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짝사랑 동맹
–자기불신에 사로잡힌 종미주의자들의 환상, 한미동맹
매맞는 아내의 심리
정신분석가들에 따르면 ‘매맞는 아내들의 심리’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구제불능의 의존심에 빠져 폭력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을 전혀 못하는 이상 심리란다. 이런 심리상태를 가진 여자들은 가혹한 구타와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이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한다” 는 기이한 신념(?)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을 학대하는 폭군을 거부하기는커녕 그 폭군에게 더욱더 매달리는 것은 정신적 기형에서 비롯된 비정상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와 관련해 정부와 보수언론이 보인 행태에서 도 ‘매맞는 아내의 심리’ 와 유사한 관점이 드러난다.노태우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전작권 환수를 원안보다 3년 7개월 늦춰진 2015년 12월로 연기하면서 이들은 “북의 위협” 과 “우리 군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보수 쪽 시각에서 보면 “북의 위협”이야 60여 년 동안 지속된 것이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제는 올해에만 30조원의 국방예산을 퍼부으면서도 태연하게 ‘준비 부족’과 ‘시기상조’ 를 들먹이는 자기 부정, 자기 불신이다.
반세기 넘는 긴 세월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해 육성해온 군대가 여전히 ‘준비 부족’이고 군사력 세계 7위, 경제력 세계 12위를 구가하는 ‘대한민국’이 군사주권을 온전히 수행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 라는 주장을, 국민은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한다. 납득하지 못하기에 굴욕적인 주권 포기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있는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사람은 “전작권은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므로 주권에 대한 제약이 아니”라며 횡설수설 한다.
제론할 여지도 없이 전작권 환수 연기는 국가주권 포기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미국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른 것일망정 평시작전권에 이어 전작권까지 되찾아옴으로써 가까스로 되살아날 것 같았던 국민의 자존심이 이명박 정부를 만나 여지없이 짓밟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대가로 MD 참여,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평택기지 시한 내 완공, 한미FTA조정(재협상)까지 밀실합의로 약속했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초,중,고 대상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2조원을 아까워하는 이 정부가 주권 포기의 대가로 수십조원의 부담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미국에 고맙다”고 감지덕지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쓰리지 않은 국민이 얼마나 될까.
동맹(同盟)인가 종맹(從盟)인가
전작권 환수 연기를 두고 “한미동맹의 부활”이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는 정부와 보수언론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미동맹’이란 과연 실재(實在)하는가?
사전적 의미에서 동맹이란, 공통의 이익을 위하여 상호 동일한 행동을 취할 것을 맹세하여 맺는 약속이나 그로써 형성된 관계를 가리킨다.‘주의나 사상을 같이하여 동일 행동을 취하기로 연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특히 국제관계에서의 동맹은 ‘여러 국가들이 힘을 모아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한 국제정치 상의 제휴관계’로 이해된다.히틀러 독일에 맞선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동맹,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나토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동맹의 사전적 정의에서 공통되는 것은 ‘동일 행동’이란 표현이다.다시 말해서 동맹을 맺은 쌍방이, 주고받는 (give and take) 관계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제3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동맹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로 ‘서로’ 약속한다는 게다. 한미동맹은 과연 ‘동일 행동’을 주고받는 관계일까. 만일 미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기라도 한다면 한국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원조할 수 있을까.
또한 동맹은 현존하는 적이나 잠재적 적성국가에 힘을 합쳐 대항한다는 목적 즉, ‘집단적 안전보장’을 추구한다. 국가간 동맹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 보장에 있다는 것이다. 평화 유지를 통한 안보가 동맹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인 데 비해 동맹국 각자가 이익은 하위목적이 된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미국의 동북아전략 실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일방적이고 수치스러운 종속적 동맹이며,한미동맹이 강화될수록 한반도 안보 상황은 악화된다는 점에서 위험한 침략동맹이다.
신기루를 좇는 종미주의자들의 착각
동맹(同盟) 아닌 종맹(從盟)에 불과한 한미동맹은 ‘잃어버린 10년’에 집착하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가속 페달만 밟아 대고 있다. 7월 21일에 개최된 ‘한미 외교 ?국방장관회담 (2+2회담)’에서는 종속적–침략적 한미동맹을 사실상 영구화하는 ≪한미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한미공동성명〉에서는 주한미군 지속주둔 및 현재의 병력수준유지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충분한 수준의 미군전력보장, 핵 확장 억지공약 등이 선언되였는데 이는 곧 대미 종속성, 대북 적대성의 강화를 의미한다는 시민사회의 경고가 울려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보수파들은 “주한미군은 우리의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유사시에 대비한 인계철선이다”, “통일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미국에 기대서 남한만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태연하게 쏟아내고 있다.
국내 종미주의자들이 이처럼 황당한 궤변을 당당히 늘어놓을 수 있는 배경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환상이 깔려 있다. 유사시 미국이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남한을 지켜줄 것이고, 한미동맹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비판은 “철없는 좌파들의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숭배하는 그들의 확산은 철저한 자기 최면이고 신기루를 좇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진실
우선,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오산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 더 정확히는 미국 지배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개입한다.
이익보다 손해가 크거나 이익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손을 뗄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사이공의 친미파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되돌아 보라. 한때 미국의 동맹이었던 후세인의 이라크는 어떤가. 처절하게 배신당한 뒤에 후회할 것인가 아니면, ‘동맹’을 의심할 것인가. 천암함 사태 대응책의 하나였던 서해상 한미 연합훈련이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도 미국이 언제든 뒤통수를 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한미동맹 덕분에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심히 틀린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성취는 동북아지역에서 사회주의권과 이마를 맞대고 있는 한국을 ‘자본주의 쇼윈도’로 장식해야 할 필요, 소비, 병참 기지에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적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또 한국의 자본주의화가 심화될수록 경제적 예속성과 친미 기득권은 강화되고 민족자본과 민족농업의 붕괴, 사회 양극화가 가속화되어 왔다. 지금에 와서 미국에게 한국 경제는 시장개방과 금융지배의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한미동맹에 매달릴수록 분단은 고착화되고 안보 불안은 커지기만 할 뿐이다. 동맹 유지를 위해 한국이 감당해야 하는 일방적 희생과 부담은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덕을 보았다고?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작정인가.
마지막으로, 종미분자들이 대단한 진리나 되는 듯 신봉하는 논리다. “반미니 자주니 하는 것은 국제질서의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다. 양육 강식의 정글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같은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의지하는 것은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미국에 매달리는 것만이 살길’ 이라는 시각이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매맞는 아내들이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려면 폭군 같은 남편만 쳐다보지 말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려야 한다. 폭행을 일삼는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억압자, 착취자일 뿐이며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 수탈관계라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간 화해협력의 증진을 통해 안보환경을 개선하고 동북아지역에서의 발언권을 키울 수 있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험은 한미동맹에서 한 발만 벗어나면 새로운 대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시실에 눈뜨게 해주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들이 합의를 고의로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천암함이 침몰하고 이를 빌미로 ‘북의 위협’이 뻥튀기 되어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사태는 일어날 수 없었다.
미국의 겨드랑이에 파고들어 그들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에 만족하는 삶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은 종미세력의 세계관일 뿐이다. 사실 종미주의자들이야말로 대미 추종을 통해서 엄청난 기득권을 누려왔다. 수직,예속적 한미관계에 집착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그러나 사회자원의 독점과 부(富)의 편중, 민주주의의 붕괴, 분단 체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젊어져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저들의 교리에 운명을 저당 잡혀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퇴색한 제국의 신화와 한미동맹의 ‘복원’
더욱 결정적인 착각은 미국의 초대국 지위가 영원 불변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미국의 이른바 ‘강대성 신화’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바로 거기에 대미 추종론자들의 근본적인 맹점이 있다.
핵,군사력과 달러체제에 기댄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생각처럼 강하지도 않고 ‘부동의 1위’도 아니다.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수렁에 빠져 전전긍긍하는 미국이다. 유럽과 러시아의 도전에 이은 중국의 급부상, 베네수엘라의 도발,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 이스라엘과의 외교적 마찰 같은 현상들도 미국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아직도 사고원인과 수습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뉴멕시코만 해저유전 원유유출 사고 역시 미국의 ‘강대성’에 강한 의심을 품게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반감을 표출하고 저항하는 것이 국제적 조류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이명박 정부는 주권을 갖다 바치며(온전히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온갖 아양을 떨고 보수언론은 외교적 쾌거라도 거둔 양 ‘명비어천가’를 목놓아 부른다. 청와대는 ‘전작권은 주권이 아니니 호들갑떨 것 없다’식으로 국민을 기만한다. 전작권 환수를 한미동맹의 붕괴와 동일시하는 종미주의자들은 환호성을 울린다.
1905년 11월 송병준, 이용구 등을 내세워 일제가 조작한 ‘일진회’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위임함으로써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해괴한 내용의 선언서를 발표했다. 바로 며칠 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었다. 조선은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다.일제가 만들어낸 ‘자발적 친일파’의 존재는 조선 병탄의 매우 효과적인 명분이었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역사의 반복을 대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등장과 함께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 고 공언했다. ‘복원’이란 붕괴 또는 훼손된 것을 되살린다는 뜻이다.그러므로 ‘한미동맹의 복원’이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한미동맹이 붕괴 또는 훼손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한미동맹이 훼손된 적이 있기는 있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 “반미면 어떠냐”고 할 정도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권 후에는 이라크파병을 받아들이고 한미FTA를 추진했으며 국민적 저항을 진압해 가며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밀어붙였다. 지지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에 대한 고인과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군색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들은 차마 한미관계의 종속성을 실토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한미관계가 정상화를 지향하고 있었느냐,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었느냐 하는 물음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이한 평가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정작 지금 이 시점에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대목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한미동맹의 복원’이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주고 있느냐는 문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상식을 믿는 촛불들이 뜨거운 관심을 쏟아야 하는 문제다.
종미..문제 참 심각 한데 이걸 효과적으로 알리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서 일종에
계몽운동이라 해야 되는것 아닌가요..그점에 대해선 비판만 있고 왜 그게 문제인지를 알려 나가려는 노력들은 안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