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는 게 나을까, 집을 주는 게 나을까’.
인구를 늘리려는 지자체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전국 시군구 10곳 가운데 4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니 그럴 수밖에. 이른바 ‘소멸 위험 지역’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들이다. 새로 태어나는 인구는 적고 나이 들어 사망하는 인구는 빠르게 느는 탓이다.
이런 소멸 위험 지역이 내년이면 100곳이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2013년 75곳에서 7년 만에 20곳 넘게 늘었다. 지방 대도시로 번지려는 조짐도 보인다. 이를 막고자 정부와 여러 지자체들은 벌써 몇 년 째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하거나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을 지역에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출산지원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아이를 낳으면 가족에게 돈을 주는 제도로, ‘아기수당’ ‘양육기본수당’ 등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고 액수와 지급 방식도 저마다 다르지만 지자체의 92%가 주고 있을 만큼 벌써 널리 퍼진 제도다.
최근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살 집을 주는 지자체도 생겼다. 초등학교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자 전학을 오면 그 가족이 공짜나 다름없는 싼값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충북 괴산군에서 첫 발을 뗀 뒤 다른 곳들로 퍼져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눈물겨운 노력들이 정말 지역의 인구를 늘리고 있을까.
돈을 주면 정말 아이를 많이 낳을까
지난달 전남 해남군에선 유모차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2013년부터 무려 7년째 줄곧 합계출산율 전국 1위에 오른 것을 널리 알리려는 뜻에서 벌이는 행사로, 올해로 다섯 번째다. 해남군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89명으로 전국 평균의 두 배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명 밑으로 무너졌다.
그렇다고 마냥 축하할 일은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로도 인구가 줄어드는 걸 막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남군의 인구는 2009년 8만1148명에서 지난해 7만1901명으로 줄었다. 10년 사이 11%가 줄어든 셈인데, 나이 들어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 크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해남을 떠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2012~2018년에 해남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는 5069명인데 이들 가운데 3337명만이 2018년(0세~6세)까지 해남에 남았다. 그러니까 나머지 1732명은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해남에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떠난 비율이 무려 34%다. 2012년에 태어난 810명의 아이들만 따져 봐도 그 수가 2013년 761명, 2014년 651명으로 줄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6세(2018년)에 이르러서는 469명으로 줄었다. 거의 42%에 달하는 아이들이 해남을 떠난 셈이다.
물론 정책 효과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인구가 더 빠르게 줄었을 것이란 점은 틀림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놓쳐선 안 된다. 2012년 해남이 제도를 도입한 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수는 2009년 530명에서 2012년 832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지난해엔 다시 513명으로 줄었다. 제도가 없던 때로 돌아간 것이다.
다른 곳은 어떨까. 경북 봉화는 첫 아이를 낳으면 출산 축하금 100만 원을 더해 700만 원을 준다. 첫 아이에게 주는 돈을 따지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영양, 청송 등과 더불어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곳으로 꼽히는 만큼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을 다 받으려면 다달이 10만 원씩 60개월, 그러니까 5년이 걸린다. 해남보다 3년 반이 더 길다. 넷째부터는 1900만 원을 주는데, 달마다 30만 원씩이다. 오래도록 봉화에 머물게 하려는 뜻이 담겼을 터다.
봉화도 한때 출산율을 1.62명(2016년)까지 끌어올렸지만 해마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 2012년 243명이 태어났지만 2017년에는 167명에 그쳤다. 5년 사이 30% 넘게 줄어든 셈이다. 지난해에는 첫 아이 지원금을 470만 원에서 700만 원으로 크게 올렸음에도 오히려 11명이 줄어 156명에 그쳤다. 올해도 지난 10월까지 118명으로, 지난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울릉군은 셋째부터 최고 2660만 원을 주고, 문경시는 넷째부터 3000만 원을 준다. 다둥이 가정에 더 많은 돈을 몰아주려는 뜻으로 보인다. 이렇듯 더 나은 정책을 설계하려고 지자체마다 액수와 지급 방식을 달리하고 있지만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답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그사이 더 나은 답을 찾을 순 없었을까.
효과도 살피지 않고 앞다퉈 따라한 결과
태어난 아이들이 해남을 떠나는 징후는 정책을 도입한 이듬해부터 조금씩 나타났다. 2012년에 태어난 아이 810명 가운데 1년 만에 49명이 떠났고, 다시 그다음 1년 사이에 90명 그리고 그다음 1년 사이엔 75명이 해남을 떠났다. 받기로 한 출산 장려금을 다 받기도 전에 떠나는 이들이 5분의 1에 달한 셈인데 이 정책만으로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때부터 어느 정도는 드러난 것이다. 이쯤 되면 다른 지자체들이 앞 다퉈 따라할 만한 정책이었는지 따져봤어야 마땅하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이 정책이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 양미선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 <지역 저출산 정책 현황과 발전 방향>에 따르면 243개 지자체의 저출산 정책 담당 공무원 1001명 가운데 81%가 ‘현금 지원 저출산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사업효과가 낮거나 없다'(69.6%), ‘지자체간 과다 경쟁만 지속된다'(66.0%)가 이들이 꼽은 이유다. 또 응답자의 93.4%는 ‘전국 시도 및 시군구 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는데, 더 나은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앞으로 더 많은 돈이 지원금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출산지원금으로 나간 돈은 3280억 원으로 1년 사이 5분의 1(20.7%)인 680억 원이 늘었다. 보건사회연구원 이한나 부연구위원의 보고서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 대응 실태 및 과제>에 따르면 지난 2016~2018년에 많은 지자체들이 셋째 아이부터 주던 지원금을 첫째나 둘째 아이부터 주도록 늘리거나 금액을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손본 것으로 드러났다. 드러난 증거들에 눈을 감은 채로 지금껏 해오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국가 복지 체계의 빈자리를 메우려 노력해온 혁신가 힐러리 카텀(Hilary Cottam)은 <Radical Help(근본적 도움)>라는 책에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임을 피하려 몇 년째 똑같은 곳에 돈을 쏟아 붓는 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값비싼 실패”라 꼬집었다. 지난 10년간 출산율을 높이려 무려 100조 원 넘게 예산을 쏟아 부은 우리에게 더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다.
이번엔 집을 주겠다는데… 돈보다 나을까
충북 괴산군은 제비마을 백봉초등학교에 전학을 오는 가족에게 집을 주기로 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1명뿐이던 1학년 학생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1학년이 사라졌다. 그러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학교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다행히 정부와 지자체가 농촌을 살리려고 지원한 예산이 있었다. 주민들은 이 예산 가운데 8억여 원을 들여 6채의 집을 짓기로 했고, 괴산군도 주민의 뜻을 받아들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머무는 조건으로 월 5만 원의 관리비만 내면 새집에 살 수 있도록 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부모가 모두 이사를 오지 않아도 되게 문턱도 낮췄다. 그러자 걱정과 달리 홍보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연락이 몰렸다. 그렇게 지난해 6가구를 뽑았고, 병설 유치원까지 모두 13명의 아이들이 마을의 새 식구가 되었다. 올해 6채를 더 지어 6가구를 새로 뽑았는데 내년에 오기로 한 아이들은 18명으로 올해보다 많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경남 함양 서하초등학교는 신입생 가족이 머무를 집을 주기로 했다. 1년에 200만 원만 내면 된다. 이뿐이 아니다.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해외로 어학 연수도 보내준다. 부모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도 한다.
집을 주겠다는 이 새로운 정책은 돈을 주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클까. 물론 아직은 알 수 없다.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고 지자체가 이를 받아들인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아직 효과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방안을 다른 곳들이 섣불리 따라 할까 걱정스럽다. 전국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출산지원금 정책을 앞다퉈 따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기장을 공짜로 줘도 될까… 정책 실험에 노벨상을 주다
정책 실험이란 게 있다. 아직 우리에겐 낯설지만 많은 나라들에서 벌써 오래전부터 시도해온 방식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기본소득이 고용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무작위로 뽑은 실업자 2000명에게 2017년부터 2년간 우리 돈으로 약 72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진 못했지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비지트 배너지(Abhijit Banerjee)와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등도 지난 20년간 가난한 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건강하게 살아갈 방안을 찾고자 세계 곳곳에서 ‘정책 실험’을 진행했다.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는 최근 인터뷰(“A Nobel Prize Winner on Rethinking Poverty (and Business))”에서 기업이 수많은 실험을 거쳐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과 달리 정부가 아무런 실험도 하지 않고 정책을 만드는 건 ‘시민이 선택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학교가 아무리 끔찍해도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달리 갈 곳이 없다.”
그러면서 교육을 바꿀 더 나은 정책을 만들려면 여러 학교들을 모아 두 개 무리로 나눠 한 무리에만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보고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 실험’을 진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려고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눠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책에서 2003년 빈곤퇴치연구소를 세운 뒤 7년 동안에만 40개 나라에서 약 240건의 정책 실험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기구, 연구자, 정책결정권자가 무작위 대조 실험 방법의 유용성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각 단계의 충분한 숙고, 꼼꼼한 검증, 분별 있는 실행 등 한 단계씩 꾸준히 진행해 나가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놀라운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모기장 보급 방식을 둘러싼 실험도 소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무려 100만 명에 달한다. 많은 수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다. 이들을 말라리아로부터 지키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은 모기장을 보급하는 일인데, 이것도 간단치가 않다.
모기장을 무료나 싼값에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무턱대고 나눠주면 오히려 함부로 다루거나 심지어 고기 잡는 그물로 써버린다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파스칼리니 뒤파(Pascaline Dupas) 교수는 정책 실험으로 이 문제의 답을 찾았다. 케냐에서 무작위로 뽑은 이들에게 저마다 다른 수준의 모기장 구입 보조금을 지급해보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직관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말고 실행(실험)을 통해 가장 좋은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답을 찾으면 그것에 달려들어야 한다.”(에스테르 뒤플로 교수)
아무리 그래도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정책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답을 찾기 어렵고 또 해결이 절실한 문제일수록 책상머리에 앉아 섣불리 답을 정해놓고 예산을 쏟아 붓기보다 더더욱 차분하게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1960년대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가난한 흑인 아이들 123명을 뽑아 영유아기의 교육이 생애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려는 정책 실험인 ‘페리 프리스쿨 프로젝트(Perry Preschool Project)’를 진행다. 이 실험은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제 우리에게도 정책 실험이 절실하다. (다음 글에 계속)
- 이 글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국민 체감형 작은 연구’ 지원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참고한 글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2012, 생각연구소.
이상호, 2018, 「한국의 지방소멸 2018」, 『고향동향 브리프』, 07, 한국고용정보원.
“A Nobel Prize Winner on Rethinking Poverty (and Business)”, 2019.11.26.
최경호, 최종권, “해남 출산장려금 역설…179억 썼는데 아이들 1700명 떠났다”, <중앙일보> 2019.3.13.
김영선, “출산율 1위인데 인구는 감소… ‘먹튀’에 우는 해남”, <국민일보> 2019.11.22.
김나현, “남다른 지원에 인구수 줄자···”먹튀라뇨” 억울한 출산율 1등”, <중앙일보> 2019.11.23.
강경민, “파격’ 출산장려금의 함정…해남, 곳간 비고 인구 되레 줄었다”, <한국경제> 2016.9.22.,
김성권, “출산장려금 제각각…첫째아이 출산지원금 올해 1위는 경북 봉화군, 2위 울릉군”, <헤럴드경제> 2019.11.18.
남현정, “인구늘리기 출산장려금 약효없다…대책 마련 시급”, <경북일보> 2019.11.25.
김진아, “출산지원 1년새 680억 증액…공무원 81% “현금지급 문제””, <뉴시스> 2019.11.14.
임재희, “지자체 저출산 대책 3년새 97%↑…”출산장려금 쏠림 우려””, <뉴시스> 2019.11.21.
이혜미, “”아이 오면 집 드려요” … 폐교 위기 초등교 살린 ‘상상력의 기적'”, <한국일보> 2019.3.30.
한성주, “소멸 위기 초등학교 “입학하면 집 드려요”…근본적 문제 해결책 될까”, <쿠키뉴스> 2019.12.129.
안관옥, “선관위, 전학오면 집 준다는 화순군 초등학교에 ‘엉뚱한 제동'”, <한겨레> 20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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