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구상’과 ‘통일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
– 2018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대하며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남북, 한․미 특사회담은 4월 남북정상회담, 5, 6월 중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 3월25~28일에는 북․중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렸다. 나아가 남북․미, 남북․미․중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조차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경천동지’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한반도 상공을 뒤덮었던 핵전쟁의 먹구름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은 북한이다. 지난해 11월29일 미국 본토를 겨냥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성공시킴으로써 ‘가능성’으로만 여겨졌던, 혹은 ‘모호성’으로 남아있던 북의 핵 능력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냐 대결의 지속이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다음은 러시아.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6가지 신형 핵무기들은 기존의 군사전략적 균형을 허물어버렸다. 미국 군사력의 3대 자산인 항공모함도, 전략폭격기도, 미사일방어체계도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중국도 있다. 중․미 간의 무역, 군사 분쟁은 그렇지 않아도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 지배력에 결정타를 먹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이전과 180도 달라진 남과 북의 접근방식이다. 전통적으로 남은 ‘단계적 접근’을 주장해왔다. 먼저 인도적 조치, 민간교류, 경제협력 등을 통해서 신뢰를 쌓은 다음 본격적인 정치군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북은 반대. 서로 총부리를 겨눈 상태에서 교류니, 협력이니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뀌었다. 아니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은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문제부터 우리 민족끼리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북은 이를 받아들였다. 또 북은 ‘핵문제는 조․미 간의 문제이니 남조선은 끼어들지 말라’는 입장에서 ‘비핵화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자세로 나왔다. 대화의 걸림돌이 없어졌으니 논의 수준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진 것은 당연한 귀결.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물밑 접촉과 밀사회담을 거쳐 깜짝 발표라는 기존 방식에서 공개적인 특사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했다.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고 나섰던 소위 ‘보수진영’의 반발을 원천봉쇄 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지지도도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남북정상회담 장소를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결정한 것도 획기적이다. 이곳은 명목상 우리 영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관할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 대결의 표상이었던 판문점이 대화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바꿈하게 된 것이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걸어서 분단의 장벽을 넘고 서로 손 맞잡는 순간, 8천만 겨레는 눈물로 감동할 것이고 전 세계 인류는 박수로 환호할 것이다.
급전직하 하는 사태 전개를 놓고 과연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냐, 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북의 위장평화공세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걱정하고, 진보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쌓아올린 핵 무력인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느냐’고 걱정한다.
기우에 불과하다. 핵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북은 ‘핵무력 완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비핵화를 출구로 삼아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 무역대표부가 설치되고, 이어 대사관이 열린다. 평양에 맥도날드 가게가 열리고, 남포에 소니 전자공단이 들어서고, 개성에 현대자동차 조립라인이 들어선다고 생각해보자. 전쟁이 가능하겠는가!
남북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역사적인 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이틀이 남았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의제도 이미 공개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발판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보장하자는 청와대의 입장도 표명되었다.
4월27일에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상상하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다. 그 어떤 예측도 필연코 빗나가기 십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상황과 속도를 볼 때 그 어떤 예측과 상상도 뛰어넘은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강요되어온 국토의 분단은 물리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상상력도 반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한 구상’과 ‘통일적 상상력’이 아닐까.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우리의 고민이자 희망이다.
* 회원기고 칼럼입니다.(정용일 회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