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의 인물상과 진보운동가의 풍모 ③”
– 운동가들이 갖추어야 할 도덕품성
나비들이 꽃 향기를 맡고 날아들듯 대중이 진보운동가의 주위로 모여드는 것이 이상적인데, 그런데 우리는 혁명가나 선각자, 운동가를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이 같은 인물들의 매력이 올바로 그려지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착하고 매력 있는 보통 인간인 혁명가나 진보운동가들을 정도이상으로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했는가 하면 어떤 작품에서는 악한들이 꼼짝 못할 만큼 힘과 주먹이 센 깡패 두령이나 소위 영웅호걸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한국의 진보운동가라는 사람들이 과격하고 폭력 적힌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부정부패 등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보게 된다.
몽양 여운형에 대해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몽양을 사랑했다”, 너무 착했다”,”싱싱했다”고 이구동성으로 기리며 그의 주변에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는 “정치는 인간의 문제”라는 몽양의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그의 인간사랑, 동지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했던바, 그의 사상 밑바닥에는 ‘인간’ 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대중을 주인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오는 헌신성
진보운동가들은 극히 일부 공명주의자나 사심을 품은 사람이 아닌 이상 진보운동은 대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진보운동이란 민중이 인간답게 잘살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며, 따라서 일부 선각자가 아니라 민중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로부터 진보운동가들에게는 대중숭배, 다시 말해 대중이 주인이라는 관점을 갖고 그들을 믿으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된다.
대중숭배, 대중헌신의 첫 공정이 바로 대중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단체 일꾼들이 대중 속에 들어간다면서 공장이나 농촌에 찾아가기는 하는데 노동자, 농민과 악수만 하고 돌아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 속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단련하기 위해서 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민심을 잘 알고 그에 맞게 활동하기 위해서이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민심을 잘 알고 그에 따라 활동해야 진보운동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대중의 깊은 속마음은 천길 호수와 같기 때문에 악수나 몇 마디의 연설에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민심은 진심 앞에서만 통하고 대답하며 대중을 스승으로 대하면서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천태만상의 인간감정과 정서를 읽을 수 있고 그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우월감에 빠져 ‘지당하신 말씀’어로 가르치려고만 하면 민심을 얻기는커녕 반감만 조장할 뿐이다.
또, 운동가들이 많이 강조하는 문제 중에 ‘대중활동은 신중하고 노숙하게’라는 것이 있다.
이는 너무 점잔을 떨거나 늙은이 티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진지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려면 마땅히 대인관계에서 사람의 겉만 보지 말고 속내를 볼 줄 알아야 하며 모든 일을 심사숙고해서 능숙하고 원만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항상 정치적으로 사고할 줄 알고 원칙에 맞게 처리하면서도 인간관계에서는 엄격함과 함께 아량과 인간미를 발휘하는 운동가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몽양은 원칙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항상 엄격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그러면서도 대화와 소통에 의한 타협을 중시하고 모든 사람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다음, 운동가들은 예절에 밝아야 한다. 여운형은 소년시절 말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한 일이 간혹 있었는데, 길을 나설 때면 마을의 농부들이 길가 풀밭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는 말에서 내려 조심스레 그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농민들은 그런 그를 늘 반갑게 대했으며 몽양은 그들의 검소한 점심을 함께 했다고 한다./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진보운동의 전진과 승리는 단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어느 개인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운동가들에게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 동지와 대중의 이익을 앞세우는 관점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동지들과 대중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젠체하며 사는 사람은 소총명과 소영웅주의에 빠져 독불장군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겸손함, 소박함이다.
또한 동지들과 대중 앞에서 항상 솔직해야 한다. 결함이 있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과감하게 시정해야지,요리조리 변명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면 그런 사람은 그 누구의 신뢰도 얻기 힘들다. 이는 결국 동지들, 대중들과의 사이에 벽을 쌓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청렴결백한 생활이다. 흔히 경제적인 측면이나 도덕성 측면에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진보운동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 생활이 검소하고 소박하지 못하면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부와 지위를 탐하게 되어 결국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다.
몽양 여운형이 상해에서 활동하던 당시, 자식을 미국에 보내려고 하는데 일보 경찰의 방해 때문에 배편을 얻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어는 동포의 고민을 해결해준 일이 있었다. 그 동포는 나중에 몽양에게 상당한 액수의 사례금을 주려고 했지만 몽양은 끝내 거절했다. 이 소문이 교포들 사이에 널리 퍼진 뒤로 몽양의 거처에는 거의 날마다 고민거리를 싸 들고 동포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는 집무시간과 취침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조선인들의 도항 절차와 수속을 도와주거나 조선인이 관련된 시비나 분규를 해결하는 데 할애해야 했다.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동포들은 사례금을 주려고 했는데 몽양은 전성적으로 물욕이 없기도 했지만 만일 돈을 받는다면 자신을 브로커나 알선업자로 전락하게 되며 이것은 자신의 지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면서 끝내 사례금을 받지 않았다. 그런 몽양을 동포들은 자기들이 만든 ‘교민단’ 단장으로 선출했다.
이 일화는 청렴결백한 운동가의 모범사례로만 볼 것이 아니다. 최근 진보진영 일부에는 “지금 중요한 것은 민생” 이라며 운동가의 품성문제를 ‘케케묵은 고루한 얘기‘로 가볍게 일축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몽양의 사례가 환기시켜주는 시사점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대중은 운동가의 낙천성에서 힘을 얻는다
운동가가 갖춰야 할 품성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것은 낙천성이다. 이는 신념에 관한 문제로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대중을 매혹시킬 수 있는 진보운동가의 풍모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진보운동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탄압과 압박을 동반했으며 그로 인해 숱한 시련의 고비를 넘어야 했다.
그때마다 대중은 과연 누구를 쳐다보았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운동을 앞장에서 이끄는 운동가들의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대중은 승리를 낙관하는 운동가의 눈빛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고 한 고비, 한 고비 전진해 왔다.
몽양 여운형이 어떤 상황에서나 낙천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던 중 수감생활을 했는데, 하루는 간수가 이렇게 물었다. “내가 7 년 동안 수많은 정치범을 보아왔지만 당신 같은 죄수는 처음 보았소. 모두가 분노와 번뇌와 불평으로 지내는데 당신만은 항상 명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지내니 그 비결이 무엇이오” 그러자 여운형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한 일은 양심적이고 자각적인 것이므로 남을 원망하기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기쁠 뿐이니 불평할 까닭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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