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교육부는 중학교의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발행 하겠다는 내용의 관보를 확정고시 하였다. 11월 5일 관보를 통해 확정고시 하겠다는 기존의 계획에 비해 2일 앞당겨진 발표이다. 이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은 급물살을 타고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부 산하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1월 중순까지 교과서 집필진과 교과용 도서 편찬 심의위원회를 조직하고, 11월 말부터 집필 작업이 시작되어 1년간 집필된다. 2016년 12월에 감수와 현장 적합성 검토를 거치고 나면 2017년 3월부터 전국의 중고등학교는 ‘하나’의 ‘올바른’ 역사를 배우게 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위한 대국민 담화를 하며 영상자료를 제시하였다. 사용된 영상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6.25 전쟁의 원인을 북한이 아닌 공동책임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을 꼬집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축소 기술과 북한의 천안함 폭침도발 미기재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였다. 정부는 편향성 논란이 지속되어 법정까지 간 검정 교과서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더라도 집필진이 특정단체와 학맥에 속해 있으므로 편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국민적 공감’에 따르기로 했다는 황총리의 발언이 불편하게 들리는 것은 단지 진보와 보수의 의견 대립을 의식해서만은 아니다. 국민적 공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소통이다. 약속된 시간을 줄여가며 일방적으로 진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국민적 공감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10월 말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행진을 벌였고, 그 이전 국정교과서 행정예고를 한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역사학자, 교수 및 교사들의 연이은 집필거부 선언과 반대 성명들이 있었다. 10월 30일에 집계된 국정화 반대 서명에 참여한 대학생은 4만 5000여 명에 이른다. 행정예고 마감 기일에 앞서 학생들이 움직이자 확정고시 일정을 당긴 것은 아니냐는 국민들의 의심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이 또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미 1992년 헌법재판소에서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정문이 나왔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라고 직접 발표하였다. 좌편향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역사를 정치로 편승시키는 것이 무척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었던 대통령이 10년 사이에 변했다. 정부는 스스로가 검정하고 인가한 교과서들을 거부함으로써 신뢰를 무너뜨렸다. 나아가 약속기한도 어김으로써 과연 ‘올바르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부는 확정고시를 단지 이틀 앞당겼을 뿐이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수 십 년은 후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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