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445) 정부의 ‘상자 뺏기’ 게임… 서민은 결국 ‘꽝’

위클리펀치(445) 정부의 ‘상자 뺏기’ 게임… 서민은 결국 ‘꽝’

By | 2018-06-29T17:03:11+00:00 2015.03.11.|

1.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5명이 상자를 노린다. 상자를 놓아둔 사람이 말한다.

“상자를 열면 큰 금액이 적혀있어요. 상자를 연 사람이 그 금액을 받게 돼요. 그런데 그 돈은 나머지 네 사람이 각각 분담해서 모아주는 거예요. 자, 게임에 참여하시겠어요?”

언뜻 말도 안 되는 이 게임에 누가 동의할까? 게임의 주최자는 나머지 규칙을 제시한다.

“상자 안에는 여러 개의 상자가 들어 있어요. 상자를 열 때마다 보상은 점점 커져요. 그런데 상자를 열 때마다 이전에 얻은 보상은 사라져요. 여러분이 내야 하는 분담금이요? 그건 계속 쌓여요. 그래야 게임에 집중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상자를 뺏기 위해 최선을 다 하세요. 아, 가장 재미있는 규칙을 빠뜨렸군요. 몇 개의 상자가 있는지 알려드릴 수는 없는데 마지막 상자가 열리게 되면 모든 보상은 사라지고 분담금만 남게돼요. 스릴이 장난이 아니겠죠? 만약 모든 참여자가 합의하면 도중에 게임을 끝낼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시점의 보상금과 분담금으로 확정돼요. 상자를 얻은 사람이 모든 상자를 그대로 다 열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상자를 연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야 다시 상자를 열 수 있어요. 그 사이를 놓치지 말고 상자를 뺏으세요.”

우리 사회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게임에 5명 모두 참여하게 하는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게임에 이긴 소수에게 큰 보상이 돌아가고 게임에 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막대한 손해가 있는 것처럼 꾸미되 단기적인 위험(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처럼 보이게 맞춰주면 된다.

2.

위 게임의 규칙을 들으면서 혹자는 얼마 전에 방영된 TV쇼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쇼의 규칙도 위와 같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윤이 창출되는 과정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위 게임과 동일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된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이윤이 다른 사람들의 부담이나 손실에서 기인한다는 근본 속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소수의 막대한 부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마련해 준 것이다. 즉, 부는 소비자들의 부담의 합이다. 시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돈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즉, 부는 경쟁자들의 손실의 합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은 자신의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적은 임금을 주면서 최대한 많은 생산을 이끌어내야 한다. 즉, 부는 노동자들의 부담의 합이다. 상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원재료를 가능한 한 적은 대가를 치루고 받아오는 것이다. 이는 갑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달성되기도 한다. 즉, 부는 을들의 눈물의 합일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쭉 따라가다 보면 내 수중에 이것저것 제하고 순수하게 백만 원을 남기려면 다른 사람들의 부담이나 손실의 합이 최소한 백만 원 이상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3.

위와 같은 것이 문제라면, 내가 10%의 이윤을 얻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도 평균적으로 10%의 이윤을 얻게 되면 되는 거 아닐까? 경제 전체가 창출된 이윤만큼 성장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내가 10%의 이윤을 얻을 때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이윤 10%를 더 지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GDP가 10% 증가했을 뿐 내가 더 얻은 것은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다. 내가 일한 것 이상의 뭔가를 남기려면 국내든 국외이든 손해 보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일한 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한 시간은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의 한 시간은 5,580원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4.

부동산업계에는 ‘폭탄 돌리기’라는 말이 있다. 실제 가치 이상으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한계에 봉착하여 하락하기 시작하면 마지막에 그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든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데 이런 부동산이 거래되는 모습이 마치 폭탄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위태해 보인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아파트가격이다. TV쇼에서 상자가 열릴 때마다 보상금이 늘어났듯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가 거래될 때마다 적지 않은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가격이 높아져만 갔다. 이런 추세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다소 주춤해지니 이제 마지막 상자를 열면 모든 보상이 사라진다고 엄포를 놓는 사람들도 있고 건설업계나 정부에서는 아직 상자가 많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 걱정하지 말라고 게임을 부추기기도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마지막 상자를 열어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어마어마하게 치솟은 주택가격이 형성되기까지 손해를 분담해온 것은 빚을 얻어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 비싼 임대료를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 싼 집이 헐리고 비싼 집이 들어섬에 따라 외곽으로 이주해야만 했던, 그래서 비싼 교통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서민들이라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지 않는 한 경제가 성장할수록 누군가(결국은 서민)의 손실은 계속 누적될 것이다.

5.

현명한 행동은 무엇일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참여하지 말고 좀 더 나은 규칙을 설계했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면 상자가 하나라도 더 열리기 전에 게임의 종료에 합의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보상금을 얻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실을 분담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준다면 합의가 좀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6.

TV쇼에서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상자가 몇 개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쇼를 연출한 사람들은 마지막 상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서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봤을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도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의 의도대로 게임에 빠져 무력하게 허우적대는 것은 억울한 일일 것이다. 최근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면 저렴한 주택의 공급이나 전세가격 안정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신에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와 같은 새로운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 상자에 거의 도달하여 주택분양 시장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다른 게임으로 전환하려는 것은 아닐까? 어떤 규칙이 깔려 있는 것인지 어떤 자들이 그 규칙을 꾸미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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