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노동, 주거, 부채 등 다양한 영역의 청년정책을 보며 이들이 청년들의 삶의 기반을 조성하기보다 성과를 보상하는 데 집중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취업지원정책인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는 구직활동을 단계별로 나눠 각 단계를 이수할 경우에만 수당을 지급한다. 대표적인 주거지원정책인 행복주택의 경우, 현재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초기에는 취업한 자와 결혼한 자만 입주신청이 가능했다. 청년들의 부채문제에서 시작한 서울시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최근 1년간 6개월 이상 근로한 자 또는 재직 중인 자만 신청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위 정책은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청년들이나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여 묻지마 취업을 하는 청년들이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단계별로 나눠 구직활동을 할 여유는 없을 것이며, 당장 안정적인 주거지가 필요한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에 거주하는 청년에게 ‘행복주택’ 지원자격을 위하여 직장과 결혼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일자리와 저축된 돈이 없어 고금리 대출을 받는 청년에게 직장자격을 요구하는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희망고문 통장일 것이다. 이처럼 청년정책은 성과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어떤 청년에게는 지원조차 쉽지 않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면에 있다.
바로 사회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지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질 때, 이들 청년들은 사회를 신뢰하지 않고 연결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청년문제 상당 부분은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컨대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보장이 없고, 소득이 낮아 아무리 저축해봤자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는 대도시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년 개인 차원에서는 아예 노력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청년정책이 존재하는 것인데 기존의 청년정책은 삶의 기반이 열악한 청년들과 사회의 연결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패러다임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기점이 서울시 청년수당이다. 청년수당은 기존 청년정책과 다르게 성과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목적을 두며, 지원자격에 특별한 조건을 달지 않는다. 서울에 거주 중인 만 19~29세 의 ‘구직활동 및 사회참여’의지가 있는 미취업 청년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지시로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을 조직적으로 반대했고, 올해도 일부 언론에서 청년수당이 유흥비로 사용될 수 있다며 비판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수당의 사용처가 아니다. 삶의 기반이 취약한 청년이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득일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이다. 즉, 노력을 기울였을 때 적절한 보상이 예상되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 청년들이 사회를 신뢰하고 자신을 연결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청년정책은 보상이 목적일까, 기반조성이 목적일까, 헷갈릴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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