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빈곤과 자살, 특히 노인의 문제는 더 이상 놀라운 소식이 되지 못한다. 세계에서 한국의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49.6%로 2위인 호주(33.5%), 3위 멕시코(31.2%), 4위 이스라엘(24.1%) 등에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빈곤한 노인의 비참한 현실에서 노후는 국가가 아닌 개인 스스로가 챙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잉태된다. 이는 아이들의 사교육에 올인하는 경쟁사회의 배경이 되는 동시에, 돈을 틀어쥐고 소비를 하지 않아 내수가 활성화되지 못하게 하는 경제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 부동산 문제의 배경 역시 노후 불안에 있다. 사회를 믿지 못하게 되니 집 한채에 전 인생을 걸게 되었던 것이다. 빈곤층이 아프기까지한다면 더더욱 큰 문제다. 소득이 낮은 가정에서 부모가 아프게 되면 그야말로 일가족 전체가 가족 해체와 같은 극단적 선택의 상황에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 문제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취급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편과정에서 어렵사리 올라온 공적연금 강화 이야기는 세대간의 착취, 공무원연금에서 공적연금을 다루는 것은 월권이라는 정부의 비난에 갈 곳을 잃었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노인 빈곤과 공적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공적연금의 기본 구조

노인이 되면 소득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본인 스스로가 모으거나, 자식이, 혹은 정부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정부가 주는 방식에는 현재 걷힌 세금으로 주는 방식(부과식)과 노인들이 돈을 벌던 젊은 시기 낸 연금보험료로 주는 방식(적립식)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나, 부모 부양을 개인이 온전히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가 십시일반 같이 모아서 대비해야 하고, 그 대비를 대표하는 주체가 정부일 뿐이다. 세대별로 인구규모와 경제사정이 같지 않다보니 낸 연금료로만 지급하는 나라는 없고, 현재 세금이 큰 몫을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노인이 과거에 모았던 연금과 현 세대가 미래를 위해 모으는 돈이 현 노인 소득보장의 기본 바탕이다. 이것이 공적 연금제도의 기본 구조이다.

또한 총액이 현재 노인들을 비참한 수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래서 최소한 자살이나 비인간적 삶을 강제하지는 않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이를 연금의 소득대체율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은 07년 개악으로 40%의 소득대체율을 공식 표방한다. 하지만, 이는 40년 연금을 넣은 사람 기준으로 25년 평균 가입기간(우리나라 정규직 평균 근속년)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5%대로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겠다고 도입한 기초연금은 10%를 준다. 다시말해, 정규직으로 25년이상 국민연금을 꾸준하게 넣은 사람이 은퇴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 35%를 넘기 힘들다.(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국민연금을 온전하게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깎도록 설계되어, 사실상 35%가 되지 못한다. 참으로 꼼꼼하지 않은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49.7%에 불과하고 20년 이상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다. 나머지는 기초연금 10%만 받을 수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평균 소득은 200만원, 최대 35%라고 해봐야 70만원, 절반이 넘는 노인은 20만원이 최대치인 셈이다.

공적연금의 핵심은 신뢰

문제는 단순하다. 원래 인간은 미래를 스스로 준비하기 어렵다. 미래 대비보다는 현재에 비중을 두는 심리적 요인도 있고, 노동기간보다 길게 생존하게 된 인구학적 원인도 있고, 노동시기 충분한 소득을 올리지 못해 미래대비가 어려운 사회경제적 원인도 있다. 그래서 선진국가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강제적 형태의 저축,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한다.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이 강제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소득이 적은 취약계층을 대신해 고소득층과 기업이 더 많이 내는 장치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고령화-저출산-저성장 문제가 섞이면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저축금을 넣을 젊은 세대보다 돈을 타갈 노인인구가 느는 데다가, 저성장과 불평등의 여파로 저금을 할 수 있는 돈도 부족해진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강제 저축액을 더 늘리고, 타가는 돈을 좀 더 줄이는 연금개혁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 구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뢰이다. 저금을 강제하는 국가가 가져간 돈을 제대로 관리해서 내가 늙었을 때 돈을 줄 것이라는 신뢰, 내가 지금 내는 돈으로 지금 노인들에게 돈을 주는 것처럼, 내가 늙으면 그때의 젊은 세대가 나를 위해 저금을 해 줄 것이라는 신뢰, 사회에서 더 많은 혜택을 보는 부유층이 더 많은 기여를 한다는 신뢰가 절대적이다. 지금 당장의 소비를 미루고 소득의 10%에 달하는 강제저축을 하는데, 돈을 가져가는 정부를 못 믿는다면 공적연금은 성장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신뢰는 복지제도의 필수조건이다. 정부가 내 돈을 가져갈 수 있는 배경에는 그 돈으로 내가 잘 살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고 교육과 의료를 제공하며 어려워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한국 공적연금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져간 돈은 투기나 재벌 투자자금으로 흘러가고 있고, 경제가 요동을 치면 수익률이 확 깎인다. 내가 버는 돈으로는 지금 생활하기에도 벅찬데, 엄청나게 많이 버는 고소득층이나 내 노동력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대기업이 부담하는 돈은 적다. 결정적인 것은 국민연금 깡통론이다. 이렇게 열심히 내도 나이많은 노인들 부양에 다 쓰고, 내 후세대들은 우리처럼 돈을 낼 수 없어 내가 받을 돈은 없어진다는 신화(myth)이다. 이런 잘못된 신화는 정부의,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각자도생과 상호 협력의 사이, 공적연금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신뢰가 떨어진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선택한 방식은 각자도생이다. 정부에게 강제로 저축당하느니, 내가 알아서 미래를 대비하겠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할테니 강제로 돈을 뺏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는 연금을 낼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각자도생의 결과는 처참하다.

공적연금 강화 주장은 보험료폭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맥을 못추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인문제는 모순투성이다. 노인빈곤을 걱정하는 그 입으로 복지파탄과 세대간 정의를 이야기한다. “노인빈곤은 심각하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 고령화는 오지 않았다. 지금 노인지출의 총량은 가만히 있어도 는다. 지금보다 더 늘면 나라가 망한다. 노인 복지는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핵심 논리이다. 그 말은 노인 전체 지출은 어쩔수 없이 늘지만 노인 개인당 지출은 조정하자는 말이고, 노인빈곤율은 더 심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악용하는 논리가 세대간 정의인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의 신뢰를 떨어트린다는 점이다. 지금도 청년층은 노인들을 불편하게 대하고, 노인층은 청년들을 한심해한다.

하지만 노인과 청년문제, 복지와 고령화는 충돌하는 대체관계가 아니다. 노인에게는 복지가 필요하고,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노인에게 안정적 복지가 제공되어야 청년들이 안심하고 현재를 살 수 있다. 문제를 뒤집어 생각해보자. 공적연금의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가 노인을 위해 얼마만큼의 지출을 할 수 있느냐로 접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 세대의 소득이 올라가야 한다. 세금을 더 내야하는 주체와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주체가 동일하다. 다름 아닌 기업과 고소득층이다. 세대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내 문제이다. 부자노인과 가난한 노인, 부자기업과 가난한 노동자의 문제인 것이다. 핵심원인을 빼고 이야기를 하니 세대간정의, 연금깡통론, 보험료폭탄 등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다. 신뢰의 출발은 정당한 부담이고, 고소득층과 기업이 부담하지 않는 몫을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것만이 연금신뢰정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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