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역적>)의 등장은 꽤 고무적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명 ‘사이다’ 드라마로 소개하면서 속 시원한 사극으로 호평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사극 장르는 일찍부터 한류를 일으켰던 <대장금>을 비롯하여, <뿌리깊은나무>, <육룡이나르샤>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방영되며 오랫동안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그러하듯이 역사는 언제나 임금과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왔고,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종종 선/악 구도를 넘어서지 못 했다. 드라마 <역적>의 등장이 고무적인 이유는 바로 왕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민중 중심의 삶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 드라마 <추노> 이후 오랜만이다.
드라마 <역적>은 노비 아모개(김상중 역)의 아들로 ‘아기장수’의 힘을 갖고 태어난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 역)은 방물장수이자 왈패로 생활을 하면서 만난 민중의 고난을 목도하고 임금과 결전하는 의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홍길동은 가족, 왈패 패거리를 넘어 민중까지 구하기 위해 고난을 불사하며 의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27회에서는 향주목 전투가 다뤄졌다. 연산군(김지석 역)은 자신의 폭정을 비판하는 ‘향주(香州)’ 고을 백성들을 반역집단으로 몰고, 관군을 보내 무참하게 살해한다. 향주를 향한 대규모 탄압에 맞서 홍길동과 향주 사람들은 백성을 죽이는 군관은 필요 없다고 선언하며 관군과 싸운다. 연산군은 ‘향주’로 가는 모든 길목을 봉쇄하고 향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을 밖으로 전달하지 못 하도록 철저히 입막음을 시킨다. 또한 약탈과 방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반란의 고을로 소문을 내도록 한다. 오늘로 치면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마을을 지키는 관군 한명 없이도 향주는 부족한 물자를 서로 균등하게 나누고 범죄 한번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자율적으로 사회를 만들어갔던 셈이다.
‘향주’라는 가상의 지역을 보면서 ‘광주’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세력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했다. 공수부대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참하게 탄압하였다. 그리고 광주시민들을 의도적으로 더 잔혹하게 탄압하여 폭력을 전시했다. 이에 분개한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하여 군부대에 저항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군대가 광주시청을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10일 간의 격렬한 항전이 지속되었다. 그동안 광주는 봉쇄되었고, 언론은 통제되었다. 나아가 언론은 광주를 ‘폭도들’의 무법지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고립된 지역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광주 혹은 향주’에서 우리는 단절– 고립– 해방의 고리를 발견 할 수 있다. 우선,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부에 의해 형성된 타의적 고립은 오히려 내부적으로 공동체로서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군부와 연산군의 봉쇄와 탄압이 광주와 향주의 시민들을 스스로 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는 핍박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며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 항쟁의 승리는 외부와의 연계를 통한 고립의 해방을 맞이해야 완성된다는 점이다.
광주와 향주는 폭군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연대의 움직임이자, 외부와 단절, 소외로부터 살아남고자 했던 투쟁의 현장이다. ‘향주’는 오늘날 도처에 있다. 이제 막 열린 ‘광화문 대통령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향주’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향주를 고립으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대통령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 평화를 기억하고, 폭력의 상흔을 애도하는 일을 통해 시민 모두가 해방의 주체로 참여 할 수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