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호 새사연 연구위원이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시 공공주택을 넣는 조건으로 용적률 한도를 현재의 두 배로 늘려 500%까지 허용하자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 서울 4대문 안의 용적률을 1,000%로 올려서 고밀화하여 직주근접을 이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주로 ‘컴팩트시티compact city’론이다. 수요가 몰리는 곳을 고밀개발하면 그만큼 다른 곳의 환경을 보존할 수 있고, 교통으로 인한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자가용과 단독주택 위주로 방만하게 배치된 도시보다는 대중교통과 공동주택 위주의 컴팩트한 도시가 에너지효율적임은 자명하다.
많은 분들이 인용하시는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레이저가 말하는 컴팩트 시티의 문제의식은 용적률 133%의 뭄바이나 인구밀도 29명/ha의 미국 교외지구에서 출발한 것이다. 현재 이미 용적률이 600%인 서울 도심 일반상업지구나 인구밀도가 헥타르당 137.8명인 강남구, 462.3명이 이미 몰려있는 ㄷ동 ㅇ아파트 단지(세대당 2.5명 기준)에 적용할 규범으로 보긴 곤란하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면 ‘그 컴팩트시티는 틀렸다’. 글레이저가 미국을 위해 말하는 컴팩트시티론으로서는 맞을지 몰라도, 한국의 주택문제의 해법으로 도심의 용적률을 500%, 1,000%로 올리자는 컴팩트시티론은 틀렸다. 타워팰리스의 용적률이 900%가 넘는다며 주택문제의 해법으로 거론하거나, 일부 계층의 ‘패닉 바잉’에 대응한다고 국가가 나서서 ‘패닉 서플라이’를 하자고 해서는 안된다.
‘500%, 1,000% 이상으로 더욱 고밀개발하자!’는 주장을 현재의 토지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토지주가 한다면 그 자체로는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하며 논리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를 에너지효율이나 서민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컴팩트시티의 추구’로 포장한다면 매우 음흉하거나, 그렇게 인식한다면 그저 천진난만한 이야기다. 음흉하거나 천진난만하거나, 어쨌든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아니, ‘위험’은 확률의 개념을 내포한 표현이라면 잘못되었다. 위험이 아니라 재난 혹은 재앙이다. 그 이유를 살펴본다.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
먼저 ‘고층화 시 면적의 한계이익 체감’의 측면을 간과하시는 분들이 많다. 경제학을 좀 아시는 분들도 공간인지적 관점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건물이라는 것이 단층일 때는 계단이 필요없지만, 2층부터는 계단이 필요하고, 더 높아지면 계단과 함께 엘리베이터도 들어가야 한다. 법적으로도 5층 이상이면 엘리베이터, 높이 31미터 이상의 경우는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고, 상식적으로도 층별 면적이 그대로라도 층수가 높아져서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엘리베이터를 계속 추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하수도나 공조, 배전 등에 투입되는 면적과, 이 시설들이 쓰는 에너지도 늘어난다.
고층화될수록 이렇게 사람과 자원을 위한 ‘수직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이를 위해 할당하는 면적인 ‘코어면적’이 증가한다. 뒤집어 말하면, 개별 층이 쓸 수 있는 면적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63빌딩의 경우 1층의 바닥면적은 1/3정도가 코어면적이니, 저층부 15개층이 그 정도 면적을 코어면적으로 할당하면 5개층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게다가 초고층의 경우 중간중간에 피난시설도 설치해야 한다. 롯데타워의 경우 20개 층마다 1개소다. 결국 70층 이상부터는 추가로 층수를 올려봤자 실익이 없다는 연구도 있다(한국화재소방학회, 2006).
그나마 이건 건물 한 채만 놓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건물이 여러 채 있으면, 건물들이 높아짐에 따라 인동간격도 그만큼 널리 띄워야 한다. 그만큼 듬성듬성 지어야 한다면 지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의 비중(건폐율)이 줄어든다. 그러면 굳이 층수를 높여봤자, 전체 연면적은 별로 안 느는데 코어면적으로 빼야하는 몫은 점점 늘어나니, 시공에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고생해서 한 층 더 올리는 ‘사회적’ 실익은 없다.
물론 건폐율이 작으면 그만큼 녹지나 오픈스페이스가 많아질 수는 있다. 그런데 현재도 17% 정도까지 떨어진 고층아파트 단지의 건폐율을 더 이상 낮추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 상태에서 높이를 높인다면 (높이에 비례하는) 인동간격의 규제도 완화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기껏 확보한 녹지와 주택에 일조시간이 줄어들고 난방비용이 증가한다. 그래서 분양 단가가 떨어지면, 주택수는 늘어도 전체 재무적 입장에서의 수익율은 떨어질 것이다.
초고층화는 서민 대중의 주택문제 해결에 부적합
국가나 도시나 기업의 자존심을 건 랜드마크의 건립이 아닌 다음에야, 한계이익이 체감하는 만큼 단위면적당 수익성이 좋을 경우에만 고층화의 실익이 있다. 롯데타워는 대기업의 이미지차원에서 ‘랜드마크’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실제 건물의 수익성을 위해서도 고급 레지던스, 고급 호텔,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갔다. 따라서 주거용으로 쓰기 어렵다. 초고층 주택도 없지 않다는 반론이 있겠지만, 주택 역시 초고층건물은 초고급주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택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 단위면적당 가격이 비싸질 뿐더러, 면적도 대형화된다. 코어 하나에 현관이 여러 개면 동선이 꼬이니, 많아야 4세대, 대개 2세대가 같이 쓰게 된다. 층수나 세대수가 많아지면 엘리베이터를 더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자니 주거전용면적도 줄고 수익성이 떨어진다(그래서 많은 타워형 아파트들은 층당 3세대에 엘리베이터 2대를 넣는 절충안을 쓴다).
기왕 올린 층수에서는 층당 면적이 커졌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한 층에 들어갈 세대수는 적게 넣자니, 필연적으로 ‘세대 당 면적’은 커진다. 주택이 대형화되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의 주거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초고층 주택들을 보면, 초고층이라 해도 60층 안팎으로 70층은 넘지 않으며, 타워팰리스, 하이페리온, 첼리투스 등 고급 브랜드 주택들이다.
재무적 한계와 세대간 불평등
셋째로, 재무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도 않기에 세대 간 불평등이 심화된다. 고층화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던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이 생애주기분석(LCA)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법적으로는 조금 다른 개념이나, 이하 법적인 구분이 아닌 개념적 용어로 사용한다)
용적률 100% 근방의 5층짜리 아파트단지를 300%짜리 15층으로 재개발하기는 쉽다. 기존 세대의 2배가 넘는 세대가 새로 들어온다. 100호를 300호로 키우는데 호당 공사비가 4억원이었고, 200호를 6억원에 일반분양한다면 이미 여기서 공사비 1200억원이 회수된다. 이런 경우라면 건설회사도 돈을 잘 벌었고, 기존 조합원들은 돈 한 푼 안들이고 넓은 새집을 받는다. 마법의 비결은 ‘용적률 뻥튀기’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행운은 흔치 않았고, 대개는 조합원들도 어느 정도 자기분담금을 내야 한다. 그래도 재개발 직후 6억짜리 집이 8억이 된다면, 1억원 정도 자기분담금을 내도 1억원은 버는, 100%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100%의 용적률이 300%로 튀겨질 수 있다 해도, 30-40년뒤에는 용적률 900%의 주택 단지를 만들 수 있을까?
높이가 높아지면 그만큼 인동간격이 줄게 되어 그늘이 많이 진다. 법적 기준도 지키고 집값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인동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 판상형 건물을 날씬한 타워형으로 바꾸고 엇갈리게 배치한 것이 지금의 ‘건폐율 20% 안팎, 층수는 30층 안팎’의 아파트들이다. 건폐율을 다시 늘릴 수 없다면, 용적률을 늘리는 것은 고스란히 높이에 반영된다. 그런데 지금의 30층 아파트가 나중에 재개발할 때 90층이 될 수 있을까?
시공기술의 측면에서 짓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내진설계를 하면 짓는데 돈이 더 들지만 어지간한 지진에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비용을 들일 실익이 없다. 뭔가 첨단기술이 더 나온다면 지금의 공간적 실익의 한계인 70층을 넘어 90층까지 올려도 실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치자. 지진에도 끄떡없으며 정전에도 자체발전기로 90층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치자.
그 집들을 소비해줄 수 있는 인구가 받쳐주지 않는다. 용적률을 3배로 늘리면, 지금 인구의 2배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수도권 인구가 전 인구의 절반이 넘었다. 모든 지방의 인구가 다 와도 모자라고, 그만큼을 외국에서 더 수입해 와야 채울 수 있다. 불가능하다.
그러면 현재 30층짜리를, 40년 뒤에 재-재개발을 해야 할 때는? 인구변화를 감안하면, 90층으로 용적률을 3배 튀기기는 커녕, 30층을 20층으로 줄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줄이는 ‘축소재개발’은 사업성이 안 나오니 지금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다가 슬럼화가 심해져서 사회문제가 되면 천상 공공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미래세대의 세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재개발로 인해 인구가 늘어나면 도로, 상하수도, 교육시설 등 기반시설에 미치는 부하가 커진다. 이렇게 현 세대에 가하는 부담은 재개발 조합에 각종 분담금이나 환수금을 매겨 거둬들인다고 치자. 그래도 남는 개발이익에 대해 초과이익환수금이 필요한지 등 부담을 피해가는 방법에 대한 논란이 많다. 토지지분을 소유했다고 하여 재개발로 생기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그 단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기는 비용은 사회화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미래에는 축소재개발을 위해 공공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면? 지금의 조합원들이 가져가는 개발이익은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로부터도 일부 이전해 왔다는 말이 된다. 사유재산의 영역을 넘어서서 세대 간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용적률은 미래세대의 것. 공공도 날로 먹어선 안된다
용적률을 함부로 올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개념도 그 토지에 적용된 용적률까지로 보아야 한다. 법정 용적률이 250%이고 현재의 용적률이 200%라면, 사유재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추가 용적률은 50%까지다. 그 이상 완화해준다면 그에 대한 권리는 없다. 그건 공공의 재산이다.
용적률이 늘어난 것은 토지주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늘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땅을 산 사람은 용적률 250%짜리 땅을 산 것이다. 그 땅이나 주택단지에서 주택을 구매하며 토지의 지분을 획득한 이들의 권리는 원래 법정용적률까지다. 법정용적률을 만약 현재의 250%에서 300%까지로 늘려준다면, 현재의 법정용적률을 초과한 50%, 즉 1/6 만큼의 토지 지분은 공공의 것이다.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것은, 250%에 해당하는 5/6의 토지 지분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주택을 나중에 전세로 내놓을지 월세로 내놓을지 소유주가 직접 살지에 대해 공공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공 몫의 1/6에 공공임대를 짓든, 공공분양을 짓든, 환매보증부 주택을 짓든, 나머지 5/6의 토지주 역시 관여할 일이 아니다.
공공재개발에서 용적률을 500%까지로 허용하겠다는 것은 공공 역시 손을 안 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산이다. 공공은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공공 몫의 주택을 확보하려 하니, 그만큼 재개발 사업의 사업성을 키워줘야 하고, 그래서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이나, 아래 이야기할 에너지효율도 무시하고 고밀화를 허용해주는 대신 재개발 조합에게 주택을 내 놓으라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공공은 1/6 토지 지분을 확보하는 대신, 그 토지에 집을 지을 때는 건축비도 부담해야 한다. 비용은 국민주 리츠 등으로 조달해도 좋고, 상황에 따라 연기금을 투입해도 좋겠다. 공공주택을 왜 조합원들의 돈으로 짓는가. 그래야 조합원들의 자기분담금도 합리적으로 책정된다. 이것이 진정한 공공재개발이고, 공공과 조합원이 합심하여 미래세대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그리고 건물의 노후도가 심각한 수준이 되었는데도, 이 정도의 공공재개발안을 그 집에 살지도 않는 부재지주들이 반대한다면, 세입자 이주대책 마련 이후에는 퇴거 명령 및 직권철거 등 강제집행의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노후건물이 붕괴라도 하면 이는 거주자와 주변 주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기 때문이고, 현행법의 테두리에서도 원칙적으로 가능한 부분이다.
사실 다른 한편에서는 ‘균형발전’도 추진하고 있고, 코로나 시대 이후 국토공간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용적률 300%라는 수치도 매우 조심스럽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예수, 년도미상, 성경에서 재인용)라는 말이 있는데, ‘미래세대의 것(용적률)은 미래세대에게’ 맡겨야 한다.
에너지효율과 밀도의 한계: 점(點)적인 차원과 면(面)적인 차원
적정밀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주택과 도시 인프라의 ‘물리적’ 생애주기분석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에너지효율과 탄소배출절감의 차원에서도 사활적인 문제다. 마냥 고밀화한다고 에너지효율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옳은 컴팩트시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공간의 에너지효율을 건물의 에너지소비와 교통 부문에서의 소비로 나눠 살펴보자. 서울의 경우 2016년 에너지 소비분야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건물 부문이 67.5%였다. 이동에 드는 에너지절약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건물에서의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밀화한다고 건물을 너무 촘촘히 지어 일조량이 감소하게 되면, 난방 부하가 증가한다. 컴팩트도시론의 국제적 논의에서 기후의 차이를 무시하고, 겨울철에도 별로 춥지 않은 지역과 같은 밀도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고층화가 되면 건물 전체 연면적에서 지붕면적의 비중이 줄어든다. 그 건물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중 태양광발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물론 요새는 외벽이나 유리도 태양광발전 패널의 역할을 할 수 있다지만 그 때에는 건물의 가로-세로 비율이나 표면적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무조건적 고밀화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조상규, 이진민 2010).
인구의 순밀도 기준 500/ha 를 초과하는 도시의 경우 오히려 도시 전체의 교통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안건혁, 1998). 이상의 연구들에 이어, 7대 광역시 74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컴팩트시티의 관점에서도 적정 개발밀도가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순밀도 기준 528명(/ha), 총밀도 기준 220명(/ha)이 적절하다는 것이다(조윤애, 최무현 2013).
아파트 단지의 실제 인구밀도가 어떨까? 서두에서 예를 든 헥타르당 462.3명이 사는 ㄷ동의 ㅇ아파트의 경우는 용적률이 200%인데도 그렇다. 용적률을 300%로 늘렸을 때 그만큼 인구가 따라 늘면, (이 동네는 학군이 좋으니 세대당 2.5명으로 잡을 때) 헥타르당 693명이 넘는다. 세대당 2명 기준으로도 554.76명이다.
용적률 294%, 건폐율 19%의 ㅎ동 ㅎ아파트에는 2303세대가 산다. 대지면적이 77,198.80제곱미터라 하니, 세대당 2명이 산다 해도 인구밀도가 이미 헥타르당 596명이다. ㅎ아파트단지나 ㅇ아파트 단지 모두 용적률 300% 기준으로도 위의 2013년의 연구에서 제시한 기준을 쉽게 넘어선다. 이걸 500%로 늘린다? 어불성설이다.
밀도만 놓고 보면, 서울은 이미 충분히 충분한 컴팩트도시다. 일부 역세권의 ‘환승지향 복합개발(Transit Oriented Development)’ 차원에서 점(點)적인 범위에서는 용적률 500%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면(面)적인 차원, 특히 주거지역에서의 용적률은 300%가 한계로 봐야 한다. 1인가구가 늘어나서 가구원수가 줄거나, 일부 상가, 관공서, 고령화시대에 필요한 커뮤니티케어(돌봄) 시설 등을 넣어 복합용도개발을 한다 해도 330% 정도가 최대치라고 봐야 한다.
고밀화 자체는 직주근접과 무관
교통에너지의 측면에서 봐도 무조건적인 고밀화는 해법이 아니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고밀·고층화로 ‘수평’교통비용이 줄어든다 해도, ‘수직’교통비용이 증가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줄어들어야 효과가 있는 것인데, 이 수직교통비용은 고층화될수록 할증적으로 커진다는 점은 앞에서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수평교통에 드는 비용이 그만큼 더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평교통량은 ‘직주근접’이 되어야 줄어든다. 그런데 직장과 주거가 가까운 곳에 자리잡지 못하는 상황, 즉 많은 이들이 ‘강남에서 판교로 출근하고 다른 이는 판교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처지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양쪽을 고밀화 해봤자 경부고속도로와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다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직주근접을 강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지역과 지역의 관계에 산업과 일자리, 교육 및 인구사회학적 측면 등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풀리는 문제다. 그렇지 않고서 무조건 고밀화되면 컴팩트시티의 이상이 실현되겠거니 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다른 의도를 감춘 음흉한 주장이 아니라면 그저 천진난만한 이야기일 뿐이다.
4대문 안 고밀화 주장이 놓친 것들
예컨대 서울 4대문 안의 용적률을 1,000%로 상향하여 5~6000가구를 공급하자는 주장을 살펴보자. 직주근접을 원하는 30·40세대에게는 신도시보다 도심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일반론적으로 그 세대가 주거지를 선택할 때 직주근접을 가장 중요시하는지, 혹은 그 세대만 직주근접을 선호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종로구와 중구의 주간유입 인구의 특성을 간과한 주장이다.
종로구와 중구로 통근하는 이들은 몇 명이고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이 과연 4대문 안으로 이사를 올까? 4대문 안의 땅에 출근하는 이들이 원하는 주거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종로구는 주간유입인구가 21만명, 중구는 29만명이다. 아침저녁으로 들락날락하는 이들을 합치면 50만명인데 추가 공급되는 주택이 6천가구 뿐이라니 조금은 허탈한 수치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로구로는 주로 경기도, 성북구, 은평구 등에서 오고, 중구는 주로 경기도, 성동구, 노원구 등에서 온다. 이들의 연령대는 다양하겠으나, 학령기 자녀를 둔 30·40세대의 경우라면, 현재의 4대문 안의 교육환경에 얼마나 매력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가격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광화문과 시청 인근은 이미 대규모 필지에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 있는 상황이다. 추가적인 고밀화의 여지는 4대문 안에서도 세운상가 주변이나 동대문 쪽 일부 지역에서나 가능해 보인다. 이곳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복잡하게 경계가 나뉜 소규모 필지들의 구획을 정리한다 해도, 여기를 고밀화하면 종묘와 남산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경관축’을 가로막게 된다.
용적률이 풀리면 그만큼 땅값은 더 비싸질 것이다. 이런 상업지구의 비싼 땅값을 감당하려면 고급주택이거나 고층주택이거나 둘 다여야 할 텐데, 자녀가 없는 1·2인 가구이자 고소득층 통근자 6천 가구의 직주근접을 위해서 굳이 얼마 안남은 역사적 도심과 산업생태계를 파괴해야 할까?
그리고 6천 가구조차도 얼마나 직주근접을 하는 사람들일지도 미지수다. 앞서 경기도나 은평구나 노원구에 살던 고소득층 1·2인 가구가 많이 이주해올 수도 있겠으나, 현실에서는 ‘4대문안’의 고급 주택 6천 호의 상당수는 실제 직주근접을 하려는 이들 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에어비엔비’나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기 십상이다. 공공임대주택이라면 모르되, 민간주택을 공유숙박시설로 쓰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렇다면, 낮에는 다른 곳을 돌아다니던 이들을 밤에라도 불러들여 야간인구 공동화를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몰라도, 직주근접을 통한 탄소절감이나 주택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 결국 컴팩트시티와는 무관해진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위기, 경제위기, 방역위기, 기후위기를 해결할 근본적 해법
탄소배출이 문제라면 건물 차원에서는 용적률을 풀어줄 것이 아니라 제로에너지빌딩(ZEB)을 만들어 냉난방 부하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그린뉴딜이 중요한 이유다. 도시나 교통의 차원에서는 고밀화 자체에 환상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결합체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판 뉴딜은 이러한 결합체계를 바꾸는 뉴딜이어야 한다.
교통분야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세 가지 변수의 조합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단위배출량을 줄이고, 이동거리를 줄이고, 이동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1인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단위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이겠다. 컴팩트 시티가 의도한 바는 ‘이동거리’를 줄이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동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재택근무의 활성화가 훨씬 효과적이다. 모두가 주5일 근무를 할 경우와 비교하면, 주4일 근무(통근)제 시행시 교통량은 당장 20%가 줄어든다.
컴팩트시티의 취지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1극화된 국토에서 서울의 밀도를 전반적으로 더 높이는 것이 아니다. 실익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에너지효율적이지도 않다. 일부 역세권은 TOD를 위해 용적률 500% 이상으로 개발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단지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통합적 접근으로, 일상적 생활권과 업무상 활동권역을 적절히 위계화되도록 국토를 다극-다핵화해야 한다.
다핵 국토에서 일상적 출퇴근은 그 ‘컴팩트’한 각각의 핵, ’15분 도시’가 가능한 도심으로 한다. 그러다가 핵과 핵 사이를 이동해야 하는 업무상의 만남을 위해서는 탈탄소 쾌속 교통을 활용하도록 하면 된다. 헤이그 중앙역에서 에스켈레이터만 오르면 바로 시내로 들어가는 트램이나 버스정류장이 있고, 길만 건너면 중앙부처 청사가 있는 네덜란드와 같은 ‘연결된 다핵 국토’가 답이다. 동네의 철도역까지는 자전거로 무리없이 가서 세울 수 있는 정도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자전거 정류장에서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기차플랫폼까지 연결되는 사례들까지는 인구밀도가 그들의 3배가 넘는 우리에게 사치라 하더라도, 최소한 고속철도역사가 도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 외곽에 있어서, 도심과 도심끼리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교외와 교외끼리 연결시키는 경우라도 피해야 한다. 자전거나 킥보드 등 개인이동수단(PM)의 발전에 발맞춰 버스, 전철, 철도 등으로 위계화하여 일상 이동, 통근, 업무상 이동을 나누어 소화하며 ‘스마트하게 다핵화’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경쟁력’도 잃지 않고 ‘2050넷제로’도 달성하며, 동시에 집값도 잡을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이다. ‘with코로나’시대에 맞도록 재택근무와 거점오피스의 활성화하는 것과도 통한다.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단순히 ‘건물’을 컴팩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토의 ‘공간과 시간의 결합체계’를 컴팩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4대 위기 – 부동산위기, 경제위기, 방역위기, 기후위기를 어느 하나에 전가 혹은 심화시키지 않으며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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