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 여당과 여기에 반대하는 국민들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 이 전쟁은 나날이 확전 일로에 있다. 새누리당 수뇌부에서는 교사 지침서와 참고서로까지 전선을 확대시키고 있다. 전쟁은 새로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 2017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도대체 이 전쟁은 왜 시작된 것일까? 누가 무슨 의도로 이 전쟁에 불을 붙인 것일까? 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8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단일 국사교과서’ 박대통령이 결정했다”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최고 통치자의 의중이 강력히 반영된 것임을 입증한다. <한겨레> 등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의 친일 독재 전력을 미화하려는 의도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해 왔다. 유신독재에 항거했던 1970년대 민주화운동 출신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본능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각일 수도 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만으로 이처럼 엄청난 전쟁을 감행한 것일까? 친박․비박으로 갈려져 있는 새누리당 수뇌부가 역사 교과서 전쟁에 대해서만큼은 일치단결해 있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지난 2012년 4월 총선 때의 일이다. 총선을 앞둔 몇 달 전만 해도 대부분의 분위기는 야당이 이긴다는 쪽이었다. 심지어는 여당 안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죽을 쓰는 바람에 여당 심판론이 널리 확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두고 한미FTA 국회 비준이 이루어졌고, 제주 해군기지 공사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구럼비 바위 폭파가 강행되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두 가지 조치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별 인기 없는 일을 강행하는 정부의 처사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즈음 서울 모처에서 원로 선생님 두 분을 뵌 적이 있었다. 두 분 모두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씀드렸다.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야당이 질 것입니다.” 두 분 선생님은 몹시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총선 결과는 나의 예상대로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여당의 총선을 지휘했던 인물은 당 대표를 맡고 있었던 박근혜였다. 세상은 박근혜를 향해 선거 여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도대체 박근혜는 무슨 재주로 지극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그간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박근혜의 정치를 지배해 온 것은 철저한 좌우 구도 형성이었다. 박근혜 입장에서 볼 때 좌우 대결 구도는 필승 구도였다. 좌우 구도 안에서 기득권 세력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본색을 감출 수 있다. 나아가 우파가 안정적인 다수를 점할 수 있다. 보수 성향의 영남 지역과 역시 보수 성향이 짙은 50~60대가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가 좌우 대결 구도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던 이슈는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건설이었다. 두 개의 이슈는 매우 정확하게도 한국 사회를 좌우 두 세력으로 갈라놓았다. 2012년 정부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한미FTA 국회 비준과 제주 해군기자 구럼비 바위 폭파를 강행한 것은 좌우 대결 구도를 재생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자연스럽게 총선은 그 같은 좌우 대결 구도 안에서 치러졌고 결과는 박근혜가 의도한 대로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의 여당은 오랫동안 권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야당 신세로 내몰리면서 권력을 빼앗기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오랫동안 야당 생활을 하면서 권력 없이 사는데 익숙한 지금의 야당과는 체질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여당은 권력 획득에 대한 절실함에서 야당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여당 입장에서 볼 때 향후 전망은 심히 어둡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지표로 드러난 경제 성적이 그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못하다. 통상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고 믿고 표를 몰아 준 국민들 입장에서 여간 실망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선 주자들의 경쟁력을 놓고 보더라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김무성인데 보수 언론에서조차 정치인 김무성은 보이는데 정치 지도자 김무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과연 이러한 조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 좌우 대결 구도를 재현시키는 것 말고 달리 길이 있을까? 관찰자 입자에서 볼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좌우 이념 대결을 부추기는 최상의 수단일 수 있다. 이 점은 여당 수뇌부의 발언이나 <조선일보> 등의 기사 내용을 통해 비교적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10월 8일자 <조선일보>는 역사 교과서 현대사 필진 36명 중 31명이 좌파 성향이라며 우파의 분발을 촉구하는 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새누리당 수뇌부는 우익 교과서를 만들자면 노골적으로 우익의 총궐기를 선동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수뇌부가 의도한대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좌우 이념 대결로 치닫는다면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매우 유리한 환경에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일 가능성도 매우 크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수뇌부를 자신들이 판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둘러싼 반응은 한미FTA와는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민주주의의 본성인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성을 추구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보수적 역사학자들조차도 광범위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보수 성향의 매체인면서도 <중앙일보>가 강력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내가 확연해지겠지만 작금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다분히 ‘대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좌우 이념 대결의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엄중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대립을 다양성 대 획일성,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서 합리적 보수층까지를 결집한다면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의 전진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보는 관점에서 역사적 시각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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