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와 경제 자유화, 그리고 한미FTA
남유럽 재정위기가 상황이 거의 막바지까지 온 이 시점에서, 도대체 유로 통화권을 왜 탄생시켰고 어떤 구상으로 발전시키려 했기에 지금의 심각한 유로 붕괴위기에 속수무책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1999년 1월 유로 통화권이 탄생했을 때만 해도 참가국들은 유로화라고 하는 안정적인 통화를 사용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역내 환전 거래비용도 절감하고 무엇보다 유로 역내에서의 장벽 없는 시장을 형성해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내에서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 자본의 이동, 노동의 이동을 통해 북미 달러경제권에 맞서는 번영을 누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관세가 없어진 상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쟁력이 있었던 독일의 상품이 자유롭게 남유럽으로 수출됐지만 남유럽의 상품은 독일로 넘어가지 못했다. 상품 수출이 증가한 독일은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면 독일의 자본이 낮은 비용을 찾아 남유럽으로 이동하고, 남유럽의 노동은 일거리가 많은 [...]
왜 우리의 삶을 남에게 맡겨야 하나
세상이 사람을 착하게 살지 못하도록 한다. ‘착한 경제학’도 마찬가지 운명인 모양이다. 또 한 주 일탈을 해서, 요즘 유행어가 된 ‘투자자-국가 강제 중재’(Investor State Dispute, ISD)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국적을 불문하고 어떤 투자자가 국가의 정책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면 뭔가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FTA 투자 챕터의 핵심이고, WTO와 같은 다른 국제협정의 투자 챕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80여개 중 ‘강제 중재’, 즉 정부가 거부할 권리가 없는 것은 31개뿐이다. 더구나 FTA에 들어 있는 ISD와 투자협정에 들어가 있는 ISD는 또 다르다. 정부에 불리한 결정이 나서 정부가 이에 불복했을 때 한·미 FTA의 ISD는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실제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는 암의 건강보험 보장성 100%를 내걸었고, 현재의 대선후보들 역시 이 정책을 빼 [...]
한·미 FTA와 죄수의 딜레마
지난번에 교육문제의 실마리를 풀겠다고 했지만 잠시 쉬어가야 할 것 같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앞둔 ‘끝장토론’을 하느라 교육에 관해 충분히 읽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보았듯이 사교육 경쟁을 하면 할수록 부자들에게 유리하다. 경쟁으로 인해 사교육 값이 무한정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게임을 지배계급이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아이를 위해 온힘을 다 하면 다할수록 그들의 승리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즉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들을 패배자로 내모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극소수 예외는 있을 테지만 우리 아이가 그 예외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래도 우리가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고, 결국 게임의 설계자는 너무나 손쉽게 이들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다. 즉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하면 일반 대중의 경쟁을 이용하여 자기 뜻대로 지배할 수 [...]
“고용에서 대박났다”면 정말 대박인데
남유럽 과다 채무국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세계경제가 확실히 둔화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와중인 지난 10월 우리나라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만명이 늘었다고 통계청이 발표했다. 9월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수치이며 2010년 5월 이후 최대 규모로 일자리가 늘었다. 실업률도 9년 만에 2%대로 줄었다. 지금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 등이 20%의 실업률을 넘나들고 미국도 9%수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것과 엄청나게 대조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이 “신세대 용어를 빌려 실감 나게 표현하자면 ‘고용 대박’”이라며 한껏 고무돼 있을 법도 하다.어찌된 일인가. 한국은 세계 경제위기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에서는 재정위기 영향으로 변동성이 심하지만 실물경제는 별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인가. 물론 현재 세계경제를 보면 북미와 유럽에 비해 아시아 경제권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고, 나은 편이다. 여전히 9%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경제가 실물경제를 [...]
‘대기자’ 에 대한 예의
흰머리 흩날리며 언론을 지키는 기자. 언론을 천직으로 삼은 기자에겐 깨끗한 꿈이다. 해직된 후배들이 고생하는 데 나만 편할 수 없다며 교수 제의까지 거부한 송건호 선생을 서울 영등포의 허름한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을 때다. 하얀 머리칼이 참 눈부시게 다가왔다. 당시 청암의 춘추를 짚어보니 고희 전이었다.2011년 11월 현재 한국 언론계에는 일흔을 넘긴 기자 2명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행운의 주인공은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과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다. 김 고문 보다 김 대기자의 나이가 많다. 1936년생이다. 일흔일곱 살에 현역인 언론인은 마땅히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 언론계 후배라면 경의를 표하는 게 예의일 터다.하지만 유감이다. 아무래도 그럴 수 없다. 당위와 현실이 달라서다. 청암과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대비하고 싶진 않다. 내가 조선일보 고문을 비판해 온 이유 또한 그가 오월의 민주시민들을 살천스레 몰아친 과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범죄적 보도에 진솔한 반성이 [...]
한국 금융시장 불안과 자본통제, 그리고 G20
흔들리고 있는 세계경제가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지 3개월이 넘어간다. 올해 8월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 위험해진 세계경제는 남유럽 채무 국가들의 부실 우려가 한껏 증폭된 뒤로 근본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임시방편들도 국면을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이다. 결국 세계경제의 문제해결과 미래 방향 제시를 위한 포괄적인 협력을 하기로 된 G20 정상회의가 다가왔건만 어떤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어떤 합의를 해낼지 실마리도 잡히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G7을 역사적 유물로 만들고 새로 탄생한 G20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낮은 적도 없었다. 한국 금융시장은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정도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하면서 3개월 동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주가와 채권가격·환율 등 주요 금융가격 변수들이 상당히 높은 폭으로 변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 충분히 유럽발 금융위기 충격을 견딜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불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