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이번 올림픽 개막 초반까지만 해도 컬링이 왜 스포츠인지 통 납득을 못했다. 단무지 같은 내 생각은 이랬다.

“봐봐. 당구 치다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이 비껴갈 때가 많잖아. 빗나갈 공에 콧김 입김 불어서 맞추면 그게 스포츠냐고. 스톤을 한번 던졌으면 그만이지, 쓸고 닦고 해서 맞추고 점수 내는 건 좀 그렇잖아?”

몇 차례 경기 중계를 보면서 생각의 짧음을 알았다. 턴(turn)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공수를 교대할 때마다 상황을 다시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두뇌 게임이 컬링이었다. 주로 공 가진 사람의 기량이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여타 구기 종목과 달리 한 팀 4인 각각이 손발과 머리가 되어 전체 분업과 협력을 통해 공격과 수비를 해나가는 무척이나 신선한 스포츠임을 깨달은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해지고, 용감하면 편견을 갖게 된다. 깊은 지식은 차치하고, 컬링 한 경기라도 온전히 지켜봤다면, 당구 어쩌고 하는 무식한 비유는 없었을 것이다. 규칙이라도 한번 찬찬히 읽어봤다면, 이미 익숙한 편견만 가지고 스포츠다 아니다 쉽게 재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주변 게임의 규칙이 변하고 있다

어디 컬링만 그러할까. 한반도 상황이 참 오묘하다.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두고 전쟁을 부추기는 대결주의자들이 벌떼처럼 요란하게 들고 일어섰다. 정작 전쟁이라도 터지면 제일 먼저 도망갈 사람들이고 대개 병역을 기피해서 총 잡는 법도 모르는 자들이다. 이런 수구 정치인들의 정략적인 행위야 코웃음으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나, 문제는 가뜩이나 안보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에서 쉬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컬링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이해하려면 컬링 규칙을 알아야 하듯이, 한국이 처한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우리 주변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한반도는 지금 북핵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전쟁 위기가 여전하다. 전통적 우방이라는 미국의 경제 통상 압력은 점점 거세진다. 중국은 사드 보복 조치를 통해서 한국의 허약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파악했다. 조금만 비위를 거슬러도 경제 보복을 다시 들먹이고 나올 것이다. 일본은 이전 시기 취약한 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외교적 잇속 다 차리고 새 정부에게는 국가간의 약속을 지키라고 으름장 놓고 있다.

영원한 적도 동맹도 없는 국제 사회에서 외교와 협상의 논리, 남북을 둘러싼 미, 중, 일, 러의 전략적 셈법을 이해한다면, 70년을 지긋지긋하게 외쳐온 반북 반공 타령만 외쳐대는 것이 우리 국민에게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을 수 있다. 이데올로기 대결 시기에 만들어진 익숙한 편견을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할 시점이다. 도대체 핵을 가진 북한과 깡패 기질 충만한 장사꾼 트럼프 사이에서 한국호는 어떤 항로를 잡아야 모두가 안전하고 해피하게 번영할 것인가.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시민사회는 스킵이자 스위퍼다

이 미묘한 시기에 각각의 진영 논리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반감 역시 함께 고조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대통령은 하나의 투구자(thrower)일 따름이다. 현재 북핵 문제, 남북한 관계, 주변 4강과의 관계는 컬링 경기로 치자면, 대통령 혼자 스톤을 정확하게 던진다고 타개할 수 있는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지지자들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조그마한 화해와 평화의 움직임에도 쌍심지 켜고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국민을 감동시킨 의성 마늘 자매 ‘팀 킴’의 컬링 경기를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한반도를 안전한 하우스로 만들고 거기에 우리가 던진 스톤을 쌓아 착실히 점수를 따려면, 시민사회 전체가 ‘안경 선배’와 같은 스킵(skip)이 되어야 한다. 정부와 관료 조직이 외부적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오로지 국익을 위한 노선을 밟아가는지 시민들이 감시하고 여론 형성에 나서야 한다.
또한 컬링 경기에서 스톤이 원하는 위치로 나아가도록 빗질을 하듯이 시민단체, 지식인, 언론인, SNS 유저 들이 저마다 스위퍼(sweeper)가 되어 전쟁 위험 부추기는 경거망동을 부지런히 쓸고 닦아내야 한다. 이런 여건이라야 대통령도 소신껏 투구를 할 수 있다.

“영미 헐~ 가즈아 팀 킴~
정말 잘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대들이 있어 이 겨울이 후끈했습니다~”

여자 컬링 경기에서 팀킴이 온 국민에게 선물한 감동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팀 킴’이 보여준 감동과 교훈을 이제 시민사회가 ‘팀 코리아’로 구현할 시점이다. 우리가 저마다 투구자, 스킵, 스위퍼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나간다면, 의성 마늘 자매들만이 아니라 코리아 자체가 맵다는 사실을 한반도 주변 4강과 지구촌 사람들은 다시금 깊이 인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