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수난 시대

By | 2019-12-18T14:44:04+00:00 2019.12.16.|

얼마 전 국내 상위 그룹에 속하는 모 대학 사회대 교수 30여 명을 앞에 놓고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요즘 참 많이 힘드시죠. 지식인 수난 시대입니다. 그동안 믿고 의지해 왔던 이론과 처방들이 잘 안 먹히고 있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다수의 교수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직감하고 있듯이 진행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학 생활 10년 차 교수를 떠올려 보자. 그 교수는 학위를 받기 위해 해외에서 10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10년 간 시간 강사로 전전한 뒤 겨우 교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 그가 가리치고 있는 이론은 길게 보면 30년 전에 배운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론 형성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그 이론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 상황은 한 참 더 전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시대 상황은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수십 년 전 이론이 전제 삼았던 시대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과거 이론에 의존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면 패착을 범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러한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활성화 방안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효 수요 이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확장 재정을 바탕으로 유효 수요를 확대함으로써 성장을 자극하는 케인스주의 이론을 원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케인스주의 처방이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을까?

케인스주의 이론을 신봉하는 이른바 뉴케인즈언들은 두 가지 지점을 놓치고 있다. 먼저 케인스주의 처방이 효과를 발휘했던 1950~60년대는 경제가 기본적으로 국민경제 틀 안에서 움직인 세계화 이전 시기였다. 정부가 시장을 조율할 여지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의미의 국경선이 지워진 세계화 시대이다. 기업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조건에서 정부 개입 여지는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선진국의 경우 금융자본의 과잉축적으로 실물경제와의 균형이 깨진 1970년대 이후 케인스주의 처방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이 그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데 있다. 단적으로 시중부동자금이 1200조 원에 육박하면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증’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화는 확장 재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증세를 어렵게 한다. 증세 시도는 자칫 기업들의 해외 탈주를 자극하면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금융자본의 과잉축적은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게 만든다. 차가 많아 도로가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차를 추가 투입한다고 교통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익숙한 이론과 처방은 실패의 보증 수표가 될 공산이 큰 시대이다. 그러한 이론과 처방에 의존해 먹고살아 온 지식인들이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과연 이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시기 지식인들이 비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명심해야할 철칙이 있다. 고전적 사례가 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에 본격 착수했을 무렵 이를 뒷받침할 이론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참고할 사례조차 딱히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처지였다. 그 때 덩샤오핑이 찾은 곳은 ‘현장’이었다. 농민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농업개혁 방안을 모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해답은 곧바로 인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거대한 중국이 큰 혼란 없이 개혁개방의 길을 걸 우 수 있었던 이유였다. 지금 지식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철저하게 현장에서 해답을 찾는 ‘현장성’이다.

(이 길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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