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우버와 같은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그때는 소비자들도 과거에 누렸던 편익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Uberworked and Underpaid>(우버에서 일하고 더 적게 버는)를 쓴 뉴욕대 뉴스쿨의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 교수는 지난 5일 강연에서 ‘디지털 경제’가 가져올 불안한 미래를 경고했다.

(책의 제목 Uberworked는 발음이 비슷한 Overworked(과로하는)를 빗댄 표현이다. 부제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디지털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나(How Workers Are Disrupting the Digital Economy)’다.)

 

숄츠 교수는 지난 4일 경기도 초대로 ‘2018 공유 경제 국제 포럼’에 참석해 기조 연설을 한 데 이어 이튿날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마련한 콜로키움에서 ‘플랫폼 협동주의’를 주제로 강연했다.

 

우버는 공유 경제와 거리가 멀다

 

그는 사람들이 우버나 에어비엔비 같은 기업들로부터 받았던 처음의 인상과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현실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말로 5일 강의를 시작했다.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우버가 처음에 했던 약속과 달리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교통 체증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버는 사람들이 차량을 공유하게 되면 거리에 차가 줄어 생태적으로 더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막상 우버가 도입되자 뉴욕시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우버 파트너(운전자)가 되어 대도시로 차를 몰고 들어오면서 뉴욕의 차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영국 런던의 경우, 블랙캡이라 불리는 공인 택시는 약 2만 1000대로 그 수가 제한돼있지만 우버 등록 차량은 약 4만대로 무려 두 배에 이른다.

 

그는 “사실 ‘공유 경제’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공유(sharing)’라는 가치가 빛을 잃은 지 오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책 <Uberworked and Underpaid>에서도 우버와 같은 기업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공유 경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유 경제가 사실은 지금까지 개인의 영역이던 서비스로 돈을 벌려고 작정한, 언제든 부를 수 있는(on-demand) 서비스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공유 경제’로 꼽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진정한 공유 기업”으로 카우치서핑(CouchSurfing)과 블라블라카(BlaBlaCar)를 꼽았다. 카우치서핑은 에어비엔비(Airbnb)처럼 여행자와 소파(잠자리) 제공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지만 에어비엔비와 달리 둘 사이에 돈이 오가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도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의 소파를 공유할 것을 기대하면서 남는 소파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 경제(Gift Economy)’라고도 부른다.

 

블라블라카는 우버처럼 차가 필요한 사람과 운전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우버와 다른 점은 둘 다 여행자라는 점이다. 차로 멀리 떨어진 도시와 도시를 오가거나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여행자가 차의 빈자리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행자에게 싼 가격에 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 이동 거리가 300km다.

 

카우치서핑과 블라블라카 모두 쓰지 않는 자원을 나눠 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또 플랫폼 기업이 가치를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유 경제라 부를 만하다.

 

소비자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는 플랫폼 기업들이 제공하는 편의를 소비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노동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낮은 임금과 같은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런 것들은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3월 MIT 에너지 환경 정책 연구센터(Center for Energy and Environmental Policy Research)가 1100명이 넘는 우버와 리프트(Lift) 운전자들의 수익을 조사해보니, 이들이 손에 쥐는 돈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순수익(기름값, 보험료, 수수료와 차량유지비 등을 뺀)의 중간값은 시간당 8.55달러에 그쳤고, 절반이 넘는 54%는 그들이 영업하는 주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고 있었다(처음엔 3.37달러에 74%로 발표했으나 우버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수정).

 

숄츠 교수도 책에서 이들의 노동 조건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꼬집었다.

 

“우버 파트너들은 처음엔 유연한 근무에 만족했으나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그들의 수입이 주저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거리에 따라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따위의 의무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임금노동자(피고용인)가 아닌 독립 계약자로 분류가 되면서 이들의 노동 조건은 언제든 마음대로 바뀔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다.”

 

그는 오늘날 소비자들이 누리는 편익도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버티며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사들을 밀어내 시장을 독점하려는 전략”이라며, 시장을 독점한 뒤에는 우버 파트너들에게 기본요금을 낮추고 수수료를 올려 받듯 소비자들에게도 비용을 올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플랫폼 협동주의, 공동체가 소유하는 플랫폼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플랫폼 협동주의’다.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 디지털 경제가 낳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우버 플랫폼을 우버 파트너들이 소유하고, 에어비엔비 플랫폼을 지역민들이 소유하는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기존 플랫폼 기업의 심장에 자리한 알고리즘을 떼어내고 이 자리에 협동조합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는 몇 가지 플랫폼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스마트(SMart)는 프리랜서들이 위험을 나누고자 만든 플랫폼이다. 조합원들이 업체로부터 일을 맡게 되면 스마트가 나서서 조합원의 권리를 지켜준다. 가령, 성추행 피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일이 끝난 뒤 제때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9년 만에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며 수 만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노동조합보다 낫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전체 노동인구의 3분에 1에 달하는 약 6500만 명이 프리랜서지만 이들을 대변하는 조직은 없다고 한다.

 

업앤고(UP&GO)는 미국에서 이주 여성들이 만든 청소 도우미 플랫폼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을 존중하는 뜻에서 도우미 한명 한명에 대한 고객 평가는 받지 않으며,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수료도 5%로 나머지 95%를 조합원이 가져간다. 참고로 우버의 수수료는 20~25%다.

 

마이데이터(MIDATA)는 정보 협동조합이다. 시민(조합원)들이 진료나 웨어러블 기기로 얻은 다양한 의료 정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모아진 정보는 공익 목적으로만 쓸 수 있으며, 정보 제공으로 얻은 이익은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스마트와 업앤고 그리고 마이데이터는 플랫폼이 대기업이 아닌 공동체의 것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비전이 있는가

 

그는 한국 정부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부담으로 규제 완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정부가 자기만의 분명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의 사례를 소개했다. 우버가 곧 멸종될 공룡(기존 산업)을 지키려 한다느니, 세계적 흐름을 거스른다느니 하며 시장(mayor)을 직접 공격했지만 시 정부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바로셀로나는 지난 3월 3년 만에 우버 영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택시 노동자들의 시위로 서비스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자기만의 비전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 게 중요한데,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는 기술 주권(technical sovereignty)이라고 하는 개념을 내세웠다. 기술을 소수 기업이 아니라 시민 전체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응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를 위한 경제 호황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의 질이 과연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바마 정부 때 만들어진 일자리의 94%가 ‘단기 저임금 일자리’였다며 “적어도 미국에서의 호황은 사장들을 위한 호황일 뿐 노동자를 위한 호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업계가 내놓는 통계 수치들을 믿을 수 없다는 점도 꼬집었다.

 

“우버 파트너들은 잘 해야 연 2만 8000달러를 버는데 1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식으로 가짜 통계 수치를 발표한다. 우버의 통계 조작은 중국의 그것에 버금간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끔직한 일자리(terrible jobs)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카풀 서비스를 도입하면 연간 수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카카오모빌리티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를 그대로 실은 것이었다.

 

노동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야 할 때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상품을 쓰려고 하면 결국 기업이 성공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충분히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만 하면 정부 당국도 결국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배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껏 살펴봤듯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편익 뒤에는 아주 크고도 오래도록 이어질 숱한 문제들이 가려져 있다. 벌써 수년 째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산한 풍경들을 우리만 비껴갈 도리는 없다. 또 우리 가운데 누구도 소비자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우리도 언젠가 플랫폼의 반대편에서 우리의 노동을 제공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노동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가야 할 때다.

 

숄츠 교수는 “우버나 에어비엔비가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며 “그들이 한국에 들어와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기 전에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른 대안들이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강의를 마쳤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 때 만약 그것이 방향도 통제할 수 없고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면 가능한 한 그 속도를 늦추어서 공동체의 안녕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어떨 때는 변화 속도가 변화의 방향 그 자체만큼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이란 우리의 의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러한 변화에 어느 정도 속도를 허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뜻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를 찾아 “이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해 2020년 예산안에 반영하겠다는 소식도 들린다. 노동자들이 기다려야 한다면 기업도 기다리는 게 옳다. 그게 공정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