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경제모델의 역사적 경로

한국 사회경제체제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저부담-저지출의 ‘작은 정부’, 낮은 공공사회복지비 지출, 높은 부패지수-낮은 정부 신뢰도, 낮은 사회 성원 간 신뢰도,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지표들은 노동시간, 삶의 만족도, 산재사망률, 자살률 등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들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한국의 실정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갖는다(표1 참조).

김승원·최상명(2014)은 OECD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이러한 삶의 질에 관련된 지표들이 경제성장 그 자체보다는 소득분배 수준과 더 많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주었다. 같은 연구 논문에서 두 사람은 이른바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현상을 분석해 주목을 끌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1인당 GDP의 상승과 자살률 하락이 동반되는 반면, 한국은 두 지표가 나란히 움직였다는 것이다(그림5 참조).

성장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삶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자살 친화적 성장 모델’은 한국 사회경제체제 발전과정의 중심 화두였던 다음 두 가지 문제설정 방식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는 이른바 ‘박정희의 공과 과’라는 문제설정 방식이다. 둘째는 포스트-1997 구조개혁과 관련해 ‘천민자본주의’ 대 ‘시장만능주의’라는 이분법적 논의 구도이다. 이 두 가지 문제설정 방식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한국 사회경제체제가 지나온 변화의 궤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동안 박정희 체제가 민주주의를 억압한 과는 있지만, 고도성장을 이룬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성장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성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성장은 국민의 후생과 복지, 행복을 증진시킬 때만 의미가 있다. 앞선 보고서에서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간 비교를 통해 확인했듯이, 이 점에 있어서 북유럽형 모델이 가장 뛰어났다.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사민주의적 코포라티즘’이라 불리는 노-사-정 ‘협치’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형 모델도 북유럽형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 근간에는 민주주의적 협치가 자리 잡고 있다. 반대로 한국의 성장모델은 노동과 시민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재벌 동맹의 권력 강화를 위해, 그리고 경제개발을 위해 국민들을 순전히 수단으로 동원함으로써 만들어졌다. 박정희 체제는 루이스 멈포드(Mumford, 1970)가 말한 노동자들로 조립된 노동기계labor machine, 군인들로 조립된 군사기계military machine, 그리고 컨트롤 타워에 해당하는 관료기계bureaucratic machine의 복합체로 구성된 거대기계(megamachine)을 건설한 것이다(박형준, 2013: 150). 이른바 캣치-업 성장은 그 거대한 권력기계의 특성 중 하나일 뿐 독립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박정희 때 기본골격이 확립된 한국 사회경제모델은 발전국가론에서 흔히 국가자율성이라고 불리는 군부독재의 ‘강한 국가’가 주도했다. “국가와 재벌의 지배 연합이 산업 발전을 위한 ‘관민 협력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재벌에 대한 성과 규율처럼 ‘발전 규율’ 메커니즘이 작동하며, 다른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에 개방하는 방식과 국제 분업상의 위치가 잘 조절”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국가가 ‘자율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이병천, 2014: 26). 하지만 국가의 자율성이 계급적 이해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 한국의 ‘강한 국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국가의 사회적 공공성은 전혀 강하지 못했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정부의 특성은 조금 거두고 조금 쓰는 매우 ‘작은 국가’이다. 국가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을 생산을 위한 노동력으로 동원했다. 노동기본권, 정치기본권, 사회기본권, 공공복지제도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반면 ‘압축 성장’을 주도한 권위주의 국가는 재벌 기업들에게 직접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특별 이자율과 환율 혜택, 다양한 형태의 국가 보증, 외국 차관 배분, 수탈적인 노동 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 수립 등의 특혜를 제공했다. 재벌들이 외국으로 돈을 빼내가거나 사치스럽게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발전 규율’일 뿐, 철저하게 재벌의 이익에 복무하는 ‘강한 국가’였다. 권위주의 국가는 억압적 정치로 재벌 기업들에게 순종적인 저임금 노동력을 무제한 공급해 주는 한편, 여러 특혜를 통해 나라 안팎의 경쟁자들이 그들의 사업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진입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재벌들에게 배타적으로 이윤의 흐름을 집중시켜 준 것이다.

그림6은 이러한 재벌 밀어주기의 역사적 궤적을 나타낸 것이다. 차트는 삼성그룹의 자산총액과 이윤총액 변화를 각각 GDP와 국민처분가능소득의 증가에 대비해 표현한 것이다. 그림1의 자살 친화적 성장 그래프와 겹쳐서 보면, 한국의 사회경제모델은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의 전형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림2의 실선 그래프는 1960년의 삼성 총자산을 GDP로 나눈 값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그 비율이 반세기 동안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점선 그래프는 같은 방식으로 국민처분가능소득 대비 삼성그룹의 이윤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점인 1990년 두 값 모두 2,100 정도로 커졌다. 이는 1960년부터 30년 간 삼성의 자산과 이윤이 국민경제의 발전 속도보다 20배 정도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때 만들어진 “관민 협력”에 기초한 “집단적 조직자본주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자본주의 모델을 지탱해 주던 두 개의 기둥에 균열이 간 것이다. 하나는 억압적 군부독재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냉전시대 반공의 보루로서 역할하며 받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다. 군사정권이 1987년 ‘전민항쟁’에 부딪혀 더 이상 독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계기로 민주화의 과정에 들어선다.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주노조 운동이 광범위하게 펼쳐졌고, 더 이상 재벌들은 순종적인 저임금 노동공급의 혜택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국내적인 정치역관계의 변화와 함께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것이다.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이중적인 변화의 압력 속에서, 재벌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축적 양식과는 사뭇 다른 축적 체제를 찾아내야만 했다.

1994년 김영삼의 시드니 구상(혹은 세계화 선언)은 국가-자본 동맹의 변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김영삼 정부는 보수대연합의 산물로서 87년 체제가 형성한 민주화 세력 주도의 정치적 역관계를 다시 뒤집었다. 이후 이루어진 세계화 선언에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개방화, 자유화, 규제완화의 압력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지배전략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김영삼 정부는 ‘선진국 클럽’처럼 알려져 있는 OECD에 가입을 준비하며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을 도모하는 한편, OECD 가입조건인 자유화, 개방화, 규제완화 등의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그런 가운데, 구체제의 상징인 경제기획원도 문을 닫았다. 국가 스스로 시장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개조운동을 펼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도정에서 갑자기 1997년 금융경제위기가 터졌다. 1997년 위기를 계기로 정치경제적 개혁이 엄청나게 가속화되었다. 단계별로 서서히 실시하려던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정책들이 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도입되었다. 그 결과, 한국 자본주의는 짧은 기간에 ‘거대한 전환’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매우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한국의 경제 체제는 세계시장에 깊숙이 통합돼버렸고, 급격히 팽창한 금융시장은 변동성이 심해졌으며, 안정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짧은 시간 동안 국가의 개입은 ‘죄악시’ 하고, 시장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이 정치권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심지어 진보세력의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도 “권력이 시장[자본]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러한 포스트-1997 구조조정과 관련해, 그동안 진보진영 내에서는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97년 위기는 물론 그 이후의 성장 동력 저하와 사회적 양극화가 영·미 주주자본주의 도입으로 진행된 ‘비생산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금융화 혹은 금융 주도 축적 체제 때문이라고 보는 그룹과 모든 것이 국가 주도 개발주의에서 만들어진 정실주의 재벌 시스템의 존속 때문이라고 보는 그룹이 논의를 주도했다. 그밖에, 노동자 착취 강화를 통해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그 본성이라고 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견해를 비롯해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많이 있지만, 대중적인 논의는 앞의 두 그룹이 이끌었다. 장하준 교수로 대변되는 앞의 입장은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해 스웨덴 식 복지국가로 나아가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김상조, 장하성 교수로 대표되는 후자의 입장은 반독점 규제 강화와 전근대적 재벌 총수 ‘독재체제’를 해소하면서, 미국식 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로 전환해 가자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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