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의 가슴앓이] 네팔 대지진 현장 소식 ① “돌틈에서 나왔다는 건 죽었거나 겨우 살아 남은 것”

[고병수의 가슴앓이] 네팔 대지진 현장 소식 ① “돌틈에서 나왔다는 건 죽었거나 겨우 살아 남은 것”

By | 2018-06-29T17:03:08+00:00 2015.05.11.|

4월 25일 네팔 대지진이 발생했다. ‘열린의사회’에서 구성한 신속 긴급구호의료지원단 3명이 선발대로 지진 발생 8일째 네팔로 파견됐다. 스리랑카 내전지역을 수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 필리핀 태풍 등 재난 지역 긴급의료지원 및 해외 의료지원 10여 차례 참여한 고병수(가정의학과 의사 )원장과  이이티 지진 및 동티모르 내전지역 등 해외 의료지원 수 차례 다녀온 최정철(이비인후과 의사 )원장, 두 의사와 스텝 한 명을 포함 3명이 네팔로 달려갔다. 탑동365일의원 고병수 원장이 현지 소식을 보냈다. 그들은 현지 정보를 통해 산악지대에 다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짚차를 구했고, 1500~2000m 사이의 히말라야 끝자락 산간지대를 오르내리며 이동진료를 하기로 했다. 멀쩡하게 남은 건물들이 거의 없어서 풀밭에 침낭을 깔고 노숙하며 이동중이다. 고병수 원장의 네팔 현지의 이야기다.  (편집자 주)

네팔에 도착한지 3일째.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곳은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산들이다. 짚차에 약품과 의료기구들을 싣고 험준한 산들을 오르내리고 있다.

분주한 도시, 평온한 모습들

처음 공항에 내려 짐을 싣고 시내를 가로질러 갈 때만 해도 ‘지진 일어난 곳 맞아?’, ‘건물들도 대부분 멀쩡하네?’하고 속으로는 너무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여서 놀랐다. 공항에는 철수하는 긴급구조대들이 장비들을 본국으로 이송하고 있었으며, 많은 대원들도 돌아가는 줄에 서 있었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의아함은 더 했다. 하지만 수도 카투만두에서 2시간쯤 달려 산악지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거의 모든 집들이 폭격 맞은 것처럼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한국에서 보도에 많이 나온 것들은 카투만두나 관광도시 포카라, 고대유적들이 있는 유명한 박타푸르였는데, 이 곳들은 큰 건물들이나 널리 알려진 사원들이라서 보도를 많이 탔지만 사실 대부분의 주거지들은 건재해서 우리가 왔을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지진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가게들도 문을 열고 시내가 평온했던 것이다.

 

▲ 완전히 부서진 집들 _ 산간지역은 집구조가 주로 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피해가 컸다.
피해지역 산간 마을들은 90%가량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인명 피해도 컸다.

이동 진료를 하다

3일째 우리가 차로 이동 진료를 하는 곳은 피해 지역 22개 군 중 데바쩌우르와 신두팔촉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들은 첫 지진 후 다음 날 이차 강진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은 곳들이었다. 네팔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악지대여서 웬만해서는 차가 오르내릴 수 없다.

이런 곳들의 진료를 위해서는 한 곳에 머무르지 말고 다니면서 해야 한다는 문광진 선교사님(우리의 현지 안내자)의 제안에 따라 어렵사리 짚차도 구하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세계 NGO나 정부단체 등이 네팔로 몰려서 차량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값도 이전의 몇 배 수준이었다.

신두팔촉 지역으로 가다가 한국적십자사 대원들도 보였고, 현지인들 얘기를 들으니 주변 넓은 공터에 일본 의료진이 45명 가량 대형 천막을 치고 장비들을 갖춘채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없어서 조끼 입은 일본 대원들만 바글바글하고, 정작 환자들은 가뭄에 콩나듯 보였다고 전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일이 없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나중에 마을을 돌다보니 알게 됐다.

우리는 카투만두를 벗어나서 한참 산을 빙빙 돌며 마을들을 돌며 주민들에게 아픈 사람 있냐고 묻고 다녔다. 있다고 하면 짐을 풀어 진료를 시작하고 웬만큼 일을 마쳤다 싶으면 다시 약품 등 짐을 싸서 이동을 했다. 마을이 작아도 몇 명을 진료하다보면 금새 산 너머 동네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한 군데 머물면 보통 2~30명을 보게 된다.

▲ 봉합수술 장면 _ 너무 많아 소독할 시간이 모자랄 지경.

 

대부분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어서 그들을 대하는 내내 착찹했다. 5살 난 여자 아이는 왼쪽 팔을 못 써서 찾아왔는데 흙더미에 완전히 묻혔다가 구해져서 나왔는데 팔이 마비됐는지 힘을 못썼다. 타박상 같은 가벼운 환자들도 많았지만 돌에 찧이거나 살이 찢긴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 자리에서 봉합수술을 한 게 여러 차례였다.

멀지만 군청소재지에 병원이 있고, 몇 군데는 각국에서 온 의료캠프도 있는데 왜 안 갔냐고 물었더니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었다. 병원이 있는 읍내를 가자면 산을 걸어 내려간 후 버스를 타야 하는데,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이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산 밑에 차려진 긴급의료구호 캠프에도 그래서 못 가는 것이었다.

이미 중환자들은 어떻게든 이송을 했고,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겨우 살아난 이들…. (겨우 살아났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마을들은 돌집들이 8~90%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런 돌들 틈에서 나왔다는 것은 죽어서이거나 겨우 살아남게 되는 것이라 이 표현을 안 쓸 수가 없다.) 이들의 다리가 돌이나 나무에 찢기거나 웬만한 골절은 다행이면서도 죽은 가족들에게는 치료를 받기에 미안한 것이기도 했다.

 

▲ 완전히 부서진 집들 _ 산간지역은 집구조가 주로 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피해가 컸다.
피해지역 산간 마을들은 90%가량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인명 피해도 컸다.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너진 돌 틈에서 식기나 가재도구 하나라도 건지려거나 돌들을 밀치고 조금이라도 집을 다시 세워보겠다는 것인데, 다시 집을 쌓기는 정말 어려워 보인다.

환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어제 우리가 돈 곳은 데바찌우르 군의 여러 마을들 중 6개 정도 마을이었다. 마을들은 우리처럼 모여있는 게 아니라 산기슭 지형에 따라 한 채에서 많게는 50여 채까지 흩어져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잠시, 많으면 2~3시간 정도 머무르며 진료를 했다. 원래는 작은 마을이어서 간단히 짐을 풀고 환자들을 보고는 짐을 싸다보면 산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이웃 마을에서 몇 명씩 걸어오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짐을 풀고 그들을 봐야 했다. 걷지 못하는 환자들은 찾아가서 진료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마을은 작아도 2시간 넘게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다닐 수 있는 게 5~6개 마을. 물론 고정된 마을이 아니어도 차를 타고 산길을 가다가 주민들을 만나면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고, 다친 부위 고름을 짜서 드레싱을 깨끗이 해주고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넉넉히 주고 다시 길을 가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네팔에 온지 셋째 날, 이제는 웬만큼 찢어졌지만 지진 이후 10여일이 지나서 왔대도 우리는 놀래지도 않는다.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리저리 살핀 후 봉합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안 그랬다. 왜 병원 안 가고 이 때까지 놔뒀냐 반 핀잔, 반 안타까움으로 얘기를 했는데, 이제는 별 물음 없이 다 치료하고는 스스로 소독처치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항생제를 주고 보낸다. 슬슬 현지 상황에 적응하고 있나 보다.

▲ 산세가 험해 짚차가 올라가지 못할 때는 밀어야 했고,
더 높은 데는 차가 못 가서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함.

한번은 작은 마을에 잠시 짐을 풀고 진료를 하는데 60세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오른쪽발에 비닐봉지를 감은 채 찾아왔다. 다른 왼쪽은 맨발이었다.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입이 딱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오른쪽 발가락 첫째와 둘째 사이로부터 발바닥 앞쪽까지 10cm 정도가 찢어져서 속살은 물론, 뼈까지 드러나 보였다. 다행이 힘줄은 무사해 보였다. 왜 병원 안 갔냐고 이제는 묻지 않는다. 수술 도구를 펼치고 봉합을 시작했는데, 발바닥에 어찌나 굳은 살이 박혔는지 바늘이 자꾸 휘어서 고생했다. 그뿐 아니라 수술 바늘이 들어가지 않아서 땀을 빼야 했고, 오래도록 벌어진 발바닥이 되서 실을 당겨도 살이 붙질 않았다. 우리를 안내하던 기아대책본부 소속 문광진 선교사님께 벌어진 살을 밀어서 붙여달라고 하고는 실을 묶기를 반복하며 30분 동안 수술 한 후에야 끝낼 수 있었다.

드레싱을 마치고 일어서려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 근육이 욱씬거리며 한참 저려왔다. 수술대가 없어서 바닥에서 꿰매느라 자세를 꾸부정하게 했더니 후유증이 왔다. 한참을 그렇게 아프더니 이동을 하면서야 겨우 풀렸다.

이제는 한산한 마을을 지나더라도 걱정이 된다. 금새 환자들이 몰려오는 것들은 둘째치고 또 어떤 열상 환자가 찾아올까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소독기구가 충분치 않아서 여러 명을 동시에 수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약품도 일부 동이 나기 시작했고…. 내일은 산을 내려가서 약이나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고 와야 할 것 같다.

< 네팔 상황 요약 >
ㆍ국토면적 한반도 2/3(남한 1.5배)
ㆍ전 국토 77% 산악지대
ㆍ인구 3000만 명 (수도 카투만두 250만 명)
ㆍ12개 도, 75개 군
ㆍ2015년 4월 25일 낮 11시 50분경 진도 7.8의 첫 지진, 다음날 4월 26일 진도 6.8의 강진 후
수 백 차례의 여진이 발생해서 1만~1만 5천 이상의 사망자 발생, 수 십만 채의 건물 붕괴

▲ 해발 1800m 의 산악지대 점점이 집들이 있다. 좁은 길을 따라 차를 타고 겉고 하면서 이동을 한다.

 

* 본 글은 제이누리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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