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의 “미국 ‘주택 소유 정책’의 결말”을 읽고

https://www.saesayon.org/agenda/bogoserView.do?pcd=EA01&paper=20120504005019364&id=57

<<기업 친화적일뿐 아니라 지독히 건설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가 무려 6차례를 통해 부동산 규제완화를 해주어 거의 다 풀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격규제, 금융규제, 조세규제, 제도규제들마저 최종적으로 풀어달라는 것이다. 규제라고 이름붙이기도 민망한 마땅히 기초적인 시장질서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으로 가장 재미를 보는 자들은 은행들이 아닐까?

왜 새사연은 은행들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 정치권은 심화되어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처럼 세금을 걷어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 대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 라잔 교수는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소득불평등의 원인이 “우주의 주인들”에 의한 중산층 및 저소득층 착취라면 , 유럽처럼 “유럽처럼 세금을 걷어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어떻게 착취하여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가 있단 말인가??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 논리도 그 근거가 제시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보다는 은행을 비롯한 “우주의 주인들”이 주는 돈에 더 반응한다. 유권자의 표는 돈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은 은행들을 비롯한 주인들의 요구에 더 잘 부응했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은행들이 확실하게 소득을 얻는 방법은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대출이 연 10%이상 늘어나면 , 수수료와 이자 수입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그런 “황금알를 낳는 거위”를 가만히 내버려둘 바보 은행가들만 있을까?

은행들은 이익을 극대화 하려 했을 것이다.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동산 거품으로 중산층과 저속득층의 돈을 빨아먹을 수 있는 한 최대로 빨아먹으려고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가계 대출 확대야말로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치인들은 믿었다. 가계 대출을 확대하게 되면 집값이 상승하고, 집값이 상승하면 국민은 자신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가계 대출 확대는 금융 산업 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 주택 건설 분야의 수익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효과도 유발할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보였다.”>>

–라잔 교수는 묘하게 부동산 거품으로 갖ㅇ 재미를 볼 집단을 두드러지게 언급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바로 그들이다. 마치 그들의 이윤 추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언급한다. 뭐 “모든 면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보였다”다고? 미국 정치인들과 학자들 그리고 은행가들이 다 바보들이라고?? 그들은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무한정 빚을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진리가 아닌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클린턴 정부가 선택한 것이 ‘저소득 계층위한 서민용 주택 건설’이었다. 저소득 계층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을 살 자금이 있을 턱이 없으니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대적인 대출 규제완화 방안들이 강구되었고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정점에 2000년대 부시행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소유사회(Ownership Society)’가 있었다. 2002년 행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보면 주택 소유사회라는 환상을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심어주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

–클린턴도 바보였다니?? 소득이 없는 자들에게 대출을 해주어도 “counter-party risk”가 없을 것으로 클린턴도 은행들도 믿었다고 라잔은 주장한다. 이 라잔은 사기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허황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니까. 그런데 이 주장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클린턴은 여우처럼 교활한 자라고 나는 본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지도자가 된자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다 겪고 ,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자가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모르고 그저 “국민들을 위해서” 그런 정책을 폈다고 라잔은 주장한다.

은행들은 엄청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부동산 거품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은행들에게서 돈을 받는 “심부름꾼”이자 동업자였을 것이다. 한 30년 정도 빨대로 돈을 쪽쪽 빨아먹다가 이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거품이 터지게 되면 , 은행들은 자기들의 빚을 다 국민에게 전가시킨다.

“양적 완화”라는 미명 하에 은행들의 “독성 자산”은 국민들 손으로 가고, 은행들은 현금을 거머쥐게 된다. 은행들은 앞면이 아놔도 이기고 , 뒷면이 나오면 국민이 돈을 잃게 된다.

국민들은 이중으로 은행에 봉사한다. 부동산 거품이 한창일 때에는 은행들에게서 대출을 하여서 수수료와 이자 수입을 엄청 챙겨준다. 이제 그 거품이 꺼지면 , 국민들은 양적완화라는 미명 하에 은행들의 쓰레기 자산을 받고 대신 돈을 내어준다. 대신에 국민들은 엄청난 나라 빚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중으로 빚에 시달리게 된다. 부동산 거품 당시 진 빚들과 양적완화로 진 국가 빚.

새사연이 라잔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 곡학아세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안스럽다. 아니면, 정승일 박사의 말처럼 새사연은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인가?

(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20140542&Section=02 )

나는 모른다.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소용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