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1번 너무 끔찍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선거때 처럼, 서울시장 선거도 범국민단일후보로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두 진보 정당간의 통합과 제대로 된 활동을 촉구합니다. 그들이 갈라져 있어야만 하는 양당의 ‘차이’와 ‘다름’은 우리 일반 대중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그들만의 ‘아집’ 이상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러다가 선거때마다 의미있는 득표도 못할 뿐 아니라, 선거과정에서 더많은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의미있는 ‘선거戰’도 치루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 두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국민투표에 부치면 2번 시나리오로 압승을 할 것 같아요. 누구나 공감하고 다 아는 더 나은 세상이니까요.. 근데, 문제는 그 시나리오를 어떻게 현실화시킬것이냐의 문제이지 않나요? 그게 갑깝한 거죠? 전망이 보이지않아 깝갑한데 이 시나리오가 전망이진 않아요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전망은 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현실화 시킬 것이냐 그 힘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지금 깝깝함의 본질아닐까 싶네요..글을 읽으면서 깝갑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도 전망이 없구나 싶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군요
원장님! 아래 조언 감사합니다. <학습하라!토론하라! 조직하라!>는 칼럼을 읽으니 시나리로 1을 2로 바꿀 수 있는 희망도 뭘 할 것인지도 조금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래 하얀손님 표현처럼 작전을 알지 못하는 관중의 아쉬움보단 필드에서 뛰는 선수로서 갖는 아쉬움이 더 큰 고민입니다. 물론, 우리 진보진영과 민중들이 이 시대가 무엇이 문제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국민들은 특히 대대수 약자들은 피부로 이 시대를 혐오하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논리적인 이해나 학자적 인식이 아니더라도 삶의 현실로 더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지않을까요? 다만, 이것을 표출하고 이것을 바꿔낼수 있는 희망, 기댈수 있는 그 무엇이 확인되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이 험한 세파에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치며 다른 것을 돌러볼 여유도 못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필드에 선 선수들도 여전히 거창한 구호와 입바른 전망을 제시하지만 당위성과 과학적분석만으로 결집되지 않는 민중들을보며 깝깝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문제는 저들에 맞서 나갈수 있는 준비된 우리의 힘이며 국민들이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함께 나설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실체가 필요한데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않고 어렵운게 고민입니다.
소련이 망하고 그 처절하게 어렵던 시절의 분노속에서도 러시아 민중은 굴종과 포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가 결코 다시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꿈이 자랄 여지가 없었던 거죠. 이것은 약자들의 분노가 곧바로 혁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이지 않을까요. 그 분노를 한 곳으로 응집시킬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분노를 희망으로 연결시켜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그 희망때문에 새사연에 기대가 크구요. 우선 저는 수당받은 걸로(새사연에 회원금으로 더 낼려다가) ‘상상력’ 책을 10권 사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희망을 키우는 작은 시작이지만…방향만 올바르다면 더디지만 언젠가는 고지에 닿으리라 믿습니다.
시나리오1번 너무 끔찍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선거때 처럼, 서울시장 선거도 범국민단일후보로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두 진보 정당간의 통합과 제대로 된 활동을 촉구합니다.
그들이 갈라져 있어야만 하는 양당의 ‘차이’와 ‘다름’은 우리 일반 대중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그들만의 ‘아집’ 이상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러다가 선거때마다 의미있는 득표도 못할 뿐 아니라, 선거과정에서 더많은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의미있는 ‘선거戰’도 치루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각오하고 돌파해야할 국면인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아집과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새로 시작할 각오가 되어있는지 의문입니다.
시나리오 1에 한 표. 저들의 교만과 아집은 드높기만하고, 민중은 절망과 굴종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민중의 반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무차별적 분노와 삶의 포기를 왕복하고, 아직 살만한 민중의 반은 갑갑한 현실과 두려운 미래 사이에서 왕복할 뿐.
이 두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국민투표에 부치면 2번 시나리오로 압승을 할 것 같아요.
누구나 공감하고 다 아는 더 나은 세상이니까요..
근데, 문제는 그 시나리오를 어떻게 현실화시킬것이냐의 문제이지 않나요?
그게 갑깝한 거죠? 전망이 보이지않아 깝갑한데 이 시나리오가 전망이진 않아요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전망은 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현실화 시킬 것이냐 그 힘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지금 깝깝함의 본질아닐까 싶네요..글을 읽으면서 깝갑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도 전망이 없구나 싶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군요
구동존이님^^ 누가 님께 희망을 주는 걸 기다리실게 아니라 님같은 분이 주체로 함께 희망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의견들이 좀 관망적인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이…
<학습하라.토론하라.조직하라.> 선언적인 표현이지만, 본질이 가장 명확하게 담겨있다고 봅니다. 오늘 읽은 인상적인 문구, ‘관중에겐 작전을 알려주지 않는다.’
선수로 필드에 서야 해결할 수 있다는 그 뜻이 와닿았습니다.
2번보다는 1번이 현실적이란..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데..
원장님! 아래 조언 감사합니다.
<학습하라!토론하라! 조직하라!>는 칼럼을 읽으니 시나리로 1을 2로 바꿀 수 있는 희망도 뭘 할 것인지도 조금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래 하얀손님 표현처럼 작전을 알지 못하는 관중의 아쉬움보단 필드에서 뛰는 선수로서 갖는 아쉬움이 더 큰 고민입니다.
물론, 우리 진보진영과 민중들이 이 시대가 무엇이 문제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국민들은 특히 대대수 약자들은 피부로 이 시대를 혐오하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논리적인 이해나 학자적 인식이 아니더라도 삶의 현실로 더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지않을까요? 다만, 이것을 표출하고 이것을 바꿔낼수 있는 희망, 기댈수 있는 그 무엇이 확인되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이 험한 세파에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치며 다른 것을 돌러볼 여유도 못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필드에 선 선수들도 여전히 거창한 구호와 입바른 전망을 제시하지만 당위성과 과학적분석만으로 결집되지 않는 민중들을보며 깝깝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문제는 저들에 맞서 나갈수 있는 준비된 우리의 힘이며 국민들이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함께 나설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실체가 필요한데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않고 어렵운게 고민입니다.
하지만 포기않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다보면 변화의 날이 꼭 오겠죠^-^
소련이 망하고 그 처절하게 어렵던 시절의 분노속에서도 러시아 민중은 굴종과 포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가 결코 다시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꿈이 자랄 여지가 없었던 거죠. 이것은 약자들의 분노가 곧바로 혁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이지 않을까요. 그 분노를 한 곳으로 응집시킬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분노를 희망으로 연결시켜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그 희망때문에 새사연에 기대가 크구요. 우선 저는 수당받은 걸로(새사연에 회원금으로 더 낼려다가) ‘상상력’ 책을 10권 사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희망을 키우는 작은 시작이지만…방향만 올바르다면 더디지만 언젠가는 고지에 닿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