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08년 10월 인터넷을 통해 존재를 알리는가 싶더니 2011년 4월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정체를 알지 못한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사용해 일본인처럼 여겨지지만 구사하는 논리 구조에 비추어 실리콘밸리를 무대로 활동한 인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개인이 아니라 특정 그룹일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암튼 그는 정체불명의 인물이다.
투자회사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인 2008년 10월 31일 오후 2시 10분(미국 동부 시간) 수 백 명의 공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에게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문제의 메일 발송자 이름이었다.
나카모토는 메일에 첨부한 9장짜리 논문에서 조작이 불가능하고 개인 정보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거래의 투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획기적인 화폐 시스템과 이를 구현할 기술 방안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화폐 이름은 ‘비트코인’. 정보 저장 단위인 ‘비트’와 동전을 뜻하는 ‘코인’을 합친 것이었다. 전 세계를 광풍 속에 몰아넣은 가상 화폐 대표주자 비트코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제안한 취지는 소수 금융기관의 독점 지배로부터 탈피해 개인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구축하자는데 있었다. 대단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기존 금융기관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는 판단이 깊이 작용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나카모토가 애초 구상했던 화폐 시스템과는 사뭇 다르게 흘러갔다. 가상화폐는 투자 광풍을 불러일으키면서 총 가치 규모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투자 광풍은 투기 수요를 폭발시켰고, 자금 세탁용으로 악용되기까지 했다. 사태는 각국 정부가 다투어 규제에 나서면서 가격 대폭락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나카모토가 혁신적 구상을 하면서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왔듯이 인간의 탐욕이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애초 취지는 광산 노동자들의 굴착 작업을 용이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곧바로 살상용 전쟁 무기로 전용되었다. 노벨은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결국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벌어들은 재산을 모두 기부한 뒤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을 시상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노벨상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 어떤 발명품도 인간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 발명자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만다. 발명품의 성격이나 기능은 발명자가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 좌우된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최종 결정되는 것이다.
발명품에는 정치 제도나 사회 경제 모델도 포함될 수 있다. 이 역시도 기능을 결정하는 건 사용자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대통령 직선제라는 정치 제도가 있다. 똑같은 직선제였는데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장기 독재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반면 1987년 이후에는 민주화의 상징적 제도처럼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이 때 가장 중시해야할 사항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할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인민들이 공동 소유, 공동 생산, 공동 생활을 바탕으로 완벽한 공산주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인민공사라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마오쩌둥은 인민공사를 바탕으로 낙후된 중국이 단기간 안에 영국과 미국을 추월해 선진 공산주의 사회로 직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인민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인민들은 자기 땅에서 농사지으면서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생활하는 것을 갈구했다. 인민은 무기력해지다 못해 냉담해졌다. 인민공사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사회적 경제가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대안적 측면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사회적 경제가 경제 전반을 바꾸는 일반적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를 흔히 착한 경제로 부르기도 한다. 개인의 이윤 추구보다 사회 공동의 이익을 우선하는 착한 심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사회 절대다수가 그런 착한 심성을 가질 수 있을까?
대안적 실험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그릇된 환상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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