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살기>는 ‘같이 사는 가치 있는 삶’이라는 의미로, 필자가 신정동 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에 살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다룬 일기 같은 칼럼입니다. 칼럼 <가치살기>는 새사연 홈페이지에 월 1회 게재될 예정입니다. (필자 주)
깨달음 1. 다수결과 과반수
“그럼 총회 날짜 24일 25일 둘 중에 가능한 날짜를 손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25일이 24일 보다 더 많음으로 다수결에 의해 25일로 선정되었습니다. “
“의사결정과 관련해서는 다수결이 아니라, 과반수가 넘어야 합니다.”
본 내용은 총회날짜를 선정하는 3회 신정동 청년주택협동조합 준비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대통령선거에서부터 삶의 많은 부분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구조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 내 의사결정 방식은 익숙한 다수결이 아니라 과반수의 찬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의견이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과정은 복잡하다. 총회만 하더라도, 총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의 참석과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의사결정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족수가 미달 되면 20일 이내에 다시 총회를 소집해야 하며, 미리 통지한 사항이 아닌 긴급으로 요하는 사항의 경우, 총 조합원의 3분의 2이상 출석과 출석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다는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의결을 할 수 있다(일반 협동조합 표준정관례 제35조: 2015.9 개정). 또한 조합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 정관의 변경, 조합의 합병․분할․해산 또는 휴업, 조합원의 제명, 탈퇴 조합원(제명된 조합원을 포함)에 대한 출자금 환급 안에 있어서는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게 된다(일반 협동조합 표준정관례 제36조: 2015.9 개정).
어찌 보면 정말 귀찮은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성공적인 협동조합 운영에 있어서 필요충분적인 요소이다. 내가 생각하는 협동조합의 꽃은 참가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낸 합의이다. 일례로 청년금융협동조합을 표방하는 ‘토닥’은 (우리나라 협동조합 기본법에는 금융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엄격하게는 협동조합이라 부를 수 없지만, 그 뼈대는 협동조합에 두고 있다.) 지난 총회 때 안건에 관해서만 4시간 가까이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 의제가 안건으로 채택되어야 할지, 안건 채택 전 이견은 없는지, 이 안건을 통과시킬 것인지 등 전 과정이 현장에서 과반수로 표결된 것이다. 그 결과 총회는 예상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간에 마쳤지만 참석자들은 결과에 만족했고, 토론을 통해 타인의 의견 및 그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날 늦게 돌아가는 가는 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체험한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깨달음 2. 협동조합에서의 온라인 투표
추석 연휴가 지난 후 9월 16일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는데, 새 건물에 처음 입주하는 거라 미리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건물 청소와 인터넷 설치에 관한 일이었는데 아래는 그 과정에 생겼던 의사 수용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첫 번째는 건물 청소 건이었는데, 입주 전 전체 건물 청소여부에 대해서 온라인 투표로 진행하였다. 온라인 투표 결과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동의해서 입금 및 진행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입주 이후 정기 청소 및 가격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사실 내가 물어봤다.) 이미 청소 업체와 날짜 조율 및 입금이 끝난 상황이었고, 거기에 대해 업체 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 사실 진행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다행히 잘 정리되었지만 그 뒤에 코디네이터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코디네이터: “사실 온라인 투표가 빠르게 진행될 수는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협동조합 내에서는 온라인 투표에 반대야”
나: “왜요? 빠르고 편하고 의견표출도 할 수 있고 좋지 않나요?”
코디네이터: “내 의견을 투표할 수는 있지만, 토론을 할 수가 없잖아.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고 시간에 쫓겨 투표를 하게 되면 이번과 같이 투표결과를 근거로 진행을 하지만, 중간에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생기는 거지. 그런 것들이 갈등이 될 수도 있고.”
협동조합에서의 의사결정은 속도전이 아니라 수용(受容)전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 설치 건이다. 인터넷 설치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진행해야 했는데, 가입형태는 인터넷과 tv를 건물 단위로 가입하는 공용 인터넷과 개인 단위로 가입하는 방식이 있다. 이에 관련한 문제를 화곡동 청년주택협동조합 ‘그랑’의 경우에서 참고해볼 수 있었는데, 가입 형태에 따라서 개인 인터넷이 적게는 1.8배, 크게는 2.5배 이상 공용인터넷보다 월 이용료가 비쌌다. 즉 금액적인 부분만 본다면 공용인터넷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된다.
하지만 기존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중도 계약 해지로 인해 위약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존재해서 개인 인터넷 사용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용 인터넷 설치 선호도 조사 결과 약 60%정도가 공용인터넷 설치를 선호했다. 만약 세상의 방식인 다수결로 했다면 당연히 개인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반강제적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공용인터넷을 설치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협동조합이니까 이를 담당하는 ‘인프라 구축팀’ 에서 우선 인터넷 설치가 늦어지는 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고 개인인터넷과 공용인터넷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고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 비록 아직까지 인터넷 설치는 안 되었지만, 그 정도 불편과 양보는 나한테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협동조합에 사는 것은 단순히 ‘함께 산다’ ‘저렴하게 산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우리의 삶이 빠르게 효율을 추구했다면 이곳은 공감과 동의를 바탕으로 한 합의를 추구한다. 이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에서 그랬던가,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우리도 답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 느릴지라도’ 말이다. 함께 잘 갈 수 있다면 느려도 괜찮다.
#. 나는 지난주 토요일 9월 24일 입주를 했고 신정동 청년주택협동조합 (가칭)은 25일 총회를 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C동 조합원을 만나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갔다. 다들 들어가 있는 대화방에는 “지금 비가 오니 다들 우산을 챙기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같이 사는 것,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