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병원에 출근 후 같이 근무하는 의사들끼리 모여서 간단한 회의를 하였다. 청정 지역이라는 제주도에서 아직 근처에도 오지 않은 전염병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환자 진료 시 유의사항이라든지 유사시를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용 마스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메르스 유행이 그다지 위험한 상황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얘기들을 하지만 이미 의사들 내부에서조차 위기감과 불안함으로 걱정하고 있다면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소식이 신문이나 방송, SNS를 통해서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엄청난 유행 수준도 아니고, 살짝 지나갈지도 모르는 이 감염병이 왜 갑자기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걸까?
메르스의 정체
메르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감기 원인 바이러스 중 하나인 코로나바이러스이다. 그것의 변종이 이번 유행을 일으키는 주범인데, 바이러스가 변이를 해서 번지게 될 때 생각지 못한 전파력과 사망률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독감(플루, 인플루엔자)은 흔히 나타나는 것이지만 새로운 변종인 신종플루가 번졌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많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는 이미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서 증상이 안 나타날 수도 있지만, 새로운 변이종이 출현했을 때는 그에 대한 방어력이 없게 된 인간은 유행을 감수해야 한다. 메르스를 일으킨 바이러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이미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나오는 수준이니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내용들, 사람들에게 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적어보려고 한다. 인류에게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세균(bacteria)이나 바이러스(virus)에 의한 전파이다. 이들은 워낙 작아서 미생물이라 불렀고, 퍼지는 양상도 공기 중에 떠다니거나 접촉, 혹은 타액 등에 의해서 보이지 않으면서 옮겨간다. 주로 비말(droplet) 형태이거나 비말핵(droplet nucleus) 형태인데, 대부분은 비말 형태의 경우이고, 다소 무거워서 기침이나 재채기에 묻어서 튀어나가도 2~3m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기침할 때 손으로 막아주고, 적절히 거리를 두게 한다. 비행기에서도 의심되는 사람의 앞뒤 좌석을 그만큼 거리의 승객들을 주의 대상으로 하는 이유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이와는 달리 비말핵 형태의 경우에는 결핵균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가벼워서 공기 중에 떠다니게 된다. 그래서 환기를 중요시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전파력이 강하므로 주의하라고 하게 된다.
이번 메르스를 일으킨 바이러스는 발표로는 비말 형태이고 공기 중 전파는 불가능하다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한국에서의 감염 양상을 볼 때 공기 중 전파도 가능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한다. 즉 비말 형태이지만, 비말핵 형태로 전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접촉이 아니어도 같은 실내에만 있어도 전염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니길 바라지만.
멸치만한 것을 고래로 키운 건 누구인가?
“이번에 멸친가 뭔가 유행햄덴 허멍 경헌가 아닌가 봐줍서.”
감기 걸려서 진료실에 들어왔던 할머니는 한 말이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메르스와 비슷한 발음인 멸치, 사실 멸치만한 전염병일 수도 있는데, 이것을 누가 고래만큼 키워놨을까?
많은 전염병들은 주의만 잘 하면 꽤 영향을 받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그렇다. 중동이라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생겼고, 사전에 주의해야 할 것들,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발생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전염병 위기 단계에 따른 적절한 대응,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경우에는 신뢰를 쌓기 위한 발 빠른 정보의 공개 등 잘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초기 대책을 무능하게 했고, 막상 전염된 환자들이 생기고 사망자가 발생해서 국민들이 불안해하자, 지역사회 전파는 없다며 안일하게 대응했고, 위험 지역이나 병원 공개는 하지 않겠다 단언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며, 더 나아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은 엄벌에 처한다는 협박까지 하였다. 다 정상적인 정부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정부이거나 위기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 잡힌 정부라면 다르게 대응할 수도 있었다. 초반에 의심환자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인 대응을 하거나 적극적인 격리조치 및 격리병동의 사용 등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와 대책반은 재작년즈음 일찌감치 만들어 놓고도 정작 전염병이 발병하자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말았다. 고작 내놓는다는 방침이 ‘낙타 조심’이었다. 초반부터 전문가들과 함께 대책을 만들었다면 중동지역과 다른 전파력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단계는 낮은 수준이지만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좀 더 강한 대책을 만들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보다 다양한 구상을 할 수도 있었을 거고 응당 그리해야 했다.
계속되는 뒷북 정책과 대응은 결국 가볍게 지나갔을 수도 있었던 멸치만한 바이러스의 한국 방문을 고래의 대침공으로 확대시키고 말았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했다. 경험이 없거나 모르면 전문가들을 모아서라도 해결했어야 했는데 우왕좌왕 하는 것을 국민들은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일 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도 똑같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정부의 위기대응방침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지금과 같은 아노미 상태를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정부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우려하던 3차 감염자는 이미 발생했지만, 지역사회 전파는 아니라는 말로 더 이상의 공포를 키우지 않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유행병(epidemic, outbreak)’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을 해서는 안 되는 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전염병 위기단계 이상의 대처를 하고 있어야 하고, 국민들에게도 좀 더 강한 주의를 권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이러한 것들을 권하고 싶다.
첫째, 정부는 지금이라도 필요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감염자가 몇 명이고, 격리 필요한 사람이 몇 명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감염자들의 동선, 관련병원조차도 공개할 수 있을 정도라야 한다. 그래서 지역 표시를 통해 국민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게 하도록 해야 한다. 그 지역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한 상황 아닌가? WHO에서도 이러한 유행병 상황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내놓아야 위기를 잘 넘어설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정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감염병 전문가 및 지역 정부와 긴밀히 소통을 해야 한다. 정부 중심의 대응은 실속도 부족하고 국가 위기 사태가 될지도 모를 상황을 극복하기 버거울 것이다. 어려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으는 것은 위기관리의 기본이다.
셋째, 지금의 위기관리 수준에서 열 걸음 더 나아간 대응을 해야 한다. 지난번 2003년에 사스(SARS)가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멀리 캐나다까지 강타할 때, 한국 정부는 발 빠른 대처와 대국민 주의사항을 강도 높게 홍보했었다. 비록 일시적으로 상가나 놀이 시설들이 타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불안 속에서도 안심을 했었고,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고 WHO에서도 모범으로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정부의 메르스에 대한 위기 대응은 주의단계(노란색)에 맞춰져 있다.
보통의 전염병 유행의 경우에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이라는 4단계로 대응 전략을 짜게 된다. 이번 메르스의 경우는 현재로선 ‘주의’ 단계로 설정되어 있고, 정부도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메르스를 이미 ‘심각’의 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준은 ‘주의’ 단계일지라도 한 단계 높은 대국민 권고 사항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본다.
넷째, 국민들은 스스로의 주의사항들을 가지고 지키도록 한다. 대부분의 전염병들은 위생관리만 잘 해도 이겨낼 수 있다. 콜레라가 무서운 균이 아니라 탈수로 죽는 것처럼 이번 메르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독한 놈이기는 하나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특징에서 오는 전파 경로 차단이다. 비말 전파이므로 가족이나 동료들끼리의 접촉이나 타액 등을 막을 수 있는 요령을 익힐 것, 비누로 손을 잘 씻을 것, 사람 많은 곳에 오래 있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유행병은 금방 지나갈 것으로 본다. 당분간만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며, 영업을 하는 많은 곳들도 잠시의 어려움은 참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의사들은 문진 시 되도록 국외나 국내의 관련 지역을 다녀왔다든지, 질병의 모양 등을 자세히 물어보면서 진료를 하도록 한다. 2~3분 진료에 길들여진 한국의 의사들은 환자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볼 겨를이 없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서 진찰을 하고, 의심되면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 아이들을 키우는 조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삼촌, 우리 아이들 잘 가는 병원이 환자 발생 병원이래요. 어떻게 하면 되죠? 가지 말아야 하죠?
나 역시 명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손 잘 씻기고, 사람 많은 데는 당분간 피하라는 말과 당분간만 그 병원에 가지 않도록 하라는, 병원에서 들으면 야속할 수 있는 말로 답할 수밖에. 이번 메르스 사태가 부디 작은 위기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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