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할 수 없는 과정으로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생사의 기로에서 절규하는 아이들을 버려둔 채 해경과 해군, 정부관료들은 마치 불구경 나온 행인마냥 사고를 뒷짐지고 구경하기 바빴다. 세월호 사건은 SNS와 동영상을 통해 사실관계가 상당부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사고와 구조의 충격적인 실상을 본 국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다. 단 한 놈도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외치고 있다.

정부는 사건발생 45일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세월호가 언제, 왜, 어떻게 침몰하였는지 확실한 대답이 없다. 그나마 검경합동수사본부는 5월 15일, 68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세월호가 단지 방향을 바꾸다가 짐이 기울어 저절로 침몰하였을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견해를 피력했다. 구조를 방기하던 해경만큼이나 무책임하고 납득할 수 없는 분석이다.

1) 급변침으로 침몰했다는 합동수사본부

5월 15일,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복원력이 저하된 세월호를 급변침시키다가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침몰의 결정적 원인이 급속한 변침이라는 것이다. 맹골수도는 조류가 강해 타를 5도 이상 돌리지 않아야 하는데도 조타수 조씨가 15도 이상으로 세월호를 급변침했다는 것이다. 다만 <연합뉴스>는 조타수 조씨가 조작 미숙에 따른 급변침은 인정하지만 급변침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진술을 번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였다.

합수부는 이와 더불어 세월호가 “사고가 예고된” 위험한 선박이었다고 주장한다. 세월호는 무리한 증축과 과적, 평형수 미비, 화물결박 미비 등 사고위험이 다분했다는 것이다.

첫째, 무리한 증축으로 세월호의 높이를 올렸다는 것이다. 20년된 노후 선박인 세월호는 2년 전 증축되면서 정원이 804명에서 921명으로, 무게는 6586톤에서 6825톤으로 239톤이 늘었다는 것이다. 둘째, 무리한 과적에 화물을 단단히 결박하지 않아서 화물이 쏠려 세월호의 좌우균형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4월 15일 인천에서 출항 당시 최대 화물적재량인 1077톤의 두 배가 넘는 2142톤을 과적했고 합수부는 여기에 화물 고정장치도 규정을 위반한 채 허술하게 설치하였다고 밝혔다. 셋째, 그 과정에서도 세월호의 홀수선을 맞추기 위해 배 바닥부분에 평형유지를 위해 채워야 할 평형수를 빼버려서 배의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과적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선박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기준적재량 보다 1308톤을 감축했다. 넷째, 세월호의 왼쪽 스테빌라이저가 작동되지 않아서 세월호가 변침시 배의 균형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합수부는 결국, 뒤뚱거리던 배가 운전실수로 침몰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부가 복구하였다고 주장하는 세월호의 항적기록에 의하면 세월호에는 급변침 구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합수부와 정부가 손발이 맞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2) 급변침이 없었던 세월호

4월 21일, 정부가 복구하였다고 발표한 세월호 항적기록에는 애당초 급변침이 없었다.




<아시아경제>는 4월 21일, 해양수산부가 여객선 세월호의 자동식별장치(AIS) 기록을 복구, 정밀 분석한 결과 기존에 알려졌던 급선회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였다. 사고 초기, 세월호의 항적은 오전 8시48분37초 시점부터 3분 36초간 끊겨 있어서 오른쪽으로 약 100도 이상의 급격한 변침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해수부는 4월 21일, 중앙해양심판원이 기존 세월호 항적도 중 3분36초간 유실된 기록을 복원한 결과, 세월호는 직각으로 꺾여 내려간 것이 아니라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갔다고 밝혔다.

중앙해양심판원이 세월호의 항적기록을 복구한 것이 4월 21일이고, 합수부가 세월호 사건원인을 피력한 것은 5월 15일이다. 합수부는 당연히 복구된 세월호의 항적기록에 의거해서 사건을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항적기록에는 급변침이 없다. 합수부는 왜 급변침으로 침몰했다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복구하였다는 항적기록에도 의심의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다. 중앙해양심판원이 세월호의 AIS 기록을 어떤 방법으로 복구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복구자료에 따르면 48분37초에 AIS 항적기록이 꺼진 다음, 36초 뒤엔 49분13초부터 다시 항적이 잡혔다. 중앙해양심판원은 이를 AIS가 정전으로 꺼졌다가 비상배터리로 복구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다보니 한겨레TV ‘김어준의 KFC’는 5월 14일 녹화방송에서 “세월호 침몰 당시 정부가 발표한 선박 자동 식별장치(AIS) 기록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복원되었다는 AIS 항적기록이 어떻게 복원되었는지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주변선박의 AIS 자료와 면밀히 대조해 세간의 의혹에 해명을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일단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새로 복원한 항적기록에 근거해 침몰경로를 추적해보자.

복구자료에 따르면 49분37초~49분56초 구간에서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45도 회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부 관계자는 “조타기를 최대로 꺾은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선체가 급회전하면서 균형을 잃고 침몰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가 언급한 “급회전”은 선박이 빠르게 우회전해서 돌아나가려했다기 보다 세월호가 제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뱅글뱅글 미끄러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바다는 도로의 빙판길이 아니다. 세월호는 홀수선이 대략 5m 가량으로 물 6825톤 가량의 부피만큼이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세월호와 물의 마찰력과 저항력이 매우 상당하다는 이야기이다. 물 속에 박혀있는 세월호는 절대로 모래위의 자동차처럼 미끄러질 수 없다. 대형 항공모함이 바다 위를 뱅글뱅글 미끄러질 수 없듯이, 세월호도 외부의 충격이 없으면 제자리 선회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선원은 급변침을 진술하였나? 4월 23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세월호 조타수를 접견한 강정민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강정민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조타수의 급변침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사고 당시 3등 항해사가 10도 변침지점에서 5도씩 나눠서 변침을 해야 된다 생각해서 2단계 변침을 시도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먼저 5도 변침 지시를 했고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5도 변침을 추가하였을 때 배가 기우뚱거리자 놀란 조타수가 본능적으로 반대쪽으로 15도 가량 역회전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자 배가 오히려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선체는 좌측으로 기울었고 순식간에 한 30도까지 기울었다 하였다.

선원도, 항적기록도 급변침을 말하지 않는데 합수부만 급변침을 고집하고 있다.

3) 말이 안되는 세월호 급변침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월호는 맹골수도에 진입하기 이전인 오전 8시7분8초에 최대속도인 20.1노트(37km/h)로 운항하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오른쪽으로 변침하던 8시49분13초에는 세월호의 속도가 15노트(27.8km/h)까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항적기록에 따르면 세월호의 방향은 8시49분13초에 최초로 변하므로 이 지점을 조타수가 1차 변침을 시도한 지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월호 조타수들은 “평소 직선 구간은 18~20노트, 위험 구간인 협로에서는 16~18노트로 운항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항적기록을 보면 협로인 맹골수도 진입 시에 최고 4노트를 과속하였지만 변침시에는 15노트상태에서 운항해 운항과속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8시49분37초를 시작으로 세월호는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휘게 되는데 이때 세월호는 속도가 이미 10노트(18.5km/h)까지 떨어져 있었다. 10노트면 초속 5m의 완만한 속도다. 세월호 길이만큼의 146m를 지나가는데 29초나 걸리게 된다. 이는 외부에서 볼 때 정상운항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정지해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의 느린 속도이다. 결국 세월호는 시속 17노트로 달려오다가 8시 49분에 방향을 전환하기 이전에 그 속도가 10노트까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월호는 속도가 10노트로 현저히 줄어든 이후에 방향이 급격히 바뀌었다.

이 지점에서 세월호는 갑자기 19초간 49도를 회전해 초당 2.6도의 회전각속도가 나타났다. <JTBC>는 세월호(6825톤)와 유사한 새유달호(3644톤)는 조타각을 최대로 꺾을 경우 초당 1.8도의 회전각속도를 얻으며 일본의 아리아케호(7910톤)는 조타각을 최대로 꺾을 시 초당 1.3도의 회전각속도를 얻는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세월호는 어찌하여 (조타수 증언을 인정할 때) 조타각을 최대로 꺾지도 않았는데 초당 2.6도라는 급격한 각속도가 얻어진 것인가? 바다 물 속에 박혀 있는 세월호는 해수면과의 마찰이 매우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자체적인 선체운항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남균 교수(목포해양대 해상운송시스템학부)도 <JTBC>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그렇게 선회를 할 수 없다”며 “35도가 되든 무슨 각도가 되든 조타를 해서 발생할 수 있는 선회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렇다면 세월호 사고는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세월호가 방향을 변침하기 이전에 벌써 침몰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다. 8시 50분 이전에 문제가 발생한 세월호는 맹골수도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기 시작해 배의 속도가 1분만에 7노트가 줄어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침몰의 여파로 8시49분37초부터 세월호가 급격히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였다는 분석이다. 이것은 사전부터 지속된 세월호 침수의 영향으로 어느 일순간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었고 조타불능의 상태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세월호 선원들이 인위적으로 세월호의 속도를 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세월호는 속도가 줄어든 직후인 8시49분37초의 시각에 급격히 방향이 변하였다. 이 경우 세월호 내부나 외부로부터 커다란 충격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급회전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경우 선원들이 속도를 줄인 직후 세월호의 내부나 외부에서 “쿵” 소리와 같은 강한 충돌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