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지긋지긋하다.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이제 경제도 생각해야지?’
2015년 4월 16일, 내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대신하여 위와 같은 말이 중심부로 올라오고,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 또한 그와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산이나 교외에서 계절의 향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을 뚫고 나오는 새순마저 그냥 먹을 수 있는 이 좋은 계절에, 마치 죄인처럼 처절한 ‘순애보’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수 없어서 죽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심장이 뜯겨나가도, 생떼 같은 아이들의 죽음이 못난 애비, 애미 탓인 것만 같아 그저 오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걷고, 절하고, 굶고, 울어 봐도 풀릴 길 없는 슬픔과 한스러움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쉽게 잊고 살아가지만,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덜너덜한 가슴을 안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304명의 꽃과도 같은 목숨들이 허무하게 사라진 이유를 밝히고자 함에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단 말입니까? 누구보다 앞장서서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에 힘쓰는 것이 정부의 도리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는 임기 안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후속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응당 그리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온 국민의 목소리에 부응만 했더라도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정부는 유가족의 특별법 제정 요구도 끝내 묵살해 버렸고, 대신하여 ‘대통령 시행령’이라고 하는 시나리오를 내세웠습니다. 피해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아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세월호 참사는 ‘정치’의 부재와 책임 있는 지배 권력의 붕괴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직과 권력은 사직(私織)이 되었으며, 국민들은 장기판의 ‘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머리 아닌 가슴으로 울었던 정치인과 공직자가 몇이나 될는지요?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멸시와 오해를 받으면서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은 사람들은 유가족과 국민들뿐이었습니다. 국민과 유가족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어야 했을 정부 및 권력층은 오히려 선동과 거짓을 앞세워 진실을 외치는 자들을 고립된 섬으로 몰아갔습니다.
정부와 권력은 파렴치하게도 국민을 두려움으로 떨게 만들 또 하나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통령령으로 발표된 시행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했던 것을 조사권만 인정하는 특별위원회를 ‘마지못해’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이 특별위원회가 결국에는 정부의 자체적 분석 및 조사에만 국한하여 활동하는 ‘조사위원회’로 탈바꿈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국민을 농단하고 국정을 파행으로 몰아가는 가해자가 권력 및 공직자들인데도 그들이 직접 조사와 분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적반하장이며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 반성하고 대오각성 해야 할 때입니다. 유가족들은 지금 심장이 뜯겨져 나가는 아픔과 권력 없는 부모 때문에 자식을 잃었다는 회한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찬 도시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그 죽음의 대가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가 아무 연락 없이 늦게 들어오지 않으면 입이 마르고 가슴이 두근거린 경험들, 부모라면 한 번쯤 다 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내 아이의 죽음 앞에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부모란 본디 그런 것입니다. 모두들 부모의 심정으로 유가족을 바라보고, 정부와 권력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인양을, 시행령 개선이 아닌 폐기를 말입니다.
정부와 권력은 국민들을 세 번 죽였습니다. 차가운 맹골수로에 빠뜨린 것이 첫째,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조사권만 부여한 세월호 조사위원회가 둘째, 대통령 시행령으로 유가족의 목줄을 쥐려 한 것이 셋째입니다. 세 번을 죽여도, 아니 삼백 번을 거듭 죽여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권력이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이 나라가 무지하고 무능한 세력에게 맡겨질 경우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음에도 자기 곳간을 지키느라고 혈안이 된 모습이 이젠 평상의 모습처럼 익숙합니다. 한 사기업 회장의 유서에서 밝혀진 권력형 비리가 한국사회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하고, 유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오열하고, 권력자들은 바벨탑을 쌓느라 죽어갑니다.
4월 16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권력과 금력이 부패의 쇠사슬을 끼고 있는 한, 제2의 4.16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야만 합니다. 광장에서 외치고 자판을 두드려야 합니다.
1년 동안 정부와 권력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잊기만을 강요했습니다. 자기들의 치부를 벌거숭이 임금처럼 가리기만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304명의 마음도 어르지 못하는 권력은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윽박지르고 목을 죄어 온다고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이 일어나면 정부와 권력을 출렁이게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출렁인 물은 큰 파도를 만들고, 종국에 가서는 새로운 변혁의 틀을 만들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늘 함께 하겠습니다.
2015.4.15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정경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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