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변경
정부는 2018년 2월 도시정비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변경하였다. 변경된 안전진단 기준은 구조안전성의 기준을 종전 20%에서 50%로 확대하고 주거환경의 비중을 종전 40%에서 15%로 축소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부의 안전진단 기준변경이 발표되면서 시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무분별한 재건축사업 추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억제하고 재건축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가격상승을 제어하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가 강남지역 재건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강남지역 신규 주택공급이 줄어들어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은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참여정부로 회귀하고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2000년 이후 국내 주택시장에서 강남지역 재건축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와 같은 것이었다. 1970년 후반 이후 공급되었던 공동주택이 급격히 노후화되면서 이에 대한 대처는 전면철거 이후 새롭게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것이외에 다른 방안이 검토되지 않았다. 재건축은 공공택지의 고갈로 서울지역 특히 강남지역에서 신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2000년 이후 서울지역 주택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강남지역 재건축은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인식되었다. 강남지역 아파트의 경우 준공된 지 20년이 경과되면 재건축이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만 형성되어도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2년 도시정비법이 시행되면서 무분별한 재건축사업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가 도입되었다. 우선 재건축 연한을 종전 20년에서 40년으로 변경하였다. 1970년대 후반 공급되었던 아파트와 1980년대 이후 공급되었던 아파트는 설계기준이 다르고 건축공법도 다르게 적용되어 공동주택의 사용연한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또한 재건축 허용여부를 결정하는 안전진단 기준도 도입되었다. 주민들의 신청에 의하여 자동으로 허용으로 결정되던 재건축을 안전진단 기준을 도입하여 건축물의 구조안전성 등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허용여부를 도입하는 기준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안전진단 기준은 재건축 허용여부를 공동주택의 구조 안전성과 설비 노후도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작동되었다
어떤 기준으로 재건축여부를 판정할 것인가?
재건축 대상과 허용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정권교체에 따라 변경되었다. MB정권은 2009년 안전진단기준을 변경하여 구조안정성의 기준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주거환경과 비용편익의 비중을 각 5% 상향하여 평가하는 기준을 도입하였다. 침체된 주택시장의 회복을 위한 것이 명분이었다. 다만 MB정권은 재건축 연한은 종전 40년으로 유지하여 재건축의 대상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2014년 박근혜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종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시키고 안전진단 기준에서 구조안정성의 비중을 20%로 낮추고 주거환경 항목을 40%로 상향하는 것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변경하였다. 사실상 30년 이상 경과된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모두 재건축을 허용하는 방안을 도입하였다.
재건축사업에서 안전진단기준은 재건축 허용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안전진단 기준에서 건축물의 구조안정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재건축이 노후불량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박근혜정부가 도입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은 구조안전성의 비중을 20%로 축소하고 주거환경의 비중을 종전 15%에서 40%로 확대한 것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중 주거환경 평가는 주거생활의 편리성과 거주의 쾌적성 등 거주민이 느끼는 주관적인 기준을 의미한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시키고 안전진단 기준 중 주거환경 비중을 높여 주민들이 원하는 경우 모두 재건축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재건축 연한단축과 안전진단기준 변경에 따른 정책효과는 그대로 시장에 반영되었다. 1980년대 중반 준공된 목동과 상계동 지역의 대규모 단지들이 대부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요건을 만족하게 되었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만들어지면서 이들 지역의 주택가격도 크게 상승하였다. 2014년 이후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들의 안전진단은 대부분 조건부 재건축으로 허용되었다. 입주한지 30년만 지나면 소유주의 의사에 따라 재건축을 허용하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소유주가 원하면 모두 재건축을 허용하자!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에 반대하는 주장은 공급부족과 이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재건축 허용여부는 최소한 연한 기준만을 설정하고 소유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고 소유주가 원하면 모두 재건축을 허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소유주가 자신의 비용으로 재건축을 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시장원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우선 재건축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소유자가 모두 부담하는 경우는 없다.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용적률의 상향과 세대수의 증가가 수반된다. 기존 조합원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보다 많이 건설되는 주택은 일반분양을 통하여 공급된다. 조합은 전체비용 중에서 일반분양수익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부담하고 있다. 용적률 상향과 건립세대수의 증가는 주변 거주환경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늘어난 세대수가 거주하기 위한 기반시설은 공공과 주변주민들의 부담하여야 한다. 재건축조합이 부담하는 기반시설설치는 자신의 단지에 한정되어 있다. 대규모 재건축사업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다시 건축하는 것과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현행 국토계획법에서 재건축사업을 도시계획사업으로 규정하고 정비계획 수립의무와 정비기금 융자 등의 행정적지원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재건축사업이 가지고 있는 사업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용적률 상향과 건립세대 증가에 따른 인센티브는 그대로 유지하고 재산권의 자유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공동주택 재건축은 소유자가 자신의 집을 다시 건축하는 재산권의 자유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주택관리정책과 재건축사업
1970년대 공급되었던 노후공동주택의 관리정책은 기본적으로 허물고 다시 건축하는 재건축이었다. 우선 그 규모가 크지 않았고 1970년대 공급되었던 주택의 품질도 대단히 조악하여 급격히 변화된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들 단지의 재건축 허용여부는 건축물의 구조안전성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환경의 기준이 적용되었다. 이들 단지의 규모는 수용할 만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공급되었던 공동주택에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우선 노후공동주택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주택 200만호 공급계획에 따라 공급되었던 공동주택이 연간 30만호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경과되면 이들 단지는 노후불량주택으로 분류된다. 매년 30만호 이상씩 증가하는 공동주택을 모두 재건축을 통하여 관리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건축공법도 차이가 크다. 대규모로 공급된 공동주택은 15층 이상의 고층으로 공급되었고 이에 따라 건축기준도 강화되었다. 과거의 기준으로 불량주택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재건축연한 변경과 안전진단기준 변경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대량으로 공급된 공동주택의 관리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부담이다.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공동주택관리정책이 도입되었지만 그 관리 수준은 매우 취약하다. 주택은 건축물로 라이프사이클을 가지고 있어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택의 품질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공동주택의 관리를 위하여 입주시점에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입주민들이 충당하는 장기수선충담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단지별로 적립된 장기수선충당금은 실제 필요한 금액에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기수선충담금 적립비율의 최소기준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비율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정하도록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공급되었던 공동주택은 필요한 관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이들 공동주택의 노후화는 쓰나미처럼 우리사회에 밀려올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노후공동주택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재건축으로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유자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여 주택을 관리하여야 하고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하지만 정부의 재건축정책은 30년만 사용하면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공동주택 관리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미래세대에게 이월시키는 이기심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의 재건축 정책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아니라 공동주택관리정책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경축 안전진단통과
길을 가다가 “경축 안전진단 통과” 과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안전진단이 건축물의 구조안전성으로 결정될 때 이 문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구조적 결함이 생겼으니 축하해 달라는 의미가 된다. 이 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축하 받고 싶었던 것은 구조안전성이 아니라 이제 재건축이 진행되어 우리 집값이 오를 것이니 축하해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문구는 재건축사업과 안전진단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이다. 정부의 안전진단기준 강화는 왜곡된 상식을 상식으로 돌이기에도 부족하다. 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안전진단 기준만을 변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안전진단기준 강화에 대하여 재건축을 기대하고 있던 단지의 소유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다투어 안전진단을 신청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청와대에 집단 민원을 제기하거나 연합하여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 시행령 개정안의 시행에 따라 해당 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도시정비법을 개정하여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무력화하는 시도도 만들어지고 있다. 황희 (양천구 갑), 전해철(안산 상록구 갑), 박영선(구로구을)의원 등 10명이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못 받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중 구조안정성의 비중을 15%로 하향하고 입주자 만족도 항목을 신설하여 30%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재건축 허용여부는 구조안정성이 아니라 입주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구조화하고 있다.
황희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에 따르면 구조안전성 항목은 비중이 15%로 낮아져 무력화하고 주거환경과 입주자 만족도 등 주민의사에 따라 재건축 허용부를 결정된다. 이러한 개정안의 기준은 박근혜정부에서 도입되었던 안전진단 기준보다 훨씬 후퇴하게 된다. 이 개정안은 재건축 허용여부를 주거환경과 입주자 만족도라는 주관적인 기준의 비중을 높여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재건축을 허용하는 방안을 구조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의 중진의원과 서울시장후보와 경기도지사 후보가 함께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공동으로 발의한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이러한 개정안이 지역구 주민들의 어떠한 지지를 받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역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의 중요한 주택정책의 골간을 흔드는 이들 의원들은 사고와 행동은 그 자체로 포퓰리즘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