 같은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세워진 신탁법인 수는 모두 250개가 넘는다.

그간 주류 시장경제학에서는 소유권이 확립되지 않아서 생기는 이해당사자 간의 조정 실패를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공유지에서는 개인에게는 최선인 행위가 전체적으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공유지를 사유화하여 그 사적 소유자가 땅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 모두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땅 소유자의 사적 이윤추구 행위가 공공의 이익과 배치될 때는 어찌할 것인가? 땅 주인에게 공공 이익을 위해 지대 추구행위를 자제하라고 말하면 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는 자본가보다 공익적 가치보다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미성숙한 오너(Owner)들이 훨씬 많다.

공유와 협력모델은 무척 아름다운 대안이지만, 이 모델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개인의 사적 이익추구와 공공적 가치의 보전이라는 두 지점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설계가 필수적으로 따라주어야 한다. 이 작업은 무척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서 본질적으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 주인은 주변 시세가 올랐으니 예전보다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세입자는 시세가 오른 것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좋은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단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정자(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게임은 늘 갑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서울을 포함, 전국 각지에서 파괴된 도시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는 지금 큰 도전과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려면 공공의 개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협력과 공유의 가치는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현실에서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금전적 소득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각과 태도를 천민자본주의라 칭한 바 있다. 시장 자본주의란 그 안에 내재된 계급, 계층 간 갈등구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할 경우 지속가능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적절한 통제와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이야기다.

오직 돈만을 숭배하는 천민자본주의로 남을 것인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성숙한 민주적 경제 질서를 만들어갈 것인가. 경쟁과 사유를 경제 시스템의 단일 원리를 계속 유지해갈 것인가, 협력과 공유의 가치로 이행할 것인가. 성장 지상주의 모토를 계속 주창할 것인가,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모색할 것인가. 토지 공개념을 박제화된 구호로만 남겨둘 것인가, 현실에서 구현해낼 것인가.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체계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모색하는 중요한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어쩌면 몇 가지 목표 중 특정한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트릴레마(Trillemma)의 상황이 전개될 지도 모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만약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늘, 언제나 사익보다는 공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이 가치에 대한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어떠한 개혁조치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기 힘들 것이다.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본 글은 오마이뉴스에 공동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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