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집단 자위권과 TPP(환태평양 협력협정)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동아시아가 또 격랑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7월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내각에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결정, 즉 ‘해석 개헌’을 단행했기 때문이죠. 이는 일본이 패전 후 69년 동안 지켜온 ‘전수방위 원칙'(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고 외국의 무력 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상 ‘해석 개헌'(일본의 참전을 금지한 현행 ‘평화 헌법’의 재해석을 통한 사실상의 개헌)을 통해 ‘금단의 선’을 넘었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 정부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군사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거죠. 문제는 미국이 쌍수를 들어 환영을 표했다는 점입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1일(현지시각) 별도 성명까지 내어 “집단 자위권과 관련한 일본의 새로운 정책을 환영한다”며 “이는 일본 자위대의 보다 광범위한 작전 참가를 가능하게 하고 미·일 동맹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전향적인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며 “미·일 동맹의 성숙함을 보여주고 추가 협력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죠.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전략과 일본의 ‘집단 자위권’이 만난 겁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미국으로선 일본이야말로 대신 돈 내주겠다는 든든한 ‘동맹’인 셈입니다.[관련 기사] (☞ 미 국방 “일 자위권 정책 미·일 동맹 효율화” 환영)
그런데 미국이 얻은 것은 과연 이뿐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미국이 얻을 가장 큰 과실은 TPP 체결입니다. 그동안 미국의 대(代) 통상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이 배제된 지역협정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지역협정, 즉 중국이 제안한 ASEAN+3(한·중·일), 일본이 제안한 ASEAN+6에 반대하고, 대신 2006년에 당시 부시 대통령 FTAAP(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를 제안했죠. 물론 이 제안은 당시로선 맞불의 성격이었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평양 연안의 작은 나라들의 통상협정이었던 TPP(초기에는 P4로 불리는 칠레·브루나이·싱가포르·뉴질랜드가 추진)에 2008년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TPP는 FTAAP로 이행하는 통로로 인식됩니다. 이 협상이 결정적인 추동력을 얻은 것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 이어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하면서부터입니다. 이제 한국과 중국도 마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거죠. 농업이나 서비스업계의 반대로 아시아 FTA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전격적으로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엔 두 가지 동력이 작용했습니다. 첫 번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귀환’ 선언이고, 두 번째는 중국의 외교군사적 오류였습니다. 중국은 2010년 들면서 베트남·일본·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연이어서 영토 분쟁을 일으킵니다. 2008년 이후 과거의 외교전략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몸을 낮추고 실력을 기른다)를 완전히 던져버린 중국의 패권주의에 위협을 느낀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으로 달려갔죠. 일본만 끌어들이면 미국의 경제적 ‘대중봉쇄(또는 중국의 편입)’은 성공 일보 직전까지 온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개혁의 세 번째 화살로 ‘개방과 자유화’를 들고 나온 겁니다. 이번 집단 자위권 행사 결정, 그리고 미국의 도를 넘어선 환영이 TPP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미국의 TPP는 한미 FTA의 ‘황금 표준’을 넘어선 ‘플래티넘 표준’으로 알려져 아시아 국가들이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 분야가 더 강화된 협정을 의미하니까요. 문제의 투자자국가제소권도 더 강한 형태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플래티넘 표준’이 관철되지 않은 채 미국의 제조업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미국 의회 또한 비준을 하지 않겠다고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이 협상은 앞으로도 난항을 거듭할 겁니다. TPP와 한중 FTA, 그리고 우리의 전략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번 시진핑의 방한에서 한중 FTA가 급진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중국의 외교 전략, 특히 FTA 전략은 실용주의, 점진주의, 다양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FTA에서 ‘조기 성과 프로그램'(Early Harvest Program, EHP)’을 설정합니다.
즉, 양국이 즉각 이익을 볼 수 있는 분야부터 먼저 협약을 체결하고 이후 새로운 이슈나 갈등 이슈로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죠. 이런 전략으로 인해 중국의 FTA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홍콩이나 마카오 등 중국 체제 내에 있는 국가에 대해선 일방적으로 개방했고 싱가포르 등 선진경제권이 FTA를 요구한 경우에는 미래의 최혜국대우(MFN). 투자자국가제소권(ISD), 지적재산권 분야가 포함된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에는 미국식 FTA의 일부가 포함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이나 일본처럼 경제규모가 큰 나라에도 싱가포르 방식을 적용할지는 의문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동맹으로서 군사적·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한국이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 부문의 강한 개방과 독조조항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중국의 제조업과 한국의 농업을 동시에 보호하는 FTA에 합의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나아가서 미국식 FTA, TPP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홍콩, 마카오와 맺은 FTA처럼 상대 국가의 시장 공략보다 각국 국민의 이익이 되는 협력 프로그램 위주로 틀을 짜야 한다고 중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실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죠. 우선 현재의 FTA 의제 외에 동아시아 공동의 금융과 거시정책, 역내 수요 확대 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통화협력, 에너지-환경-식량 협력, IT 협력, 철도-가스파이프 협력 등 다양한 동아시아 협력 의제를 중국·북한·아세안·일본 등에 제시해 포괄적인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물론 각국은 이 구상이 구체화함에 따라 FTA를 개정하거나 폐기하여야 하겠죠. 특히 한국이 중국, 일본과 동일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한·중 FTA / 한·중·일 FTA는 이런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현재 각국의 외교부나 경제부처들이 자연스럽게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지나치게 시장만능의 사고에 물들어 있고, 중국 정부는 미국을 견제한다는 명복으로 패권을 지향하고 있죠.
결국은 세 나라의 시민사회가 나서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는 협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겠죠. 국회와 시민사회는 장기적 전망에서 과연 현재 박근혜 정부의 외교통상전략 전체가 과연 올바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한·중 FTA 협상, 한·중·일 FTA 협상, 또는 TPP 참여는 외교안보전략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 전략이 국회에서 수립되고 국민들의 동의를 얻은 뒤 추진하는 것이 옳습니다. 시민사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의 지식인(시민단체) 그룹과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겁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 정부, 나아가서 일본 정부에 공통의 압력을 가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가 군사적·경제적 분쟁의 장으로 갈 가능성이 너무나 높아졌습니다. 우리가 무능한 정부를 뽑았으니,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은 한층 무거워졌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0%니까요.*본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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