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는 우리손으로 목을 쳤어야만 했다.

By | 2009-09-20T20:33:01+00:00 2009.09.20.|

1 개 댓글

  1. unwise 2009년 10월 15일 at 11:32 오후 - Reply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혁명당시 이는 200년전의 복수다(이단으로 죽은 종교지도자의 복수)라고 일제히 외쳤다는 기억도 있고요
    지금와서 민주주의의 하나의 상징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제대로 살펴보면…살육과 탐욕, 폭력의 모습들이 그 주류일 뿐입니다. 그 민중들이 가장 즐겨보았던 것 중에 하나가 이단들의 화형식이었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죠.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어느부분은 동의하고, 어느부분의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고종의 부분에 대해서는 더 그렇죠. 근래에 밝혀진 사료에 따르면 고종등은 입헌군주제를 추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당시 그에 정통성을 부여한 사람도 다름아닌 고종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공화제(왕권을 부정하는)와 입헌군주제(왕실을 인정)사이의 분열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고종은 차후의 모든 왕실의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이로써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문제는 고종이나 명성황후의 문제가 아니라…외세의 속셈을 제대로 파악못하고 순진하게 외국문물을 무조건 받아들이려한 개화세력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일본의 인사로부터 신문물을 배우고, 이러한 내용은 일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선을 개방하는 것이었죠. 지금으로 치면, 미국등에서 교육을 받은 경제저격수 역할을 그들이 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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