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틈타, 편법적 군 면제 의혹과 공안검사경력, 종교편향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상식적인 청문회 과정을 통해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에 임명했다. 황교안 총리의 첫걸음은 세월호 4.16대책위를 압수수색하는 등의 ‘공안 통치’였다. 이는 현 정부가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위기일수록 꼼꼼하게 비정상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공적 연금 개선을 전제로 한 공무원 연금 개정안이 5월 29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2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공무원연금 개정 추진을 선언했던 2014년 2월 이후 15개월만에, 아니 2007년 국민연금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축소 일변도의 공적 연금 개편이 추진된 이후 8년 만에, 공적연금의 강화를 위한 구체적 논의 테이블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통과된 공무원 연금 개편안에 대한 정당성, 국민연금 강화를 사회적 기구에서 추후 논의하기로 하는 등 핵심 쟁점과 팽팽한 입장 차이는 여전히 남아있다.
공무원연금과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 개선에는 매우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 전반과 공무원 연금을 연동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개정은 공무원 연금의 과도한 특혜 구조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의 청와대에서부터,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노동자 권리를 내팽개친 타협이라는 공무원 노조의 입장, 그리고 연금문제는 ‘세대 간 정의’라는 입장에 입각해서 풀어야한다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실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편 이 글에서는 공무원 연금과 공적 노후소득보장은 같이 풀어야 하며, 이번 개정안은 명백한 한계점이 있긴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진일보’한 결정이라는 전제하에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공적연금 연계에 끝까지 반대한 청와대
그림1. 박근혜 정부 공무원 연금 개정안 처리 과정
공무원 연금 개정은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특수직역연금과 공적연금(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을 함께 연계해서 공적 노후소득보장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최초의 합의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는 하나, 개혁의 첫발을 떼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입장은 일관된 “공적연금 연계 반대”이다. 최초 여야합의안이 나왔을 때부터 강한 어조로 비판을 했고 이후 지속적 압박을 통해 “공무원연금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해야 하고, 공무원 연금과 공적연금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통과된 공무원 개정안의 핵심 내용
5월 29일 새벽 3시에 극적으로 타결된 공무원 연금 개정안의 핵심은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개혁과 공적연금 강화를 연동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무원들이 매달 내는 보험료인 기여율을 2020년까지 7% → 9%로 높이고,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을 결정하는 지급률을 2035년까지 1.9% → 1.7%까지 낮추는 대신,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망라한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안을 추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물론 5월 1일 여야합의안의 핵심내용이었던 ‘소득 대체율 50%와 재정 감축분 20%’ 결정은 청와대와 여당의 거부로 인해 “이후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공무원 연금 개정의 역사
공무원연금은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한국의 공적연금은 연금을 내고 받는 주체인 국민의 손이 아닌, 정부의 입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바뀌어왔다.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특수직역은 공공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된 공무를 수행하는 직종이고, 해당 직종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 책임을 제대로 지는 대신에, 공무담당자들을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공적 업무를 담당하계끔 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수직역연금, 즉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도입했다. 국가를 유지하는 기반 업무를 담당하는 직종을 정부에 순응하는 집단으로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였다. 이를 위해, 해당시기의 정부 지출이 아닌 미래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공무담당자의 처우를 해결해왔고, 당연히 누려야 할 노동자 권리, 업무 중 받아야 할 보상을 포기하고 20년 이상 장기근속을 해야만 퇴직 후 연금으로 보상 받을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근무 중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최소화시키고, 근속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소위 충성심을 발휘해야 하는) 노동조건을 만든 것이다.
그러던 공무원 연금(특수직연금)은 민간부분의 임금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정체상태에 빠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민간부분 임금은 일부 고소득연봉자를 제외하고는 조기 퇴직 등 구조조정 단행, 구조조정된 일자리를 비정규직 채용과 노동시간을 늘려 총 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계속 축소되어 갔다. 공무원 연금의 구조는 근무시기의 낮은 임금을 장기근속 후 연금으로 보전해줬던 것인데, 민간영역의 근무기간 중 임금이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자 퇴직 후 받을 수 있는 연금의 가치가 상승한 것(가치상승요인 1)이다. 또, 초기 특수직역연금을 설계했을 당시에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늘어난 은퇴 후 생존기간 역시 퇴직 이후 연금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가치상승요인 2)이 되었다. 여기에 고령사회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성숙시기에 도달하기도 전에 퇴보일변도의 길을 갔지만 공무원연금은 일찍 성숙해서 지급자가 많은 상황이 도래한 것(가치상승요인 3)도 공무원연금이 특혜로 비춰질 정도가 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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