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러난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서 드러나듯이, 공공영역에 대한 사회적 감시 부재는 필연적으로 부패로 이어진다. 공공영역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이다.

LH 직원들의 공공개발계획을 이용한 조직적인 투기행위가 드러난 후 전 국민이 분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박빙이었던 보궐선거 후보자 간의 지지율이 크게 뒤집어져서 여당 후보는 야당 후보 누구와 견주어도 10% 이상 지지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촛불혁명과 총선에서의 승리가 무색할 지경이다.
경중을 떠나서 공공정책을 집행하는 자들이 공공정보를 활용하여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운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에 대한 주권자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분노로만 그쳐서는 이런 비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익히 알 수 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감시로 굴러간다.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에는 여말선초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한다.
그 중에 정도전은 훗날 경국대전의 기틀이 되는 조선경국전의 편찬 등을 통해 조선의 설계자라는 평가를 듣지만, 동시에 역적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이런 모순은 시대를 앞선 그의 개혁성이 훈구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으로 그려진다.
“사대부의 의심이 (조선을 지탱하는) 체계를 만들 것이다. 항상 의심하는 사헌부, 항상 질책하는 사간원, 항상 떠들어대는 홍문관을 만들 것이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부패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는 대사에서 이런 해석을 읽을 수 있다.
세세한 정황과 대사야 작가의 창작이겠으나 이런 감시와 견제 체계가 경국대전에 쓰여 있는 것은 엄연한 팩트이다.
이런 체계가 무너지고 권력을 일부 세력이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등장하며 조선은 무너졌다.

이런 사상의 민주주의 버전이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일 것이다.
그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고 세력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체제에 녹아있다.
하지만 삼권분립만으로 공공의 부패를 막기는 어렵다는 것 또한 역사를 통해 익히 알 수 있다.

대리인 딜레마와 철의 삼각동맹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공무원이 주민의 위에 군림하는 듯한 경우가 많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공행정은 국민의 주권을 대행하는 것이다.
즉 권한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공행정은 ‘대리인(agent)’인 것이다.
대리인인 공공행정은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겠지만 정보가 그들에게 독점되면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할 도리가 없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이다.
LH 직원들의 비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런 부패가 이익집단, 관료사회, 정치인의 결탁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동맹(iron triangle)을 이루어 국가를 망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정 이익집단이 관료들을 부추겨 규제를 만들고 공공지출을 계속해서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LH 직원의 부패상을 지적하며 “주택정책에서 공공은 손을 떼고 민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밑바탕에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깔려 있다.
틈만 나면 보수진영에서 들려오는 정부실패나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리드먼과 그의 추종자들이 추구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역사를 통해 익히 알 수 있다.
시장주의에 많은 것을 맡기는 동안 ‘부익부, 빈익빈’ 즉, 양극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사회에서 ‘공공성’이 아니라 ‘이익’이 추구되는 한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하는 이익집단, 관료, 정치인만 바뀔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철의 삼각동맹을 깨기 위한 진정한 방편은 공공성이 우선되도록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 감시 체계의 실패

LH 직원들의 부패를 사전에 파악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네 번은 있었다.
이들은 같은 지역본부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대담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투기를 하였다.
그들이 투기한 토지를 매입하는 부서는 같은 본부에 있었으니 매입을 담당하던 직원이 이웃부서 직원들의 이름이 다수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때 의심을 품고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면 LH 차원에서 비리직원을 처벌하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시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감사가 자신의 업무도 아니니 모른 척 했을 수 있다.
이런 비리를 전문적으로 밝혀내는 곳은 LH의 감사 부서이다.
어쩌면 매입부서의 직원이 비리를 눈치 채고 감사실에 익명제보를 했을지 모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어떤 익명 제보를 감사실에서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사내의 공식적인 감사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내부의 감시 기능은 ‘제 식구 감싸기’로 인해 마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사원이 존재한다.
새삼스레 언론이 소란스럽지만, 공공기관의 직원이 공공정보를 활용하여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다는 소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연히 대규모의 공공계획을 다루고 대량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LH를 감사할 때는 관련 직원들의 투기행위를 일순위로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을 통해서 관련 비리가 드러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감사원 직원이 피감기관 공무원에게 싼 값에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낯뜨거운 기사만 보인다.
국가의 공식적인 감사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정부의 감시 기능 실패를 견제하기 위해 국회는 국정감사를 수행한다.
매년 국정감사 기간에는 TV를 통해 피감기관 대표와 직원들을 쥐잡듯이 잡는 의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야당의 처지에서는 LH 직원들의 비리 의혹은 여당을 흔들기 위한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국정감사에서도 비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애초에 몇 십 명 정도의 국토위 의원이 LH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견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최종판이라는 사회 일각의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드러내는 좋은 예가 최근 드러난 LH 직원의 부동산 투기이다.

사회적 감시의 완성, 주민의 참여와 자치

선진국의 여러 사례를 보면, 공공행정의 부패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즉 다수의 시민들이 공공행정을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도 오래 전부터 많은 주민들이 참여와 자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 마을공동체 활성화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와 ‘도시지역 마을지원센터 운영’의 연관성을 분석한 적이 있다.(http://saesayon.org/2017/02/06/20252/) 분석결과에 따르면 마을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의 종합청렴도가 그렇지 않은 곳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주민참여와 자치가 촉진된 곳의 청렴도가 높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공공행정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행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분노가 모아져 최종적으로 향해야 하는 곳은 정보의 투명성과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감시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의 달성을 위해 행정당국과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한다.
마침 보궐선거라는 좋은 기회도 주어졌다.

목적 잃은 분노가 아닌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어야

어두운 현실과 그로 인한 분노가 극우정당 등 엉뚱한 세력을 소환하고 사회를 크게 퇴보시키는 사례는 역사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독일에서 참혹한 경제 현실에 분노한 국민들은 히틀러의 집권을 불러왔다.
그 결과 독일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막대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분노한 우리 주변에도 엉뚱한 얘기들이 난무한다.

LH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민간이 대신하게 하자는 얘기는 얼토당토 않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LH의 역할을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건설회사가 대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LH의 기능을 지방공사가 대신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LH에서 발생한 비리가 지방공사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감시 체계가 있어야 공공영역의 권한 조정과 지방분권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보궐선거에 나선 야권의 후보들은 많은 분노가 여당으로 향하면서 얻은 반사이익에 취해 부패를 척결할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를 조금만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들도 LH 직원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패가 쌓이는 과정에서 그들도 국회에 몸 담고 있었고, 시청에서 행정을 책임지던 위치에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야당도 이번 사태를 보며 희희낙락하거나 남을 나무랄 자격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모습은 자신들이 어떻게 주민 참여와 자치를 촉진하여 사회적 감시 체계를 보완할 것인지 밝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가오는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서로 경쟁하며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 정치계가 우리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사죄이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주민 참여와 자치, 그리고 사회적 감시 체계의 완성에 진심인 후보자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